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청환
그대 왔는가 주말이면 거르지 않고 족대를 들고 나타나던 그대 삼 형제를 기억하네 둘째 형은 족대를 잡고 셋째 형은 고기를 몰고 막내인 그대는 늘 찌그러진 누런 양은 주전자를 들고 있었지 그대들은 스스로를 어부 삼 형제라 칭하기도 했었네 터울이 큰 첫째 형은 세계가 달랐지.
그대 기억하는가 셋째 형 교과서에 실린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를 듣고는 어느 날 일부러 고깃 주전자를 빠트려 볼까 마음먹었던 앙큼했던 일곱 살을.
그대 또 기억하는가 삐라를 많이 줍는 이달의 반공 어린이가 되고 싶어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던 그때 간첩선을 신고하면 3천만 원이라는 지서 앞의 포스터를 보고는 3천만 원이 얼마나 많은 건지 가늠도 못 하면서 연못에 간첩선이 떠 있기를 기대했던 욕심 많은 여덟 살을.
자전거에 대나무 낚싯대를 싣고 와 붕어며 중터리를 낚던 키 작은 중학생을 기억하네 오토바이에 그럴듯한 낚시 가방을 싣고 또한 자주 오던 그대 학교의 국사 선생님이 어느 날 잡은 고기를 그대 망태기에 슬쩍 넣어주던 순간을 나는 보았다네.
그대도 얼굴을 알고 있는 면내의 어떤 아저씨가 노름꾼 아들과 싸우고 난 후 가장자리 갈대 사이에서 술병과 함께 떠 올랐다는 말을 들은 그대가 한동안 나를 찾지 않았을 때는 나도 마음이 아팠다네.
그대 아는가 가뭄에 못 이겨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던 어느 여름 나 또한 맨몸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는데 사람들이 잔뜩 몰려와 왁자지껄 나를 휘젓고는 망태기 가득 신나서 물고기를 담아갈 때 내 마음이 얼마나 야속했었는지.
하지만 추운 겨울 썰매 타던 그대 형제들이 보기 좋게 엉덩방아 찧을 때 내가 얼마나 유쾌했었는지도 말해 두겠네.
그대 놀랐는가 아니 실망했는가 그대에게 하나의 우주였던 내가 이렇게 작은 연못에 불과했다는 것이.
아닐세 아니야 나는 정말 거대한 우주라네 그대의 추억을 모두 품고 있는 우주가 맞다네 그대가 잃어버린 모든 것과 그대가 잃어버릴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다네.
그대 자주 오시게 그대 마음 길목에 있는 나 찻골 연못은 그대 유년의 모든 것을 품고 있으리 언제든 와서 묻어 둔 일기장 꺼내보듯 꺼내 보시게.
그대 아는가 그대 또한 나의 우주였다는 걸 우리 다시 서로에게 무한의 우주가 되기 위해 필요한 건 그대가 잃어버린 그대 뿐.
* 찻골 저수지: 충북 제천시 덕산면 성암리에 있는 저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