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친정 같은 브런치 시댁 같은 헤드라잇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합니다

by 여름의푸른색

브런치에 매일 글을 쓴다.

앞이 캄캄한 동굴 속에서 저 멀리 희미한 빛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간다. 글을 읽고 글을 쓰는 동안에 벌어지는 외부의 소란함은 잠시 덮어두고 나와 세상을 철저하게 단절시킨다. 엄마도 아내도 잠시 내려두고 쓰는 글은 외로운 시간이다.





그 외로운 시간에 요정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나와 같은 길을 손잡고 걸어가는 요정들은 사는 곳도 직업도 나이도 다르지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끈끈한 우정을 나누고 있다. 요정들이 달려와 남겨주는 댓글은 달콤한 꿀이 되어 글을 타고 흐른다. 나는 그 꿀을 예쁜 꿀단지에 한 방울씩 모으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한 방울의 힘은 컸다. 꿀단지의 눈금이 조금씩 차오르는 게 보였다. 나는 꿀단지를 끌어안고 '글아! 더 달콤해져라~얍'하고 나지막이 소원을 빌어본다.

스멀스멀 두려움이 다시 찾아오면 얼른 꿀단지 뚜껑을 열고 크게 숨을 들이쉰다. 달콤해.




헤드라잇에서 제안을 받고 심사결과를 기다렸다.

다행히도 내 모든 운을 끌어모아서 헤드라잇에도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브런치를 디디고 또 다른 계단 하나를 오르기 위해 한 발짝 내디뎠다. 새로운 것은 적당한 설렘이 주는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헤드라잇이 그랬다.


반면 브런치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품어주는 친정 같은 곳이다. 여기에는 가족보다 더 가족처럼 마음을 나누는 요정들이 있기 때문이다. 쭈뼛쭈뼛 시댁에 처음 가는 날처럼 헤드라잇을 기웃거려 본다. 역시 적응이 쉽지 않다. 그리운 요정들도 보고 싶었다. 외로운 섬에 뚝 떨어져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어색하다고 해서 시댁을 안 갈 수는 없다. 자꾸 들여다보고 정을 붙여야 가족이 되니깐.




헤드라잇은 브런치와 다르게 내가 쓴 글이 수익으로 돌아온다. 이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엄청 유의미한 결과이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책을 읽었던 지난 3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좋은 사람들과 기쁨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도 크나큰 행운이다. 우리가 함께 글이라는 배를 타고 다 같이 노를 저어 가는 하루하루가 그저 감사하다.


단돈 100원이면 어떤가

내 두 발로 당당히 이 땅을 딛고 있다면

중심이 정확히 바닥을 디디고 있다면

지금의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누구보다 기뻐해주는 건 남편이다.


"여보 내가 돈 벌어서 맛있는 돈가스 사줄게"

남편의 기쁜 함성이 들린다.

오예~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저 운이 좋았다.

나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