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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Cloud Apr 03. 2023

라스베이거스 타워 I

2006년

미국에서  초고층 건축,


1900년대 초부터 1973년 시카고에 세계최고 높이의 시어스타워가 세워졌던 던 시기를 미국 초고층 건축의 황금기라 생각한다. 그 이후 1998년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타워가 세워지고 세계최고의 타이틀을 가져가고(이 프로젝트로 빌딩 높이 규정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초고층 건축 시장이 아시아와 중동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테러리스트가 비행기로 충돌을 해서 건물이 무너진 이후, 미국에서의 초고층 건축 계획은 사라져 버렸다. 회사에서 하던 이미 계획단계가 끝났던 시카고의 트럼프타워도 오피스 프로그램을 없애고 주거를 넣었고 타워 높이를 줄이기 시작했다. 미국 최고 높이를 세워 테러리스트들의 타깃이 되는 것을 걱정한 클라이언트의 선택이었다.


내가 회사에 입사했을 즈음인 2006년, 텍사스의 한 디벨로퍼가 라스베이거스에 미국에서 제일 높은 건물을 계획하고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Feasibility Study를 진행 중이었다. 라스베이거스에 3,500실 단일 호텔 초고층 타워, 당시 라스베이거스는 엄청난 경기 호황이었고, 라스베이거스라는 장소이기에 미국 최고 빌딩 계획이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타워인 버즈 칼리파(두바이)가 한국의 타워팰리스에서 시작된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타워팰리스의 높이가 초기 설계 시에는 더 높았다고 알고 있고 완공되고 세계에서 제일 높은 주거 건물이 되었다. 버즈 칼리파를 구조 설계한 구조 사장은 다른 프로젝트에서 자주 타워팰리스 이야기 하고 은퇴를 앞두고 그의 대표작품들의 구조 모델을 만들어 전시회를 했는데 타워팰리스도 들어가 있다. 초고층 건물에서 구조 엔지니어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고 세워질 당시 구조 엔지니어가 생각하는 최적의 구조 시스템이 생기면 건축이 초고층 디자인을 할 때 그 구조 시스템을 이용하여 건물을 디자인하려는 경향이 있다. 위 세 프로젝트의 공통점은 카메라 지지대처럼 세 개의 매스가 삼각형을 이루고 나와 있다는 것이다. 이는 건축적으로 각층에서 면적대비 최대의 창문 변적을 줄 수 있으면서 구조적으로 더 안정된 시스템을 제공한다.

중간보다 좀 왼쪽에 타워팰리스 모델이 있다. (CDMX-Exhibition (SOM))


라스베이거스 타워를 당시에 타워팰리스는 지어진 프로젝트였고 버즈 칼리파는 공사 중인 상황이었다. 세계 최고 높이를 생각하며 버즈 칼리파를 했던 팀들이 이미 적용한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초고층 건축에서 구조적으로 중요한 요소는 Aspect Ratio(세장비)라고 불리는 그라운드에서 건물의 길이에 대한 높이의 비율이다. 보통 구조 시스템에 따라 다르지만 1:8 정도가 일반적인 비율로 알고 있다. 초고층 빌딩은 바람에 의해 좌우로 움직이는 힘에 대한 저항이 중요하기 때문에 아래를 넓게(길게) 할 경우 사람이 다리를 벌리고 있는 원리처럼 지지할 수 있게 되는 원리이다.


위의 슬라이드는 클라이언트에게 라스베이거스 타워가 앞의 두 프로젝트의 검증을 통한 구조적으로 안정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2006년 2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변화되었던 프로그램과 높이를 보여주는 다이어그램. 파란색 선은 305m를 붉은색은 610m를 나타내고 있다. 한때 805m 높이까지 올라간 적도 있었다.  


입사 후 3개월쯤 후, 버즈 칼리파(두바이)를 디자인한 사장이 전 팀원을 사장실로 불러 회의를 했다. 당시 회사의 조직은 지금과 많이 달리 굉장히 권위적인 구조였다. 평소 사장과 이야기할 기회는 없었고, 스튜디오 헤드가 가서 이야기한 것을 전달하던가 사장의 사랑을 받는 직원이 있으면 그 사람이 가서 이야기하고 온 것을 나머지 사람들이 토의하는 시스템이었다. 사장의 부름이 곧 권력을 나타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건축, 인테리어, 구조, 설비의 사람들이 사장실에 모여 이야기를 듣는데, 평소 들어보지도 못했던 사장의 목소리로 모두에게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우리들이 줄이는 작은 면적이 100층이 넘는 프로젝에선 X 100이 되어 빌딩의 효율을 높이고, 클라이언트를 만족시켜 계속해서 우리가 프로젝트를 끌고 갈 수 있다는 말을 했다. 이 프로젝트가 우리의 회사를 이끌어갈 다음 프로젝트라는 말도 했고, 내겐 처음 들었던 그 상황과 말이 아직도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많은 미팅이 만들어지고, 각종 컨설턴트들도 모여서 회의를 했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는 컨설턴트로는 광고 컨설턴트가 있다. 5-6명이 완전히 정장을 차려입고 와서 하는 이야기가 도시를 진입하는 순간부터 노출되는 광고에 대해 가격을 매기면서 가치를 계산을 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지나치는 많은 광고판들이 이런 사람들에 의해 계획된다는 게 내겐 굉장히 생소했던 경험이었고 지금도 기억을 하고 있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입사 후 6개월이 되지 않은 시점, 내가 잘 알지 못했던 정치적인 이유로 건축 디자인 사장이 내가 있던 스튜디오 헤드와 함께 파트너십을 맺고 새로운 회사를 차려 나갔다. 스튜디오 헤드는 팀원들에게 인기가 많던 사람이라 나와 일 년 차 친구 한 명을 제외한 모든 팀원이  스튜디오 헤드를 따라 회사를 나가는 상황이 생겼다. 당시 회사에는 세 개의 건축 스튜디오가 있었고 결론적으로 회사에 있던 건축 설계팀의 1/3이 빠져나가는 상황이었다. 이 사건은 회사에서 지금까지도 제일 큰 파장을 일으켰던 사건으로 남아있다.  


내 위에서 직속으로 일하던 친구도 높은 위치로 가면서 내게 같이 가자고 했으나, 난 입사한 지 6개월 밖에 되지 않는 내게는 굳이 옮겨야 하는 이유가 없었다. 이런 상황을 이야기했고 그 친구는 3년 차가 되기 전에 오라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3년 뒤 미국의 건축경기는 나락으로 떨어져서 모든 회사에서 엄청난 감원을 하던 시기였고 회사를 옮기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로 인해 회사에서는 더 이상의 인력유출을 막기 위해 남은 사람들과 면담도 하고 월급도 올려주기도 했다. 내겐 결과적으로 진행 중이던 이 프로젝트에서 타워 디자인에 좀 더 깊이 관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내겐 애증이 되었던 프로젝트였다.


디자인을 하던 사장과 스튜디오 헤드가 나갔고 회사에서는 이런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뉴욕오피스에서 새로운 사장을 시카고로 보내 계속해서 프로젝트를 진행시켰고, 난 덕분에 비교적 빠른 시간에 타워 디자인 쪽으로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워낙 규모가 큰 프로젝트라 디자인을 책임질 시니어 디자이너도 새로 들어와 일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 속에서 타워 디자인만은 뺏기기 싫어 참 처절히 일했던 기억이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Crown_Las_Veg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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