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읽는 밤
저녁 일곱 시가 훌쩍 넘은 시각, 재하는 고시원 복도를 따라 느릿하게 걸어 들어왔다.
좁은 복도에 형광등 불빛이 늘어지고, 누군가의 라면 끓는 냄새가 희미하게 흘렀다.
문을 닫자마자 방 안의 공기는 고요했다.
낮에 부모님과 마주했던 식탁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백숙의 뜨거운 국물, 아버지의 낮은 목소리,
그리고 “자료를 안 주는 건 이유가 있다는 뜻이야.”
그 말이 귓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샤워기를 틀자 차가운 물줄기가 어깨를 타고 흘렀다.
온몸의 열기와 피로가 물과 함께 씻겨 내려갔다.
타월로 몸을 닦으며 재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래, 오늘은 좀 정리해보자.”
책상 위로 노트북을 올려두고, 작은 스탠드 불빛을 켰다.
노트북 불빛이 하얀 벽에 퍼지며 좁은 방 안을 덮었다.
익숙한 손끝이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긴장감이 스쳤다.
낯선 세계의 문을 여는 기분이었다.
검색창에 ‘관리비’를 쳤다.
‘공동주택’, ‘집합건물’, ‘관리단’, ‘분담비율’…
낯선 단어들이 빼곡히 스쳐 지나갔다.
처음엔 단순히 요금 산정 방식을 알고 싶었는데,
점점 ‘법률의 언어’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아, 낮에 아버지가 말했던 게 이거였구나.”
국가법령정보센터 화면을 열자 끝없는 조항들이 펼쳐졌다.
‘제24조 관리인 선임’, ‘제26조 장부와 자료의 열람’—
낯선 문장들이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눈은 멈추지 않았다.
어려운 문장일수록 더 집중되었다.
이건 누가 가르쳐주는 공부가 아니었다.
스스로 부딪치며 길을 찾아야 하는 공부였다.
커피포트의 물이 끓자, 증기가 스탠드 불빛에 스쳤다.
커피를 따르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뭐가 이렇게 복잡한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커피 향에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시 화면을 바라봤다.
마우스 커서가 문장을 따라 움직였다.
“관리인은 공동이익을 위하여…”
“이해관계인은 장부의 열람을 청구할 수 있다…”
낯선 문장이었다. 그러나 이 문장은 단순히 글자가 아니라 세계의 구조였다.
이 사회가 움직이는 법칙.
누군가는 평생 몰라도 살지만,
누군가는 몰라서 무너지는 문장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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