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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토끼 Feb 28. 2022

특별한 손님들(최악의 손님 vs 최고의 손님)

3월 12일

특별한 손님들(최악의 손님 vs 최고의 손님)


문구점을 하면서 많은 손님들을 만난다.

유모차를 타고 오는 베이비 손님부터, 성경을 필사하시는 할머님까지....

물론 초등학교 아이들이 우리 문구점 손님의 80% 이상을 차지하긴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연령층이 날마다 문구점을 다녀가신다.


그중 최악의 손님과 최고의 손님을 꼽아 보았다.


바람과 함께 사라진 여인


처음 가게를 시작 한지 몇 개월 안됐을 때였다.

한 아주머니가 조용히 가게 안에 들어왔다.

물건 몇 가지를 고르고, 계산을 하려는데 돈이 모자란다고 하는 거였다.

나는 웃는 얼굴로 그럼 잔액은 내일 나오시는 길에 갚으라고 이야기했다.

사실 처음 보는 분이었지만, 이 동네 분이겠거니, 누군가의 엄마겠거니 했던 거였다.

다행히, 그다음 날 돈을 가지고 가게로 오셨다.


© gabriellefaithhenderson, 출처 Unsplash


그리고 며칠 뒤 그 여자분이 또 나타났다.

이번에도 이거 저거 푸짐하게 고르더니 가방을 뒤적이는데, 이번에는 지갑을 빠뜨리고 온 거 같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먼저 죄송하다며, 내일 돈을 갔다 주면 안 되겠냐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때는 가게 한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이기도 했고, 설마 이 돈을 떼어먹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간 그 아주머니는 그야말로 바람과 함께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 후 그녀는 영영 볼 수가 없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바로 앞에서 얼굴을 본다 해도 누군지 알아볼 수도 없을 것 같다.




홈스쿨링 하는 소녀



아이들이 다 등교한 조용한 시간에 문구점을 찾아온 여자아이가 있었다. 열서너 살 되었을까?

조용히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노트며, 필기도구며, 색연필 등을 사 가지고 나갔다.

쟤는 왜 학교를 안 갔지? 어디 아파서 쉬었나?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가끔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조용히 인사를 하고 들어와서는 또 조용히 물건을 사서 나가는 게 아닌가!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남편 말에 의하면 그 아이는 학교를 안 다닌다고 했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홈스쿨링을 하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 아이는 일주일에 두세 번 나타나서 조용히 물건을 고르고 사 갔다.

남편은 그 아이가 오면 가끔 장난도 치면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왜 학교를 안 다니는지 궁금했지만, 그런 개인적인 일을 물어볼 수가 없었다. 혹시 그 아이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기에.....

어느 날 한참 안 보이더니 얼굴이 까맣게 타서 찾아왔다.


그래서 "어디 다녀왔나 보네~ 얼굴이 너무 보기 좋게 탔어" 했더니, 가족들과 스페인을 다녀왔다는 거였다.

스페인의 인상은 어땠는지, 날씨는 어떤지 이런저런 궁금한 것을 물어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 standsome, 출처 Unsplash


우리 부부가 특별히 잘해 준 것도 없는데, 어느 날 그 아이 엄마가 과일을 한 아름 가지고 가게에 오셨다.

시골에 다녀왔는데 너무 많아서 가져왔다며 놓고 가셨다.

그 후로 김장철에는 김치를, 명절에는 김 세트며 잼 등을 아이를 통해 전해 주시는 게 아닌가!


근처 어디 산다는 것만 알았지 집도 모르고, 언제 올지 몰라 뭘 전해 줄 수도 없어 그저 받기만 했다.

그다음에도 가끔 시골 다녀올 때면 양파며, 직접 짠 들기름이며, 자꾸 뭐를 들고 왔다.


너무 받기만 하니 미안해서 방법이 없을까 생각을 하다가, 일기장으로 쓸 수 있는 예쁜 노트와 3색 볼펜을 포장해서 엄마와 아이한테 주려고 기다렸다가 전해 주었다.

한 해가 끝나는 연말에는 다이어리를 포장해서 선물하기도 했다.


© Pexels, 출처 Pixabay


그 아이가 한동안 안 보이더니, 어느 날 꽃다발을 들고 가게를 찾아왔다. 이사를 가게 되어 인사를 하러 왔다는 거였다.


그 아이가 주고 간 꽃다발은 한동안 가게를 예쁘게 장식해 주었다.

지금도 가끔 미소가 예쁜 그 아이와, 차분하고 온화한 모습의 아이 엄마가 떠오른다.                                                                

남과 다르면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참 많다.

저 사람은 왜 이렇게 뚱뚱해? 왜 저렇게 말랐어? 저 사람은 옷을 왜 저렇게 입었어? 머리 색이 저게 뭐야?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한마디가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일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 아무것도 물어봐 주지 않는 우리 부부에게 고마움을 느꼈던 것이었을까?

그 아이가 남들과 다른 시스템으로 공부를 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갇혀서 주눅 들지 않고, 상처받지 말고 밝게 잘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살면서 좋은 사람만 만나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구점이라는 특성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생각해 보면 다른 업종에 비해 나쁜 사람들을 덜 만나고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 참 감사하다.


우리 문구점을 이용해 주는 모든 아이들과 그 가족들이 늘 행복하기를, 점점 메말라가고, 흉포해지는 세상에서 무탈한 하루하루를 보내기를 기원한다. 무탈한 하루가 있기 위해서는 수많은 행운이 교차되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하니 말이다.



<블로그 댓글 중>

최악의 만남 최고의 만남이 늘 공존하는 세상, 문구점도 하나의 작은 세상이네요.

최악의 손님은 한두번이 아닐텐데 그 삶을 지금도 이어가지 않을까~~ 기억에 남는 그 소녀도 문득문득 두분을 떠올릴거에요^^♥

동전의 양면같은 세상이죠

작은 공간에서 다양한 일들이 수없이 펼쳐지네요

문구점의 세상이야기 무궁무진할 것 같아요~**

정말 이야기가 있고 삶이 교차하는 문구점이예요 다음 이야기도 기다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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