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빛과 그림자
며칠이 흘렀다.
밤공기에는 여전히 여름의 잔열이 남아 있었지만, 그 열기 속엔 묘한 정적이 섞여 있었다.
재하는 퇴근 후 고시원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날 아버지와 나눈 대화가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그때, 핸드폰이 짧게 울렸다.
“재하야.”
아버지의 목소리는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단단했다.
“네가 보내준 자료 다시 봤다. 그냥 두면 안 되겠더라. 관리사무소에 내용증명 보냈다. 답 오면 그걸로 구청 민원까지 신청해야겠다.”
그 말 한마디가 방 안의 공기를 바꿔놓았다.
그건 단순히 ‘문서 한 장 보냈다’는 보고가 아니었다.
싸움이 정식 절차로 들어섰다는 선언이었다.
“네, 아버지. 잘하셨어요. 필요하시면 제가 더 정리해서 보낼게요.”
“그래, 알았다.”
뚝—. 통화가 끝났다.
휴대폰 화면이 꺼진 자리엔 아버지의 숨소리 같은 여운이 남았다.
그 숨결엔 묵직한 결심이 배어 있었다.
“이제 진짜 시작이네…”
재하는 낮게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작은 방 안에서, 현실의 톱니바퀴가 서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음날 저녁 무렵, 또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이번엔 성우였다.
“형, 오늘 같이 출근해요. 내가 고시원 앞으로 갈게요.”
“뭘 굳이 여기까지 와. 나 그냥 알아서 가면 되는데.”
“에이, 같이 가요. 오늘 좀 보여드릴 게 있어요.”
익숙한 장난조였지만, 어딘가 묘하게 거절할 수 없는 힘이 섞여 있었다.
재하는 짐을 챙기며 가볍게 웃었다.
“보여줄 게 뭔데...?”
가방에 유니폼을 접어 넣고 운동화 끈을 단단히 조여 맸다.
거울 앞에서 셔츠 깃을 고쳐 세우며 어깨를 쭉 폈다.
평소보다 작은 긴장감이 맴돌았다.
좁은 고시원 복도를 지나 골목길로 내려서자,
여름 저녁 여섯 시, 하늘은 아직 밝았지만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막 불이 들어온 가로등 아래서 흰색 차체가 은빛으로 반짝였다.
BMW 5시리즈. 새 차였다.
여름 저녁의 공기는 아직 노을의 온기를 품고 있었고, 차체의 윤광은 그 빛을 따라 부드럽게 흘렀다.
오후 여섯 시 무렵, 길어진 햇살이 천천히 물러나며 골목의 공기가 조금씩 식어갔다.
창문이 내려가자 리듬감 있는 힙합 비트가 저녁 공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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