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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랑 Nov 01. 2020

우울의 물리학

 사랑의 물리학이 있다면 우울의 물리학도 있지 않을까.


침대밖으로 한발짝도 떼기 힘든 날이면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조그만 힘이 마음이 감정이 끌어당기는 힘에 저항 한 번 못하고 그대로 끌려가버리듯이, 불가항력에 가까운 이 힘의 정체를 설명할 무언가가 있어야했다. 침대 밖, 샤워실, 산책, 가벼운 대화, 세상이라는 공간. 그로부터 나를 사정없이 끌어당겨 마음 가장 깊은 곳으로 나를 굴러떨어지게만드는 힘.


내가 나를 너무 많이 물어서 때론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반문에는 이유가 없었다. 점점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 뿐이었다. 이유를 찾아야했다. 이름을 붙여야했다. 


이 조그만 힘은 자기 몇 배의 인간을 세차게 흔들었다.


물리적으로  우울의 물리학을 풀어낼 수 있을까. 나를 그만 놔달라고, 침대에 누워서 수식을 쓰곤 했다.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말에 몸을 일으켜 화장실을 갔다. 씻어내니 확실히 나았다. 그러나 그러다가도 곧잘 다시 고꾸라졌다. 사정없이 굴러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수식을 다시 써본다. 거부할 수 없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사랑과도 닮아있는지도 몰랐다. 이 감정을 사랑하는 일은 가능할까. 파괴당하지 않고 검게 물들지 않고 상호 공존하는 것이.


실패한 수학자로 남고 싶지는 않았다. 그날은 아주 오랜만에 근사한 아침을 차렸다. 나를 위해서. 샤워를 했다. 나를 위해서. 좋아하는 향을 담아서.


개념서를 썼으니 문제도 풀 수 있지 않을까. 이 우울의 물리학이라는 학문에도 구하면 풀리는 답이 있지 않을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매일 샤워하기

-밥은 제때 챙겨먹기

-햇볕 쬐면서 산책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일주일에 2-3번 통화하기

-건강한 취미 만들기

-침실에 스마트폰 들고 들어가지 말기


바른 생활 어린이 같은 계획을 2030이 다 되어서야 써내려갔다. 치약을 짜며 생각했다. 2080까지 지킬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더라도 오늘의 나를 쏟아지는 우울의 물리 아래 가둬놓지는 말자고.


날이 너무 좋았다. 하늘이 너무 푸르렀다. 해답을 찾기 딱 좋은 날, 입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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