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큰 딸에 이어 연년생으로 태어난 둘째 딸은 내게 아픈 손가락, 그 비슷한 아이다. 큰 아이 출산 후 채 3개월이 안 지난 상태였기 때문에 또 임신했을 거란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둘째를 가졌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내가 딱 새끼 낳는 짐승 같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교 4학년 여름 방학 중에 둘째 딸은 태어났다. 당시 나는 약사고시를 앞두고 있었고, 시험에 대한 압박감과 첫째 아이의 힘겨운 육아에 짓눌리고 있었던 터라, 태어난 것이 그 아이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둘째가 미웠다.
표 나게 미워한 건 아니지만, 큰 딸과 둘째 딸에 대한 내 마음의 온도가 달랐음을 고백한다. 둘째가 서너 살 될 때까지 나의 못난 마음은 이어졌는데, 어느 날 밤 몽유병 환자처럼 자다 말고 일어나 중얼거리는 둘째를 보고 나서야 큰 뉘우침을 갖고 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까다롭고 예민한 큰 딸에 비해 둘째는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고, 나의 세심한 손길 없이도 잘 큰다고 생각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둘째에게 보내는 관심이 큰 아이에 비해 적었었다. 돌도 안 지나 동생을 본 큰 딸에게는 미안함을 갖는 반면, 막 태어나 잠만 자는 신생아 둘째에게는 아직 인지력이 충분하지 않으니 모를 거라는 생각으로 얼굴을 돌리곤 했다.
무심코 들춰본 가족앨범에서 내 마음이 쿵! 떨어지는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서울랜드에서 돌고래쇼를 보고 있는 사진이다. 아마 큰 딸이 5살, 둘째가 4살이었던 것 같다. 큰 딸을 무릎에 안고 웃으면서 함께 돌고래쇼를 보고 있는 내 옆에, 저 혼자 앉아서 아무런 웃음기 없이 텅 빈 눈망울로 쇼를 관람하고 있는 둘째의 외로운 얼굴이 보였다. 한없이 가여운, 너무나 슬픈 사진이었다. 내가 내 자식에게 무슨 짓을 한 건가! 둘째에게 한없이 미안했다.
그래서였나 보다.
둘째는 크면서 좀처럼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며 성장해 왔는지 나는 잘 모른다. 어쩌면, 오빠와 언니와 남동생 사이에 끼여서 존재감 없이 외롭게 자라온 내 모습을 닮은 듯했다.
대학생이 된 후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부터 둘째는 마음을 조금씩 열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출산하고, 그러면서 조금씩 더 마음을 열고 있는 둘째에게 나는 어미로서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이제부터라도 잘해주고 싶다.
큰 손자를 8개월 동안 돌봐준 것도 미안함 때문이었다. 둘째 손자의 육아를 도와달라는 딸의 부탁을 받아들인 것은 옛날 나의 어리석음을 용서받기 위함이다. 부끄럽지만, 늦게나마 엄마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또 다른 마음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
20여 년 만에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 60세가 넘은 나이에 취직을 했다. 텃세를 견디며 이제는 적응을 마치고 잘 살고 있는데, 현재의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캐나다로 돌아간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혹시라도 어떤 마찰이 생겨 육아도우미를 그만두고 다시 한국에 나와야 된다면, 그땐 나도 더 나이를 먹었을 테니 취직은 더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항상 자유와 독립을 추구하는 내가, 자유와 독립이 없는 육아도우미를 할 생각을 하면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손주들은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그와는 별개다.
돌이켜보면, 나도 내 아이들 키울 때 친정엄마의 도움이 필요했고, 당시 엄마는 육아의 많은 부분을 도와주셨다. 이제는 내가 그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니 그때 엄마에게 받은 은혜를 지금 딸에게 갚는 것이라고 생각을 바꿔본다.
엄마도 자유로운 삶을 원했을 텐데 오로지 나를 위해서 수년간 손주를 돌봐주셨던 우리 엄마. 엄마에게도 나에 대한 미안함과 사랑이 있었던 것임을 이제야 안다. 엄마가 항상 내게 하셨던 말이 떠오른다.
'시집보낼 때까지 너한테 해준 게 아무것도 없어서 미안하다.'
어려서 마땅히 받아야 할 엄마의 사랑을 온전히 받지 못한 둘째에게 엄마가 저를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엄마로서 부족했던 나의 미안함을 고백하며, 딸을 위하고, 내 손주들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지금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내 자유와 독립은 그 언저리 어디쯤에서 즐기는 것으로 살짝 밀어 놓고 캐나다를 향해 출발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