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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잉오렌지 Mar 30. 2024

처음으로 알아낸 잿빛의 해답

해답이란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다

수능. 여태껏 학교에서 공부한 것을 단 하루만에 모든 걸 쏟아부어서 평가받는 공포스러운 날.


수능 공부. 듣기만 해도 하기 싫다. 긴장된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공부해봤자 수능 날에 배가 아파서 시험을 망치면 끝 아닌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내 10년을 하루만에 내다버리는 꼴이니까.



실제로 난 첫 수능을 볼 때 굉장히도 배가 아팠다. 낯선 환경에서 혼자서 시험을 본다. 긴장된다. 주변엔 모르는 사람뿐이다. 망치면 어떡하지? 주변 사람이 혹시라도 날 방해하면 어떡하지? 여기가 내가 시험을 보는 교실은 맞나? 미친듯이 아팠다.


나는 평소에도,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가 뜬금없는 타이밍에 배가 아팠는데, 화장실에 가겠다고 말을 하지 못하겠어서 그냥 내리 수업이 끝날 때까지 40분동안 끙끙 고개를 숙이고 앓곤 했다. 그래서 선생님이 수업하다가도 내 노랗게 질린 얼굴을 보면서 보건실에 가보라고 걱정하셨던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보건실에 가지 않았다. 내 복통은 '아무 이유 없이' 찾아오는 복통이었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아픈 것도 아니다. 물론 아프긴 하지만, 당장 못 버텨서 쓰러질 정도까지 아픈 건 아니다. 그리고 버티고 버티다 쉬는 시간이 되면 거짓말처럼 복통은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난 그래서 얕고 긴 복통을 참는 것엔 익숙하다. 시외버스를 타고 배가 아파서 2시간 넘게 참아본 적도 있다. 내리자마자 거짓말처럼 복통이 사라질 거란 걸 알고 있었으니까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한 10년 정도 알 수 없는 복통을 앓다보면, 내가 왜 아픈지는 몰라도 아파올 타이밍 정도는 조금씩 예상할 수 있다. 배가 아프기 전의 전조증상의 존재도 깨닫게 된다. 다만 이는 예방이 아니라 '곧 배가 아플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해두어라'라는 예기불안의 수준밖에는 되지 않았지만.



아, 그렇지만 두 번째 수능을 볼 땐 난 전혀 아프지 않았다. 심지어 같은 학교 친구도 없이 혼자서 낯선 학교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점심에도 혼자서 맛있는 닭갈비 도시락을 먹고 더 먹고 싶다고 속으로 느긋하게 그런 생각을 했으며, 시험을 볼 때도 적당하게 집중될 정도의 기분 좋은 긴장만 하고 딱 5분씩 남기고 아주 컨디션 좋게 시험을 마쳤다.



왤까?




나는 그 해답을 이제는 찾아냈다.





심리학과에 붙었다.



붙고 나서 정시로 합격한 나 같은 친구들에게 물어봐서 알게 된 사실인데,


약 마흔 남짓한 정원 중 정시로 합격한 사람은 고작 대여섯 명.


그중 현역 고3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전부 재수생이었다.



내 의지로 선택한 두 번째 도전이자 변화는 성공했다. 기적 같이도 성공했다. 믿기지 않았다. 나도 재수생이긴 했지만, 대학에 다니다가 뜬금없이 계열을 완전히 바꿔 새로운 수능을 접하는 것이 일반적인 재수생의 케이스는 아니지 않는가? 나는 이제 온전히 나의 실력으로, 나의 의지로 내 수치심으로 얼룩진 과거를 기분 좋게 떨쳐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심리학과에 들어와서, 완벽하게 '재치 있는 아이'로 살았다. 그 어떤 불행도 변수도 없었다. 나는 틀림없이 행복한 순간순간을 보냈다. 행복하다고 직관적으로 깨닫지는 못했지만, 내 행동을 객관적으로 관찰해보면 알 수 있었다.


평소에 하지 않았던 일을 괜히 해보고, 수업 하나하나 전부 눈을 빛내며 들었고, 원래는 역겹기만 했던 학교 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예전엔, 가장 친한 친구와 단둘이 하교를 할 때에도 무슨 얘기를 꺼내야 하지, 내가 얘한테 어떤 말투를 썼더라, 내가 이상하게 대답하진 않았을까하며 계속해서 불안에 시달리던 내가.. 이렇게까지 변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신기했다. 그리고 즐거웠다. '네 곁에는 사람이 저절로 몰려든다'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 알 수 없는 모순적인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수업을 들으면서 하나 느꼈던 것도 있었다. 다르게 말하면, 수업을 듣고 나서야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를 깨달았다. 소위 말하는 '이상한 사람'을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거란 그런 기대감.

 

즉 나 자신에 대해서, 내 잿빛에 대해 알아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




그 기대는 결코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지독히도 오랜 시간 우울증과 사회불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각하지 않은, 그래서 알아낼 수도 없었던 아주 얕고 긴 잿빛의 마음.


그 잿빛은 어느새 내 몸 전체에 물들어 나는 이를 빼놓고는 설명하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잿빛은 어떤 빛으로도 변해갈 수 있다.


하얀색, 검은색, 주황색, 푸른색. 원한다면 그 어떤 색과도 가까워질 수 있다. 아마 붉은색과 초록색의 조합으로도 나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완전히 변할 수는 없다.


나는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잿빛을 가졌지만 완벽하게 검지는 않았다. 나는 잿빛을 주황색과 푸른색으로 나눈 후 푸른색을 가려서 주황색 인간이 되었지만, 푸른색은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남아있다. 나는 결국 잿빛이지만, 잿빛을 부분부분 나누거나 조합해서 다른 색으로 보이게끔 연기할 수는 있었다. 그리고, 나 자신의 색깔에 원한다면 몰입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결국에 합쳐보면 잿빛인데 뭐가 달라진 거냐고?



뭐 어때.


그 잿빛은 결코 고통스럽지 않은 걸.


결코 행복하지도 않지만.






잿빛은 평온하며, 무감각하다.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의미는, 모든 것을 사랑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자기 자신을 자유자재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은, 기존의 자기 자신에 애착이 없다는 뜻이다.


나의 감정을 내가 원하는대로 조절한다는 것은, 애초에 감정선이 그렇게 크지 않은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발상이다. 나는 그것을 깨달아버렸고,



내 의지로 평온한 삶을 택하기로 했다.



나는 원하는 과에 붙어 그 순간만큼은 틀림없이 기뻤지만, 기쁨이 그렇게 오래 가지는 않았다. 나는 순식간에 나의 원래 일상으로 돌아갔다. 나는 내가 이뤄내지 못할 거라고 거의 확신을 내렸던 도전에서 기적 같이 성공이라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아.. 합격했으니까 동기들한테 말해야 하나. 나 자퇴했다고.'

'재수한다는 말도 안 꺼냈는데. 일년 동안 연락도 안했고.'

'알아서 잊어버리겠지 뭐.'



나는 어느새 기쁨도 절망도 크게 느끼지 못하는 정서적으로 무감각한 사람이 되어있었고, 그것에서 절망이 아닌 성취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남들이 보면, 이상하다고 생각할 만한 그런 성취감을.


나는 어느새 감정을 느끼는 것을 죄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언제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자는 그런 묘한 생각을 가슴속에 품게 되었다.


피는 어디 가지 않는다. 나는 도전하는 아버지의 피와 냉소적인 어머니의 피를 동시에 물려받았고, 그 결과 도전하지만 냉소적인 모순적인 사람이 되었다. 둘 중 한 명만 닮았다면 차라리 나 자신에 대한 의구심과 혐오 없이 편했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나는 내 물려받은 '자산'을 어떻게든 잘 조율해서 써먹기로 했다.



그 누구보다 어중간하다는 나만의 빛,


얕고 긴 잿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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