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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푸른색 Jun 04. 2023

아직도 헤어짐이 아픈 나에게



마지막 일주일이다. 익숙한 동네 골목마다 애틋함이 묻어난다. 자주 가던 카페와 맛집까지 모든 것이 아쉽기만 한 하루를 보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많았지만 결국에는 좋았던 기억만 남는구나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시간이다.




나는 헤어짐이 참 버거운 사람이다. 다시는 뿌리를 내리지 앓겠다고 다짐했던 날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슬금슬금 뿌리를 뻗어 함께 살아가고 있었나 보다. 이곳을 떠나려고 하니 생각보다 넓고 깊게 박혀있는 뿌리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흙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아주 작은 뿌리들까지 나의 마음을 잡아 끈다.




타지에서 살아가는 건 만만치 않은 일들의 연속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을 일이 많이 생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가족보다 더 가까워졌다.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행복함을 주고, 아이들도 마음이 잘 맞는지 한 번을 싸운 적이 없다. 엄마들은 안다. 엄마끼리도 맞고 아이끼리도 잘 맞는 일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는 것을, 정말이지 이 어려운 사이를 우리가 가꾸어 왔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그렇지만 어디든 숨겨진 보석은 있다. 보석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예쁜 보석을 조심스럽게 보석상자에 담아두었다. 소중하게 대하고 아끼며 보석의 가치를 높여가는 일. 우리는 그렇게 4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했다.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건 같은 추억을 새기는 것이다. 우연히 카톡을 거슬러 거슬러 스크롤을 올려보았다. 아이들이 모두 같은 달에 태어나 항상 같이 생일파티를 했었다. 해마다 쌓여있는 아이들의 생일파티 사진을 보니 꼬물거리던 그때의 아이들도 함께 먹었던 수많은 음식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들까지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울컥했다.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카톡을 보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새어 나왔다. 막을 수도 없는 눈물이 흐르는 걸 보니 내가 얼마나 많은 정을 나누었는지 단번에 실감이 났다.

눈물을 닦아내고 콧물을 훌쩍거리며 이삿짐 정리를 하고 있었다. 남편은 에어컨 때문에 추워서 그런 거면 에어컨을 꺼주겠다고 했다.


그런 게 아니라 나 너무 슬퍼

터져버린 눈물을 보며 당황한 남편.


근데.. 해외로 가는 것도 아니고 곧 제주도에서 보기로 했잖아 잠시 떨어졌다가 여름에 다시 만날 건데?


그래도 나는 슬퍼


여자들의 세계를 아직은 잘 모르겠다며 훌쩍이는 나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코로나로 모두가 마음의 문을 닫고 현관문도 걸어 잠그고 조심하던  그 시절에도 우리는 서로의 집을 드나들며 겨우 숨이란 걸 쉬고 살았다. 공원에 가서 아이들을 실컷 뛰어놀게 해 주었고 해마다 제주도로 여름휴가를 함께 다니며 코로나가 끝나면 일본도 대만도 같이 가자고 약속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남편의 이름까지 똑같은걸 보니 인연은 인연가보다. 유쾌하고 착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나는 참 좋았나 보다 이렇게 아쉬운걸 보니.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아플 때도 한가득 정을 나누었던 이웃이다. 감사하고 고마운 인연의 한 단락을 마무리하는 것 같아 자꾸만 목구멍이 뜨거워진다.



한 가지 바람은 우리의 아이들이 지금처럼 이렇게 잘 지내다가 스무 살이 되어도 함께 배낭여행을 다닐정도로 소중한 사이가 되면 좋겠다. 대학교 근처에 같이 살면서 여자 셋이서 가족처럼 서로 아껴주며 의지하고 살아가면 좋겠다.


팍팍한 세상이라는 곳에마음이 맞는 언니 동생으로 남아, 그 힘으로 서로 보듬어주며 인생을 살아내면 좋겠다.


지금의 언니와 나처럼.






사진출처_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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