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세 번 외치기
SNS를 끊었다. 인스타그램의 비활성화 버튼을 누르던 날에는 속이 다 시원했다. 나도 모르는 새에 그간 거기에 매여있었던 시간을 알았기 때문이다. 누가 내 스토리를 봤는지, 다른 사람의 곧잘 사라지는 24시간은 어떤지 궁금하기 바빴다. 리스트에 기대하던 사람의 이름이 없으면 실망했다. 있으면 신경썼다. 나쁘게 보이는 부분은 없었나? 이상한 내용은 없었겠지? 너무 놀기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였나? 아니, 잠깐만. 근데 뭐, 내 공간인데. 그게 문제인가?
문제 아니었지. 아닌데도 곱씹어 보고 남는 시간을 탈탈 털어 바치길래 그만뒀다. 무엇보다 그걸 하는 동안은 내가 내 시간을 못 썼다. 내가 '나'로 살아가는 시간이 줄어들었단 얘기였다. 그렇게 사는 게 다른 사람의 하이라이트씬과 내 비하인드씬을 비교하는 짓이라는 말을 들어서 알았으면서도 그랬다. 내 하이라이트씬과 다른 사람의 하이라이트씬을 맞대놓고 누가 더 빛나는지 맞붙어야 속이 풀렸다. 스스로 생각해도 유치했다. 제일 비참했던 순간은 좋아하는 이들의 성공에 100%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네지 못했을 때였다.
누군가는 대기업 인턴 사원증을 올리고, 누군가는 대외활동에서 수상한 공모전 상장을 올렸다. 누구는 어제 갓 품에 들어온 따끈따끈한 명품 선물을 올렸고, 누구는 한끼에 17만원을 호가하는 파인다이닝을 전시했다. 모두 스물셋, 넷, 다섯, 혹은 그 이전과 이후의 내가 목표했지만 도달하지 못한 것들의 범주에 있다. 갖고 싶었으나 갖지 못한 것이었다. 가보고 싶었으나 가지 못한 곳이었고. (갖고 싶었으나 갖지 못한 곳과 것이었다.)
비교하기 시작하면 초조해진다. 건강한 방향으로의 자극의 범위를 넘어서면 곧 목을 죄는 압박이 된다. 나는 고작 이만큼인데, 저쪽은 벌써 저만큼이라 속이 탄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알지만 잘 안됐다. 괜히 대외활동 모집페이지를 들락거리고, 학교 창업지원사이트를 들어가본다. 정체된다는 기분은 생각보다 더 별로였다.
문제는, 멈춰있지 않는데도 더 빨리 달려야한다고 스스로 등을 떠밀고 있다는 것이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인데.
끊기 시작하면 편해진다. 계획이 재정비된다. 주변 소리들을 잠깐 OFF하니까 이것도 해야되고 저것도 해야되고 하던 머릿속도 손쉽게 OFF된다. 스스로를 믿게 된다. 내가 진짜 하려던 것, 하고 싶던 것, 해야 할 것들만 골라 ON모드에 놓는다. 나름대로의 플랜을 따라 걷던 발걸음에 확신이 더해진다. 아예 관심을 끊으니까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이래서 속세와 단절된 곳에서 진정한 평화는 길을 찾는다 했던가. 그렇다면 제 번뇌는 인스타그램이요 해결책은 비활성화였으니.
비교를 안 하게 된다. 하지 않으니까 보여주기 위해 사던 물건 대신에 정말 좋아하는 것들을 샀다. 자랑하지 않아도 포장지를 뜯는 순간 행복이 몰려 오는 그런 것들을. 예쁜 카페나 식당을 가도 어떻게 이 시간을 전시할까 고민하던 시간 대신에 온전히 그 '맘에 듦'을 만끽했다. 그렇게 재충전을 했다. 남들의 성취와 자랑을 기꺼이 축하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때까지. 좋은 방향으로 자극받고 스스로를 더 발전시켜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나아갈 수 있을때까지. 나를 가장 나답게 하는 시간을 충전기삼아 가만히 꼽혀있었다.
오늘은 보려고 아껴뒀던 영화 <Money Ball>을 뜯었다. 스포츠영화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내게 인생철학까지 녹여낸 이 영화는 엔딩까지 완벽했다. 트라우마가 있어서 단장임에도 경기를 직접 보지는 못하는 주인공. 홈런을 쳤지만 평소 1루까지도 뛰는 게 두려워 홈런을 치고도 모르고 1루에 넘어져 웃음을 샀던 타자. 인생은 미로, 사랑은 수수께끼. 그 안에 갇힌 우리.* 그러나 나답게 살지 못할 때 가장 힘들지 않겠냐는 엔딩씬의 개사.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세 번 외치고 힘차게 뛸 준비. 온 힘 끌어모은 풀스윙이 홈런인지도 모르고 넘어지면 너무 속상하니까. 시원하게 홈플레이트 밟아준다. 각오는 힘차게 마음은 즐겁게. 쇼는 이제 시작이니까.*
*영화에 등장하는 Lenka-The Show의 노래 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