- 에필로그
3월 30일.
이기광 생일 카페에 다녀왔다.
사실은 그냥 카페에서 이기광 생각을 했다.
유사 바나나 우유를 마시며 이기광 생각을 했다.
그냥 이기광인 상태.. 는 아니었다.
세 시 사십 분. 기차 시간이 다가올수록 혼자 오는 여행의 단점이 명확해졌다. 혼자 떠나야 했다. 이 바다를 놔두고 나 혼자 떠나야 했다. 나만 아쉬워야 했다.
이틀간 안목 해변을 잔뜩 쳐다봤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채워지지 않았다. 갖고 싶었다. 가지지 못했다. 왜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고 하는지, 옆에만 있어 달라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왜 그런 가사들을 쓰는지 이해했다. 사랑이고 욕망이구나. 이 해변의 그 누구도 가질 수 없었다. 그 사실에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그래. 그 누구도 가질 수 없었다.
바라보다 사진을 찍고 파도를 피해 소리를 지르며 즐거워하는 것 이상을 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공평했다.
왜 맨날 못났다고 하면서 그렇게 어디든 세워서 사진을 찍으려 했는지 엄마 아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어제보다는 적었지만 그래도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많았다. 부모들은 파도가 다가올 자리쯤에 애를 데려다 놓고 그걸 피하는 아이를 열심히 찍었다. 커피잔 조형물, 그네, 커다란 우체통 옆 등 곳곳에 귀여운 그들을 배치시켜 휴대폰이나 카메라로 담았다.
옷을 비슷하게 맞춰 입은 커플들이 이런저런 포즈로 사진을 찍었고 바람에 미친 듯이 날리는 옷자락을 부여잡거나 추위에 팔짱을 필사적으로 낀 채 해변을 거닐었다.
동성들끼리 온 이들은 서로를 찍어 주고 행인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서넛씩 조깅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이들도 많았다. 사람들은 닭강정과 커피콩빵 박스를 들고서 자동차에 오르내리거나 어느 카페로 들어갈지 고민하는 것처럼 위를 올려다봤다.
오전 내내 죽치고 있던 할리스에서 나와 마침 빈 나무 흔들의자에 앉았다. 하이라이트 블로잉 앨범을 틀었다. 노이즈 캔슬링을 껐다. 파도 소리와 노래와 옆에서 깔깔거리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섞였다. 하늘이 약간 흐렸다. 흐리든 안 흐리든 어쨌든 아름다웠다. 혼자 헤매듯 걷던 길이나 건물 주변에는 지진 해일에 주의하라는 문구가 있었다. 적당히 다가서야 아름답구나.
그제 밤 시린 손을 겨드랑이에 끼고 몸을 움츠려 다시 도착했던 강릉역에는 사람이 낯설 만큼 가득 들어차 있었다. 무슨 대피 경보라도 뜬 것처럼. 이 도시에 발을 들인 이후로 이렇게 군집된 인원을 본 적이 없었다.
옥수수라떼를 버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기차에 탔다. 강릉에 왔다고 했더니 옥수수라떼 같은 것도 먹어 보라고 하던 그 언니의 말을 받들어 해변에서 샀다. 빙그레 바나나 우유에서 바나나를 옥수수로 진하게 바꾼 맛이었다. 맛있었다. 많이 달았고 컵을 여태 들고 있던 손이 시렸다.
다시는, 비수기 강원도 해변가에서 캐리어를 질질 끌고 삼십 분 걷지 않고서는 강함이나 강함과 강함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기로 했다. 바다는 도도했다.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나만 좋아했다. 바닷바람은 여전히 햇빛이 조금이라도 숨으면 너무 차가웠고 길은 울퉁불퉁했고 강릉은 도대체가 짧은 경로라는 게 없는 곳 같았다. 크고 넓고 또 넓어서.
유아동반석의 애들이 뭐라 뺙뺙이는 소리를 들으며 졸았다.
또 와, 나 또 보러 와.라고 저편에 있을 바다가 말했다. 누구도 그 바다를 가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 바다 아래에 어쩌면 어제 아쿠아리움에서 본 생물들이 잔뜩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나를 조금 행복하게 했다. 이만큼이면 나는 이 바다에 최선인 것 같았다. 아쉬움이 남는 것조차도.
그리고 여행이 끝났다.
청량리역에서 수인분당선을 거쳐 정말로 다시 신분당선에 올랐다. 신기할 정도로 익숙하게 사람이 많았고 발길 닿는 모든 곳이 우중충하고 낡고 컸다.
마침내 도착한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에서 투명한 천장을 바라보고 섰다. 건물이 많았다. 건물뿐이었다. 저편의 법원, 그 전의 포토이즘, 다이소, 그보다 전의 와플대학, 정육점, 과일 가게, 저쪽 컴포즈커피, 새로 생긴 빵집, 엽기떡볶이, 휴대폰 가게, 또 빵집, 돈까스집, 편의점, 또 편의점, 올리브영, 또 카페, 설빙, 또 카페.
반경 삼백 미터 안에 식음료를 취급하는 곳이 오십 군데는 되고 아무리 센 바람이 불어도 두렵지 않은 곳. 모든 건물과 가게에 불이 켜져 있었고 상점을 운영하는 인원 외의 사람들이 몇 명씩은 들어가 있는 곳. 끝없이 그 밝은 가게들과 건물들이 이어져 있었다. 아, 돌아왔구나. 정말로.
떠나기 전에 쿠팡에서 시켰던 간식이 와 있었다. 탄수와 당 함량이 낮고 지방과 단백질이 높았다. 무늬만 다르고 다 똑같이 생긴 가방 중 하나가 와 있었다. 그 며칠 새 뭘 시켰는지, 뭘 갖고 싶어서 기다렸는지도 잊고 있었다. 돌아왔다. 아, 난 이런 걸 그렇게 갈망했구나. 그러게, 그랬었네. 고작 이틀 떠나 있었다고 이렇게 생경할 줄이야.
모래 먼지로 약간 뿌예진 신발과 잔뜩 더러워졌을 캐리어 바퀴만이 그 흔적이었다. 떠났었고, 불과 몇 시간 전까지 그 해변에 서 있었다는 증거.
냉장고에는 먹을 게 많았고 집에는 옷이며 신발이 가득했다. 3일 내내 같은 신발을 신었다. 뭐가 그리 중요했을까 생각했다. 나한테는 뭐가 중요했던 걸까. 이곳에서의 나에게는 각각 다른 종류의 워커나 다른 색의 스니커즈를 신는 것, 어떻게든 탄수를 덜 먹으려는 게 중요한 거였다. 그렇게 보였다. 정말 고작 이틀 떨어져 있었는데 새삼스러웠다.
그랬구나. 정말 그랬구나.
원래는 오전 열 시 반 기차를 예약했었다. 어쩌다 보니 표를 바꾸게 됐다. 최애 멤버의 생일 행사보다도.. 그때의 바다가 더 매력적이었다. 그래도, 거기서 그들의 노래를 들었잖아? 거기서 생각 많이 했다. 미래 어떤 시점의 나도 이 선택을 후회할 것 같지 않았다.
아르떼에서 사 온 고래 키링의 색깔이 예쁘고 촉감이 부드럽다. 바다가 나를 계속 불렀으면 좋겠다. 나 잊지 마, 행복했지? 또또 보러 와, 하면서.
+ 펭귄 주의
왜 이곳에서의 생활이 피곤했는지 지하철에 오르니 알 수 있었다. 나는 아쿠아리움에서 펭귄 한 마리를 길지 않은 시간 쫓아다녔다. 유리벽 너머에 있는 친구였다. 벽에 얼굴을 잔뜩 가까이 대고 그를 따라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 어그로에 대해 그 친구는 뭐라고 생각했을까? 펭귄도 생각을 하나? 아무튼 이상하다고 느끼긴 했겠지?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으려나. 하여간 그는 나를 피하지 않았다.
지하철. 겹겹이 모인 사람들 또는 1.2 미터쯤 앞에 나란히 앉아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든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신경 쓰며 존재해야 했다. 정말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다. 그러니 이어폰을 끼고, 쇼츠를 보고, 그도 아니면 문에 기대서 흥미로울 것도 없는 똑같은 지하철역 역사를 노려본다. 시선과 청각을 한정된 공간에 집중시킨 채 내내 신경은 곤두세워야 했다. 어떻게 안 피로하다고 할 수 있겠어.
쫓아와 눈을 맞추려 드는 상대를 피하는 것만 피곤한 일일까. 절대다수의 존재를 서로가 지우려 애쓰는 것도 에너지 소비가 크다. 실제로 없는 것과 없는 것처럼 애쓰는 건 다르잖아.
뭐, 나는 개니까. 이곳에서 버릇이 나빠진 개니까 딱히 불평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는 걸 알았다. 나는 그랬다고.
다음 차례로 개가 될 곳은 어디일까.
그때는 아주 쪼끔은 영민한 강아지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