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새로운 시작과 견뎌내야 할 무게

2-2 친정아빠와의 이별

by 하린



“슬픔이 그대의 삶으로 밀려와

마음을 흔들고 소중한 것을 쓸어가 버릴때면

그대 가슴에 대고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 랜터 윌슨 스미스 -








“아빠 이젠 편안하게 쉬도록 해.”


병원에서 4년 동안 누워 있으면서 아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몇 번이고 생각을 했었다. 대학병원, 재활병원, 요양병원으로 이렇게 옮겨 다니면서 아빠는 마지막으로 옮겨갈 때 울면서 말했다.


“제이야, 아빠 살고 싶다.”


그때 아빠는 알았을까? 죽음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을 가슴을 휘어잡고 나는 말했다.

“아빠 살고 싶으면 재활치료를 하고 걸어야지 하는 마음가짐도 가져야지.”


“응. 그런데 무서워. 이제 안 된다.”



아빠는 재활치료 얼마하지 못하고 세 번 넘어지고는 거의 누워만 있었다. 그렇게 횟수로 4년 4년 동안 병원에서 생활하면서 요양병원으로 옮겨지면서는 약 먹는 것도 잘 먹지 않았다. 병원에서 걱정을 많이 했다. 나 역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아빠가 미웠지만 걱정은 누구보다 심했다. 어릴 때 아빠한테 많이 맞고 자라서 더욱 아빠를 미워했다.



아빠가 병원에 지내기 시작하면서 병원을 옮겨 다닐 때마다 생각을 했었다. 1년째는 ‘내가 왜 간병을 해야 하냐.’ 2년째는 ‘여전히 일어날 생각이 없는 아빠 답답하다.’3년째는 ‘아빠, 아빠 손녀 현이랑 놀고 싶잖아. 일어나야지.’ 4년째는 ‘아빠 왜 이렇게까지 약한 마음으로 있는 거야. 이제는 포기하는 거야? 나 아직은 아빠 보낼 생각 없는데...’그리고 아빠는 내 곁에서 영원히 떠났다. 그때 아빠 나이는 66세 뇌경색이 무서웠다. 아픔이라는 것도 무섭고, 병이라는 것도 무서웠다. 아빠란 존재가 나에게 있어서 큰 존재는 아니었다. 아빠는 묵묵하고 무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큰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현이를 낳고 아빠가 달라보였던 그때를 봤을 때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아빠 보내고서야 한참을 울었다. 당일치기 일을 하고 받은 돈으로 우리 집에 와서는 물만 마시고 엄마가 집에서 기다린다며 아빠는 집으로 갔었다. 그렇게 아빠는 울 집 근처에서 일할 때 몇 번이고 먹을 거 사들고 왔었다. 그때 아빠는 내가 좋아하는 수박과 현이가 좋아하는 과자와 빵을 사가지고 왔다. 당일치기로 일한 값을 받고 버스비만 빼고 먹을 거 사들고 왔었다. 나는 아빠의 그런 모습이 싫어서 좋은 말을 하지 않았다. 나보고 나오지 말고 집에 있으라며 뒤돌아서서 갈 때 아빠의 등을 그제서야 나는 봤었다. 그 전에는 보고 싶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두둘겨 맞은 과거로 인해 아빠를 보지 않았던 것인지 몰라도 뒤늦게 아빠 등을 보았다.



아빠의 등을 보고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조금이라도 아빠한테 좋은 말을 해줄 걸 왜그리 못난 말을 했는지 그제서야 아빠의 등을 보고 ‘이렇게 늙었구나!’ 했다. 나를 때릴 때 그때의 모습이 아니었다는 걸 느끼고는 한참 울었다. 그리고 그 해 겨울 아빠는 뇌경색으로 쓰러져 돌아가실 때까지 병원에서 지내야만 했다. 힘든 삶이었다는 것을 나도 안다. 아빠의 자리가 컸다는 것도 안다. 맞은 만큼 미워했지만 간병하면서 아빠의 삶이 참 보잘 것 없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보내드림에 있어서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보내드리고도 술로 몇 년을 버텼다. 왜 그랬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고통을 내가 붙잡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무엇을 걱정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그 마음이 더 죄송스럽다. 그래서 편안하게 아빠를 보내드리고 싶다. 겉으로는 무섭게 매몰차게 했지만 그래도 자식 하나밖에 없는 나를 생각해준 아빠의 마음을 가슴 저 넘어 전해드리며 인사를 해야겠다.



“아빠 늦었지만 이젠 정말로 안녕. 어릴 때 아빠가 나 예뻐 해준 거 내가 아빠 품에서 안겼던 거 기억하고 있어. 함께 있을 때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하고 아빠 이제는 위에서 아빠 손녀 현이를 지켜줘. 아빠라는 존재를 내게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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