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더, 그 길 위에서
한여름의 끝자락.
낮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오후,
시멘트 벽면에 반사된 햇빛이 눈부시게 흔들렸다.
필로소피 앞 거리에는 묘한 정적과 리듬이 동시에 깃들어 있었다.
재하는 오늘도 정시에 출근해,
1층 홀 구역의 테이블 간격을 재고,
물컵을 채워 올리며 하루를 시작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보조 스태프’가 아니었다.
한 달 남짓의 수습기를 거쳐 정식 홀스태프로 자리 잡았다.
테이블 간 거리를 눈으로 재며
손님의 시선 동선을 가늠하는 일,
라운지의 조도와 음악 볼륨을 조절하는 일,
바닥에 묻은 얼음을 닦고 잔을 정리하는 일.
그 모든 과정이 어느새 몸의 기억이 되어 있었다.
손님 앞에 음료를 놓을 때
이전보다 손이 덜 떨렸고,
미소의 각도도 자연스러워졌다.
불필요한 동작을 덜어내고,
정확한 타이밍에 한 걸음 다가가는 법을 배웠다.
그 작은 변화들이 필로소피의 공기를 한층 부드럽게 만들었다.
며칠 전부터 부모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재하야, 이번 주 쉬는 날 좀 올 수 있니? 관리비 관련해서 얘기 좀 해야겠다.”
아버지의 목소리엔 평소보다 묵직한 기운이 실려 있었다.
프랜차이즈 치킨 매장을 운영하는 부모님에게 ‘관리비 문제’는 흔한 주제는 아니었다.
예전에 잠깐 비슷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지만,
이번엔 어조가 달랐다.
재하는 근무표를 확인하고 쉬는 날을 맞췄다.
아침 햇살이 막 골목 담벼락에 닿을 무렵,
그는 가벼운 옷차림에 파우치를 어깨에 메고 집을 나섰다.
안에는 노트북과 아이패드, 그리고 작은 메모장이 있었다.
버스 창밖으로 한여름의 빛이 미끄러졌다.
뜨거운 열기가 도로 위를 흔들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가벼웠다.
오랜만에 가족을 보러 간다는 생각에, 땀에 젖은 공기마저 반가웠다.
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도시의 냄새가 뒤섞였고, 유리창에 비친 햇빛이 얼굴을 스치며 반짝였다.
뜨겁고 바쁜 하루였지만, 그 속에서도 어딘가 설레는 기운이 있었다.
매장 앞에서 재하는 한 번 숨을 고르고 문을 열었다.
“왔어?”
어머니의 얼굴에는 오랜만의 반가움이 번졌다.
“오늘 너 온다고 백숙 해놨어. 여름엔 보양해야지.”
식탁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닭백숙이 놓여 있었다.
푹 익은 고기와 인삼 향, 들깨 냄새가 섞여
오랜만에 ‘집’이라는 단어가 피부로 와닿았다.
재하가 다리 살을 발라 아버지 접시에 올리자
아버지는 국물을 떠 그의 그릇에 부어주었다.
“이게 제일 보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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