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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1부✧예의 있는 반항✧빛을 잃은 일상의 언어12화

한여름의 문턱

by bluedragonK

한여름의 열기는 여전히 거리를 짓누르고 있었다.
시멘트 바닥 위로 피어오르는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흔들렸고,
건물의 유리벽에 부딪힌 햇빛은 눈을 뜨기조차 버겁게 만들었다.
뜨거운 공기 속에서도 사람들은 제각기 목적지를 향해 걸었고,
그 틈새에서 재하는 묵묵히 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홀스태프 보조’가 아니었다.
한 달 남짓의 아르바이트, 그리고 실수와 시행착오를 거치며
정식 홀스태프로 올라섰다.
손님 앞에 음료를 놓을 때 손이 덜 떨렸고,
안내 멘트에도 조금씩 힘이 붙었다.
실수를 해도 얼버무리지 않고 바로 인정하며 수습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여전히 서툴렀지만, 확실히 성장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복귀한 성우가 홀을 한 바퀴 돌았다.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눈빛,
그 특유의 균형 잡힌 말투는 여전히 주변 공기를 정리하는 힘이 있었다.
홀스태프들 사이에서 성우는
‘차분함과 단호함의 기준선’처럼 존재했다.
서연 점장이 직접 키워낸 신뢰의 인물.
그가 복귀하자, 매장의 리듬이 다시 제자리를 찾는 듯했다.

필로소피의 밤은 언제나 화려했다.
부동산, 법률, 예술, 그리고 사업가들.
각자의 세계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서로의 향을 묻히듯 이곳을 드나들었다.
나이 지긋한 손님들의 여유는 당연한 것이었지만,
젊은 손님들의 부(富)는 또 다른 결이었다.
재하는 그들의 세상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여전히 ‘자신이 오늘 조금이라도 나아졌는가’였다.

월례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라운지 1층 중앙은 평소와 달리
긴 회의용 테이블로 바뀌어 있었다.
팀장급 이상만 참석하는 미팅이었고,
재하와 민규는 그 옆에서 다과와 음료를 준비했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
민규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형, 저번에 말한 부모님 치킨집 관리비 문제, 그거 어떻게 됐어?”

“아, 그거… 아직 알아보는 중이야. 생각보다 복잡하더라.”

“형이 알아서 잘 할 거야. 요즘은 뭐든 직접 싸워야 하더라고.”

짧은 대화는 그걸로 끝났다.
곧 서연 점장과 팀장들, 매니저들이 도착하며 회의가 시작됐다.

서연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단호했다.
“기억하세요.
우리는 고객을 존중하는 ‘최상의 서비스 철학’에만 전념합니다.
그 외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깨끗하고 품격 있는 공간,
그리고 거기에 어울리는 위스키와 와인을 준비하는 것,
그게 우리의 일입니다.”

잠시 말을 멈춘 그녀는
한 손으로 잔을 돌리며 시선을 모두에게 옮겼다.

“비즈니스 미팅이든, 사적인 모임이든,
그 안의 성격과 내용은 고객의 몫이에요.
우린 그들의 시간을 지켜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주문이 들어오면 친절하게,
하지만 지나치게 친밀하지 않게 응대하세요.
품격은 거리감에서 비롯됩니다.”

테이블 주위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단순한 규율이 아니라,
필로소피가 필로소피일 수 있는 ‘철학의 중심축’이었다.

재하는 물컵을 내려놓으며 그 말을 들었다.
‘관여하지 않는다.’
그 문장이 유독 오래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쩌면 지금의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문장이기도 했다.

그날 밤,
2층 프라이빗 룸에서 사교 모임이 한창이었다.
웃음과 잔 부딪히는 소리가 잦아들 무렵,
한 여성 손님이 먼저 자리를 비웠다.

그녀는 은은한 향수를 남기며 계단 쪽으로 걸어 나왔다.
살짝 붉은 얼굴에 비해 걸음은 또렷했지만,
높은 굽의 구두 탓에 발걸음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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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예의 있는 반항〉을 연재 중인 창작 스토리 작가입니다.일상의 언어와 사람 사이의 온도를 다루며, 한 문장이 다른 문장을 깨우는 세계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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