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마니'라는 영화를 우연히 보게 됐다. 마음 한편이 이상하리만치 가을처럼 느껴진다. 한구석이 가을 낙엽에 쓸어내려진 것처럼. 한구석에 가을바람이 낙엽을 가득 담고선 사스 락 사스 락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나도 안나처럼 사람들을 믿지 못했다. 친구들 모두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줘서 함께하는 것 같고 모두 나를 이용하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가족들까지도 내가 그저 가족이기 때문에 함께한다고 생각했다. 모두들 나를 그냥 내버려 뒀으면 좋겠었고 내가 너무 싫었다. 내 모든 모습들이 싫었다. 나도 안나처럼 많이 달렸던 것 같다. 하루는 비 오는 날, 내리는 빗속에서 한없이 달렸고 천둥 치는 날에도 달렸었다. 화가 나서. 나 자신이 답답해서. 다시 앞으로 나가려고 일어서던 날마다 무언가가 내 발목을 잡고 끌어내리는 것 같았다. 언젠가부터 누군가가 내 마음에 메아리를 풀어놓았다. 그 메아리가 매서운 바람소리처럼 "너는 안돼, 너는 안돼"하고 소리쳤었는데 지금에야 그 목소리가 내 목소리였다는 것을 알 것 같다.
지금은 다시 일어났다.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너무 멀리도 말고 너무 가까이도 말고 딱 한 발자국만. 계속 마음 한 구석에 외로움과 불안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추억의 마니'를 보면서 아침 이슬에 구슬처럼 닦인 것 같다. 나도 언젠가 내게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을 찾고 싶다. 천둥번개를 잘 참았다고, 잘 견디고 있다고.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아무리 사랑하고 내가 아무리 사랑받더라도 마음이 아프거나 헐겁게 달그닥거리지 않을 것 같다. 멀리 별을 바라보며 저 별에 가고프다고 하는 것처럼 그 사람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되뇐다. 나도 기다리고 있다고.
잘해보고 싶다. 다시 앞으로 잘 나아가 보고 싶다. 내 마음의 가장 파랗고 가장 아름다운 가을을 잃지 않고선. 가을의 가장 차갑고 외로운 부분까지 견뎌낼 만큼 단단한 땅이 되어 가을 낙엽을 피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