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슬픔의 교차점인 나는 우울이다.
출근하는 길이었다.
나아지지 않는 경제사정으로 국내여행조차 남의 이야기였던 시절, 그나마 매일을 여행 온 것처럼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탄 커피를 텀블러에 옮겨서 들고나가는 것도 관뒀다. 별로 아껴지는 것 같지도 않고, 남이 타주는 커피 한 잔의 즐거움 정도는 내 것으로 하고 싶었다. 스타벅스에 들러 드립커피 하나 사들고 직장으로 가는 길, 그러니까 기분이 괜찮은 날이었는데 뜬금없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마 엄마와 아버지가 싸우는 장면이었던 것 같다. 엄마의 작은 체구가 마루에서 마당으로 내동댕이 쳐졌고, 나는 그것을 보고 있었다.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오빠와 언니와 동생은, 다들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 모습이나 행색조차도 기억에 없고 다만 그것을 보고 있는 제삼자적 나의 눈만 의식이 된다. 그 후 엄마가 어떻게 했는지,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는 모른다.
그리고 또 다른 기억이 이어졌다. 역시 엄마와 아버지가 싸우는 장면이다. 엄마는 방바닥에 주저앉은 자세였고, 서있던 아버지는 엄마를 때린다며 바지 혁대를 풀어내고 있었다. 겁에 질린 나와 형제들은 울며 아버지를 말렸다. 아버지는 혁대를 손에 돌돌 말아 감아쥐고는 기어코 엄마를 때렸다. 그렇게 하면서 가장으로서의 지배욕을 만끽했을까! 병신. 어린 내가 보기에 엄마가 맞을 만한 짓을 하진 않았다.
운전을 하면서, 나는 점점 우울 속으로 들어갔다. 그쯤에서 나왔어야 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였는지, 어느 기억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또 다른 장면이 떠올랐다. 집을 나갔던 엄마가 기적처럼 돌아왔다. 매일 학교가 끝나면 우리 4남매는 엄마가 잘 다니던 영남시장을 뒤지고 시장 아줌마에게 물어보며 엄마를 애타게 찾아다녔다. 엄마가 정말 우리를 떠났나 보다 생각하고 있을 때였고, 슬퍼질 참이었다. 돌아온 엄마의 얼굴은 더 슬퍼 보였다. 아버지가 돌아온 엄마를 어떻게 대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회사에 도착했기 때문에 이제 그만 차에서 내려야 하는데, 나의 우울은 너무 깊이 내려간 상태라 쉽게 건져 올릴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은 생각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아버지를 떠올리지 말았어야 했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내게 아버지는 고통이고 엄마는 슬픔이다. 고통과 슬픔의 교차점인 나는, 우울이다.
그날 근무시간 내내 나는 말없이 우울했다. 깊숙이 묻어두었던 우울한 기억이 갑자기 물 위로 부유한 날이었다. 무엇이 트리거였을까? 가라앉아있던 흙탕물이 휘저어지면서 말갛던 윗 물마저 모두 흙먼지와 섞여버렸다. 엄마를 보호할 수 없었던 연약한 어린 나와, 엄마를 보호할 수 있으면서 외면하고 있는 성장한 어른의 내가 충돌하고 있었다.
그토록 가여운 내 엄마가 돌아가셨다. 성장한 어른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의미 없는 아버지와의 인연줄을 슬그머니 놓는 것이었다. 비록 일방적이긴 하지만 그렇게 내 우울의 근원 중 하나인 고통과 이별했다. 깊게 가라앉은 우울로부터 올라오려면 좀 가벼워져야 했다. 적어도 앞으로는 깊고 컴컴한 우울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