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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푸른색 Jun 05. 2023

사랑니와 맥주

오프라인 독서모임 후기



쓸모없는 것들이 거추장스럽다. 지난주 치과에 가서 남아있2개의 사랑니 중에 하나를 쏙 뽑아버렸다. 개운하다. 아프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될 거라 짐작했지만 생각보다 편안했다. 치과의사 선생님의 기술이 좋은 건지 마취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불편함이 없는 이 느낌이 이상하게 상쾌하다.




독서모임에 초대를 받아 강남으로 향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더 이상 새롭지 않아 한동안 멈추고 있었는데 오늘은 다르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좋은 에너지가 +1씩 상승하는 기쁨을 느꼈다. 9호선 급행을 타고 강남역에 내려 모임 장소까지  걸어갔다. 강남역에 마지막으로 왔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를 않는다. 높은 빌딩숲 사이에 나라는 사람은 마치 미니어처 같았다. 있는 듯 없는듯한 나의 존재가 갑자기 편안하게 느껴졌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어색하면 어쩌지? 마흔이 되어도 새로운 시간들이 주는 긴장감은 여전했다.




반가웠다. 반가운 마음에 악수도 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간식도 먹었다. 더운 날씨에 맥주의 유혹도 뿌리치지 못했다. 아차 사랑니 발치했지. 좋은 날 좋은 사람들과 처음 만나서 시원하게 마시는 맥주 한잔이라니.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조합이다. 발치로 금주를 해야 했지만 잔을 부딪히고 싶은 욕망이 단전 깊은 곳에서 끓어올랐. 각자의 취향대로  탄산음료와 맥주가 가득한 잔을 가운데로 모아서 짠. 잔이 모이고 마음이 모이는 시간. 인생의 찰나는 이렇게 남겨졌다.


스타벅스와 맥주의 절묘한 조합


슬펐다. 시원하게 쭉 들이켜야 하는데 한 모금  한 모금 소심하게 마시려니 속상했다. 그래도 좋은 분위기를 함께할 수 있으니 얼마나 행운인가.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게 빨리 지나가 버렸다. 유쾌하고 밝은 에너지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즐거운 이야기 속에 웃느라 정신이 없는 내가 있다. 무엇을 먹고 마시느냐보다 누구와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건가 보다. 함께라는 말이 힘이 되는 시간이었다.




오늘 마지막 하나 남았던 사랑니를 뽑았다. 마취 때문에 아직은 얼얼하지만 마음은 시원하다. 마취가 풀리고 나면 언제 그 자리에 이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겠지.




인생이란 고통 속에서도 웃음과 행복으로 마취가 되어 적당히 잊혀가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사랑니처럼 빼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 때문에 더 이상은 아파하지 않도록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담담하게 걸어가고 싶다.



사랑니 자리가 아물면 작가님들과 진하게 맥주잔을 부딪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 따뜻한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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