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잠깐이면 괜찮겠지
책상 위에는 글이 쌓여 있었다.
날마다 밤마다 쓴 문장들.
누구에게 보여줄 것도, 어디에 내놓을 것도 아니었지만
재하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의 글은 일기 같았고, 기록 같았고, 때론 고백 같았다.
단어들을 하나씩 꺼낼 때마다,
그는 자신을 조금씩 다시 세워가고 있었다.
그건 이제 단지 밤의 일이 아니었다.
낮이면 그는 도시를 돌아다녔다.
한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남산 자락을 천천히 걸어 오르기도 했다.
햇살이 좋을 땐 카페에 앉아 시집을 읽었고,
종이 냄새가 가득한 중고서점 안에서는 오래 머물렀다.
몸을 움직이면 생각도 조금씩 정리됐다.
그리고 해가 지면, 다시 책상 앞에 앉아
그 하루를 문장으로 옮겼다.
누군가 보기엔 별일 없는 일상이었지만,
그에겐 분명 의미가 있었다.
그렇게 재하는, 마음속에 묵혀 있던 감정들을
조용히 꺼내 펼쳐보며
다시 ‘살아 있는 자신’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주일 동안,
핸드폰 화면은 몇 번이나 깜빡였다.
민규.
그 이름이 알림창 위로 계속 떠올랐다.
처음엔 보지 않았다.
읽지 않았고, 읽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손가락으로 알림만 닫았다.
그러다 어느 날,
문자 한 줄이 유독 눈에 밟혔다.
형, 성우가 다쳤어.
시간 되면 얼굴 좀 보자.
며칠째 그대로였다.
열어보지 못한 메시지가
마음속 어딘가를 계속 두드렸다.
그날 오후,
재하는 글을 쓰던 손을 멈췄다.
노트북을 덮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햇살이 벽을 타고 길게 기울고 있었다.
한강에서 불어온 듯한 바람이
창문 틈을 지나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고요했다.
하지만 이번의 고요는 멈춤이 아니었다.
이제 움직이려는 사람의 고요였다.
그는 핸드폰을 들었다.
잠금 해제.
문자함 열기.
손끝이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그 메시지를 눌렀다.
짧은 정적, 그리고 숨소리.
“… 나가보자.”
그는 커피잔을 비우고,
노트북을 덮었다.
멈춘 게 아니라, 다음 장을 넘기려는 기분이었다.
세탁소에서 찾아온 셔츠를 꺼내 입었다.
깨끗하게 다려진 천의 감촉이
이상하게 오늘과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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