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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토끼 Feb 19. 2022

아이 앞에서 무릎 꿇은 아빠|마음아픈 카드 도둑

2월 26일

아이 앞에서 무릎 꿇은 아빠


매일 같은 일들을 겪다 보면 적응이라는 걸 할 수도 있을 텐데, 겪을 때마다 적응이 안 되는 건 물건 훔치는 아이들을 잡고 나서이다.


우리 문구점은 나름 물건 훔친 아이들을 잡았을 때의 대응 매뉴얼이 있다.

우선 아이에게 물건을 훔쳤다는 자백을 받고 나면, 종이에 본인의 이름, 학년 반, 가져간 물건과, 부모님 연락처, 반성문을 쓰게 한다. 그리고 반드시 부모님께 연락을 드린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믿기지 않는 현실에 당황하는 분들이 많다.

간혹 어떤 분들은 우리 애가 그럴 리가 없다고 부정하는 분도 있다. 그래서 본인에게 가져간 물건 목록과 반성문을 받는 것이다.


지금까지 겪어본 부모님들은 대부분 대처를 잘하신다. 아이를 따끔하게 혼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약속을 받고, 직접 아이를 데리고 와서 사과를 시키고, 부모님이 물건값을 치러 주신다.


그중 기억에 남는 아버님이 한 분 계셨다.

여자아이였는데 역시 물건을 몰래 집어가다 걸렸고, 매뉴얼대로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손님이 뜸한 저녁시간, 한 손님이 아이를 데리고 들어오셨다.


바로, 물건을 훔쳤던 그 여자아이였다. 아버님은 아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우리 부부 앞에 무릎을 꿇으시는 게 아닌가!


© naassomz1, 출처 Unsplash


오히려 우리가 너무 당황해서 아버님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자식을 이렇게 잘 못 키워서 너무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절대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사과를 하셨다. 말씀하시는 아버님의 음성이 살짝 떨렸고, 지켜보는 나는 울컥했다.


그 아이가 무릎을 꿇는 행위에 담겨 있는 천금 같은 진중한 의미를 알았을까?

그 의미를 알지 못했더라도 아이는 아마 다음부터 절대로 남의 물건을 훔치지 못했을 것 같다.





마음 아픈 카드 도둑


물건 훔치는 아이들을 잡고 나면 과정도 과정이거니와, 마음의 스트레스가 엄청 쌓인다.

그 아이들보다도 부모님을 만날 때 마음이 너무나 좋지 않기 때문이다.

울음을 터뜨리는 엄마와 같이 눈물 흘린 적도 있었다.

부모님의 당황스러움과, 아이에 대한 실망감이 고스란히 공감되어 내 마음까지 불편해진다.


이 사연은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무거운 이야기이다.


한 남자아이가 한 통에 3만 원이 넘는 유희왕 카드 2통을 훔쳐 갔다. 1팩도 아니고 2 통이라니.....

그 장면은 고스란히 CCTV에 찍혔고, 도둑은 반드시 현장에 나타나기에 기다려야 한다.

요즘 CCTV는 화질이 좋아 대충 어떤 아이인지 알긴 하지만, 어쩌다 한번 오는 아이들은 내가 알 수 없는 아이도 있다.


그럴 때는 그 아이의 가방, 실내화 주머니, 가방에 달린 액세서리 등을 기억해 놓았다가 그 아이를 특정한다.

그리고 아이가 다시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아이가 나타났고 나는 부모님 연락처를 받아서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전화를 할 때도 충격받을 부모님을 생각해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 introspectivedsgn, 출처 Unsplash


그날 저녁 아이 아빠가 가게로 다급하게 오셨다. 지방에서 일을 하다가 소식을 듣고 급하게 오셨다는 거였다.

그런데, 아이가 연락이 안 된다는 거였다.

혹시 아이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냐고 되려 나한테 물으셨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 아이는 결국 그날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경찰에 실종 신고를 내고, 학교에서도 아이의 행방을 찾고 일이 커져도 너무 커져버렸다.

다행히 아이는 그다음 날 저녁 무렵 집에 돌아왔다.


아이의 엄마가 문자를 보내왔다. 지금 당장은 돈이 없어서 며칠 내로 돈을 꼭 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며칠 뒤에 한 여자분이 술에 취해 가게를 찾아오셨다. 알고 보니 아이의 엄마였다.


이 부부는 재혼가정이었다고 한다.

엄마는 딸을, 아빠는 아들을 각각 한 명씩 데리고 새로운 가정을 꾸렸던 것이었다.

그런데, 지방으로 자주 일을 다니시는 아빠와 새엄마 사이에서 아이가 방황을 좀 했던 모양이었다.


문제는 이 일 때문에 부부의 사이가 틀어져 버렸다는 거였다.

남편은 아이를 잘 케어하지 못했다고 아내를 채근했고, 아이 엄마는 다 큰 남자아이를 자신이 어떻게 하냐고 짜증을 냈고, 결국 다툼으로 번져 그게 속상해서 술을 마시고 가게를 찾아온 거였다.


결국 이 부부는 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다시 이혼한 걸로 알고 있다.




이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내 마음에는 작은 상처가 생겼다 아물곤 한다.


CCTV를 계속 돌려가며 훔친 아이의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 과정도 눈 아프고 힘들지만, 그 아이와 부모님에게 이야기하고 해결하기까지의 이 불편한 상황들이 너무 속상하고, 안타깝고 싫다.


유희왕 카드 사건은 생각할 때마다 내 마음이 너무 무거워진다. 나 때문에 가족의 평화가 깨진 건 아니겠지만, 내가 그 실마리를 제공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니 말이다.


그래서, 물건 훔치는 아이들이 더 밉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나쁜 짓은 제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든 아이들이 훌륭한 어른으로 잘 자랐으면 정말 좋겠다.



<블로그 댓글 중>


헉! 무릎꿇는 아빠를 읽는 순간 가슴이 꽉 막히면서 눈물이 나네요.

그 어떠한 훈계보다도 아빠의 무릎꿇은 모습은 절대 아이가 나쁜 짓을 더이상 하지 못하게 하는 깊은 가르침이 될 것 같아요.

유희왕사건도 안타깝네요.

문구점에서 문구류만 파는게 아니라 이런 도난사건까지 해결해야 하니 너무 힘드실 것 같아요.

그래도 힘내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저 같아도 두고두고 마음에 남을 것 같아요...;;;

감성토끼님 심정이 백번이고 이해가 되네요..ㅠㅠ

무거운 마음에 오늘은 조잘조잘 수다가 나오지 않네요.. 참, 쉽지 않군요~;;;;;;

에고..이런 일들이 있으셨군요.

감성토끼님은 아이들이 물건을 훔쳐도 '훔치는 아이'로 보지 않고 그 아이 하나하나를 보시기에 하나하나에 마음이 쓰이시는 거죠.

훔쳐간 아이. 돈받아야할 아이로만 보면 이런 글도 나올 수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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