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까만색
투명한 워치 스트랩 안쪽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알림을 전부 꺼놓은 카톡을 들락거리면서 병원에서 온 연락이 없나 확인했다. 축축한 브라탑과 레깅스를 벗었다. 한 시, 나이트가 한참 일을 하면서 오류를 찾아낼 시간. 달리면서 쳐다본 것들을 생각하면서 누워 있었다. 그 까만 병실에 계속 있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담배 냄새가 났다. 그 때 피우기 시작했더라면 지금 나는 애타게 금연 시도 중이겠지, 냄새는 있는 대로 풍기고 돌아다니면서.
일곱 시 약이죠?
네. 지금 주시면 돼요.
지금요.
네네. 지금 바로 먹여 주시면 됩니다.
아빠의 눈이 동그랬다.
여덟 시 약은요?
그건 제가 이십 분 정도 있다가 와서 드릴 거예요. 이건 지금 주시고요.
여덟 시가 아니라요?
그럼 그 때 드릴게요.
아빠가 돌아섰다. 기도문을 써붙인 노트가 펼쳐져 있고, 작은 라디오에서는 종교 방송이 하루종일 나오며 휴대폰이나 태블릿 속의 엄마가 매일의 저녁 기도를 그 애를 바라본 채 외는 방. 비닐 가운을 벗으면서 생각했다. 뭐가 문제야.
7시 23분. 아. 늦게 줬다 이건가.
머리맡에 왼쪽 아래 스위치 둘이랑 저 버튼 누르시면.
알아요. 작년부터 입원했는데.
아, 네.
아빠의 눈은 동그랬다. 동그란 눈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불을 하나도 켜놓지 않은 저녁의 2인실. 또 나오고 있는 종교방송. 그게 설교든 염불 외는 소리든 어쨌든 항상 깔린 소리들. 애는 눈알을 뒤집고 계속해서 경련했다. 한 시간에 열 번도 더. 방으로 들어가니 산소가 잔뜩 틀어져 있었다.
아버님, 이거 언제부터 이렇게 주셨어요?
아까요.
아까요? 시간대 기억하세요?
애 아까 경련해서 산소포화도 74까지 떨어졌는데요.
그의 눈은 정말 동그랗다.
74요? 언젠지 대충이라도..
몰라요.
산소도 처방대로 하는 거라 올리려면 의사 선생님 확인이.
그럼 떨어져도 올리지 말고 냅둬요?
일단 간호사 불러 주시고.
올리지 말란 거죠.
5까지는 되는데 이렇게 많이는 안 돼요. 감량할게요.
애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그 몸으로 눈을 뒤집고 몸을 뒤챘다.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도 그랬다. 재작년에는 안 그랬겠지.
올려도 안 올라서 산소 올린 거예요.
알겠습니다.
말하면 되는 거죠?
네. 벨 누르세요.
방은 여전히 어둡다. 종교 방송. 어깨가 높고 눈이 둥근 아빠. 보호자. 그래서 나도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왜 불을 안 켜는 건지는 묻지 않는다. 그 방의 하늘은 까맣다. 한 치의 여지도 없이 까맣다. 그들은 그런 하늘을 본다.
브레인 데스. 적출. 중환자실. 연명의료중단 퍼미션. 기증. 전이. 복도에서 보호자가 둘 다 선 채로 듣는 회진. 애는 태어난 지 반 년밖에 안 됐는데 인공호흡기 사용에 빠삭한 보호자들. 반 년 전까지는 그런 것을 아무것도 몰랐을, 당연한 사람들. 어떤 간호사의 눈물. 바깥으로 나오니 그제야 낯선 이 단어들. 병원의 언어. 바이팹. 모드. 이머전시. 타이달 볼륨. 절규는 진작에 넘어선 그들. 위루관 튜브. 전동.
좀더 일찍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중학생, 고등학생? 그러면 지금쯤은 전자담배로 전환했을 수도 있지. 위장이 없는 것처럼, 몸이 다 없어질 것처럼 마시고 안 일어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못 했다. 내일도 출근해야 하니까. 열두 시. 지금 나가면 안 위험할까, 하는 생각을 접었다. 진짜 대가리가 터질 것처럼 술을 마시는 것보다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가까웠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건물 입구에서는 어린 여자애들 둘이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예쁜 옷에 화장한 얼굴. 담배를 물어 비틀린 입술. 별로 인생의 고충을 뱉어내지 못한 표정으로. 빨아들이고, 근심을 증발시키면, 즐거워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담배 태우는 사람들 표정이 좋아 보인 적이 있나. 글쎄.
달려서 액상담배를 파는 가게와 횟집과 문이 닫힌 꽃집과 도시락집과 네일샵과 카페를 지났다. 또, 카키색 바지를 입은 남자가 전자담배를 태웠다. 저번의 그 횡단보도였다. 아마 그 때와 같은 사람일지도 몰랐다. 늘 달렸던 구간에서 걸었고 걸었던 구간에서 달렸다. 엉망이었다.
기도문 낭독과 뭔지 모를 사람의 영상보다는 차라리 그 신나는 종교음악이 나았다. 오늘은 그게 나왔다. 괜찮을 줄 알았던, 사실은 그냥 그러기를 바랐던 옆 병실의 애가 푸닥거리하듯 중환자실로 가버렸다.
그리고 내가 딸의 비위관을 꽤 잘 고정해 주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어제보다 열이 안 나서인지, 내가 난리치며 뛰어다니는 걸 봐서인지. 아빠는 어제보다는 덜 띠꺼웠다. 눈은 여전히 동그랬다.
그는 까만 하늘 아래 서서 그 안에서만 살 사람이었다. 그만 그럴 게 아니었다. 아내도, 그러니까 그 애의 엄마도 그럴 거였다. 바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변명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안 바빴으면 여섯 시 반에도 줄 수 있었을 약을 일곱 시 반에야 준 건 그가 그렇게 물을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정말 바빴다. 몸과 머리가 하나씩에 팔다리는 두 개씩이었다. 그래서 그게 최선이었다. 그리고 나는 최선을 다했다.
드레싱 바꿔 주세요, 이거 고정해 주세요. 이거 울려요. 열 나요. 감염. 접촉주의. 가운을 입고 장갑을 끼고서는 뭔가를 작게 잘라 얼굴에 붙일 수가 없었다. 장갑을 다 벗고 고양이 수염인 것처럼 코에 접착제제를 붙였다. 좀 귀여웠다. 아빠는 가위를 조심히 갖다대는 내게 안 떨어지기만 하면 됩니다, 고 했지만, 중환자실에서는 하트모양으로 해놨더라구요. 라고 언급했었다. 그래. 딸이잖아. 어린 딸. 딸이긴 딸이니까.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었으나 붙여 놓으니 고양이 분장 같았고 귀여웠다. 그래도.
내가 뭔가를 떼려 낑낑거리자 그가 말했다. 제가 뗄게요. 내가 낑낑거린 데는 이유가 있었다. 잘못 빼면 관 전체가 쑥 빠지니까. 괜찮다고 말하고 그걸 완전히 다 뗐다. 아빠가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띠꺼운, 그래서 편안한 그에게 들은, 일반 환자들의 다섯 배는 더한 일을 해주고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은 그 말. 그리고 여전히 그와 나는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한다.
왜냐면, 걔는 나아질 여지가 없거든. 이 병원에 등장한 작년 초부터 그럴 거였으니까. 가역적인 병세와 비가역적인 병세가 있다면 걔는 완전히 후자였다. 심연? 반타 블랙? 절망? 어떤 단어를 붙일 필요도, 해석과 확장의 공간도 없는 그런 상태. 기도문 낭독이 내내 들리는 방. 띠껍지만 필사적인 그들. 까만 하늘 아래의 사람들.
나는 나도 가끔 그런 입장인 기분이 들었다. 왜 이런 쓸데없는 불행을 보고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해야 하는가. 그는 동그란 눈으로 나에게 말을 던졌다. 그래서 나도 겉치레 없이 그렇게 말했다. 화내고 서로의 기분을 해하기 위해 그런 게 아니었다. 그 하늘 아래의 그에게는 그럴 여력이 없었다. 바쁘다는 말만으로는 가끔은 억울한 나도 그랬다. 띠꺼워서 편했다.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할 말만 해도 돼서. 그래서 생각했다. 나는 중환자실 근무가 사실 좀 더 맞으려나.
백신을 맞고서 이상해진 애들이 꽤 있었다. 류는 다르지만 정말 비가역적인 손상이 온 애들. 아무튼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애들. 연초에 중환자실에 이름이 뜬 다 큰 남자애. 오후에 약을 줘야 해서 계속 전화했는데 엄마는 연락이 안 됐다. 여섯 시, 휠체어의 그와 엄마가 병동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들을 그렇게나 찾아댔으나, 곧 중환자실로 넘어갈 다른 애와 관련해서 보호자와 이야기하고 중환자실에 전화하고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물건을 치우고 여하간 굿이라도 하는 것처럼 일하다가 여섯 시 반에야 그 친구에게 갔다. 머리맡에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누구누구의 희망 캠프. 여기가 캠프사이트인지 궁금했으나 묻지 않았다. 절대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로 병상에 누운 채 희망 캠프?질문은 때로 기만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죽어라 바빴다.
다 큰 남자애의 손목에 토끼풀꽃을 엮은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한두 시간 전쯤에 꺾어 끼웠을 빛깔. 이쁘네. 그리고 강아지 인형. 빨간 혀를 헤 내민 그 큰 리트리버 인형. 어제는 없던 거. 창가의 니모들. 언제부터 쟤들이랑 살았을까?
얜 이름이 뭐야? 나도 있었는데. 이케아에 파는 거잖아. 이름을 뭐라 말해줬는데 기억이 안 났다. 엄마는 아하하하하 하고 웃었다. 아, 너무 감동 파괴자 아니셔? 아. 이거 거기서 파는 거 몰라요, 누구누구는? 알죠, 아는데. 아. 너무 웃겨. 다 큰 애는 그 인형을 껴안고 잤다. 아프기 전에, 그렇게 되기 전에도 아마 그러고 잤을 것 같은 모양새로.
아마 오늘 다시 출근하면 그 토끼풀꽃 팔찌는 없겠지. 근데 어차피 널린 게 그 꽃이니까 다시 채우면 된다.
초여름의 물 냄새가 짙었다. 민물 냄새. 아쿠아리움의 펭귄 전시관 가까이에 가면 나는 냄새. 기억에 남은 최초의 물냄새. 샌디에고의 씨월드에 갔을 때, 엄청나게, 정말 엄청나게 큰 범고래 쇼를 보기 위해 쇼타임을 기다릴 때 나던 냄새. 사실 그 놀이공원 전체에서 나던 냄새. 열 살 때니까 18년 전.
멋지다. 그 때 윤선생을 했었다. 그 몇 달 전인가 교재의 한국인 캐릭터가 미국인 가족과 함께 씨월드를 가는 예문 같은 게 나왔다. 거길 와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달리는 동선에 갤러리아가 있고 그 안에도 큰 수족관이 있다. 엄청나게 큰 고래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사실 뛰고 있는 이 지층 아래에 그 고래가 있을지도 몰랐다. 그 때의 그 범고래는 아니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그냥 그 물냄새가 나서, 당장은 산책로의 조명과 물가의 큰 아파트와 상가가 비추는 야경만 보이는 그 시꺼면 수면 아래에 다른 게, 뭔가 다르고 잘 살아 숨쉬고 헤엄치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아니.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었다.
한 바퀴를 다 돌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도 코끝에서는 병원 냄새가 났다. 고무 냄새와 까만 비닐봉지에 얼굴을 박으면 날 것 같은 냄새와 뭔가 조금 눅눅한 듯한 냄새가 섞이면 나는 냄새. 내 하늘은 까만 적 없었다. 부분부분 짙은 보라색과 갈색의 혼합 같거나 아예 한밤중인데도 어두운 누런색인 날도 있었고, 깨끗하게 짙은 남색이기도 했다. 달리면서, 가로등에 비치는 내 그림자의 어깨가 단단해 보였다. 내 어깨는 원래 좀 그랬다. 건강해 보였다. 그 그림자의 나는 상당히 건강한 사람이었다. 아닐 이유도 없긴 했다.
까만 하늘은 사실 없다. 이렇게 달리는 동안에는 없다. 있다면 기록을 좀 해 놓는 게 좋을 정도로 희귀하다. 그래서 그런 까만 하늘은 특정한 곳에서만 존재하는 관념이고 현실일지도 몰랐다. 내가 달린 하늘은 언제나 다른 빛깔이었지만 내 하늘도 가끔 까맸다.
건강해 보이는 어깨의 모양새로 달리고 집으로 와서 설거지를 했다. 어제 그 시간에는, 그만둬야 하나 생각했다. 씹듯 토해낸 게 아닌 조용히 떠오른 질문. 담배와 술 생각을 하고서 결국은 바깥을 달리고 오자 그 생각이 옅어져서 조금 억울했다. 살기 위해 산다. 그래서 감히, 그 눈이 둥글고 앞뒤 없이 핵심만 말하는 그 보호자의 태도가 편했는지도 모른다. 살기 위해 사니까. 말하니까. 목적을 위한 목적 같은 게 없으니까.
경계에 있다. 모두가 그렇겠지? 까만 곳을 보면서 실상은 안 까만 곳을 오가며 산다. 건강한 어깨로, 하루종일 머릿속이 다 마르는 기분이 될 때까지 일한 후 다시 달리면서. 살기 위해 살면서. 다행히 나는 다 까만 세상에 살지는 않아서.
나도 토끼풀꽃을 볼 줄 아니까. 내일도 한 달 후에도 내년에도 그건 도처에 피어서 널려 있겠지. 그걸 내가 볼 수 있으면 된 걸지도 모른다. 내 하늘은 그렇게까지 아주 까맣지만은 않으니까. 그게 사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