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하는 개복치
피부질환을 얻게 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곧 괜찮아질 거라는 말?
아니? ‘하지 말라는 말‘이다.
처음 한방병원을 찾았을 때 한의사 선생님은 운동도 하지 말라고 했다. 상태가 너무 안 좋았어서 몸에 열이 오르고 땀이 나면 안 되니 그냥 걷기 정도만 하라고 하셨다. 당시 나는 발레에 꽂혀 발레학원을 찾아보고 있었는데 찾아간 병원에서 땀 흘리는 운동을 하지 말라고 하여 잠시 등록을 미뤘다.
다른 병원에 갔을 때는 단 간식을 먹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다음 병원에서는 밀가루..
그다음에는 저녁 8시 이후에는 금식 등
이렇게 하면 안 되고 먹으면 안 되는 행동의 제약들이 일상을 억압하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말을 잘 들었다. 운동을 하지 말라고 해서 발레 등록을 미뤘고 간식을 먹지 말라고 해서 모든 간식류를 끊었고 정말 먹고 싶을 때는 평소에 먹던 간식 대신 감자와 고구마 같은 구약작물이 간식의 자리를 차지했다. 밀가루를 먹지 말라고 해서 식탁에서 파스타, 면, 빵 등이 쫓겨나고 오로지 밥과 쌀만을 섭취했다. 그런 것들을 빼고 나니 정말 먹을 것이 없었다.
상태가 너무 안 좋았고 진심으로 빨리 나았으면 하는 바람에 철저하게 지켰다. 그러나 나의 이런 바람과는 다르게 시간이 흐르며 증상이 나아지지는 않았고 스트레스만 쌓여갔다. 단기에서 장기 싸움으로 넘어가면서 점점 인내심에 한계를 느꼈다. '평생 이러고 살아야 하는 건가?'라는 답답함이 엄습했다. 그래서 염증이 조금 사그라들었을 무렵 일단 발레를 시작했다.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초등학교 때 워낙 뻣뻣한 몸으로 포기했는데 커서 갑자기 하고 싶어졌다. bar하나만 의지한 채 스스로 나의 몸을 컨트롤하며 주어지는 자유가 재미있었고 조금씩 붇는 세세한 근육들이 성취감을 느끼게 해 줬다. 적어도 발레를 하는 동안에는 피부와의 싸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가끔은 염증이 심하거나 증상이 심할 때는 잠시 쉬기도 했지만 최대한 계속 다니려고 노력했다.
문득 이렇게 하나씩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리면 '언젠가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이 싸움의 시간들로 채워지지 않도록 내가 집중할 수 있는 것들, 좋아하는 것들 그리고 소중한 것들로 채워나가다 보면 스스로 그 싸움의 전장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여전히 상황은 안 좋고 앞으도로 나아지리라는 희망의 불씨도 이전과 다르게 점점 꺼져간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주어진 시간을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온전히 원하는 시간으로 채울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 말라는 것도 많고 해서는 안 되는 일도 많지만 그 금제가 나의 삶의 전부가 되지는 않도록, 나의 싸움이 내 시간의 전부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당신의 약한 부분이 당신의 노력과 시간에 전부가 되지 않도록 바라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