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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파란 Jul 15. 2023

당신의 담도는 네 개입니다

담도가 뭔데요? 네 개는 또 무슨 소리죠?


간 기증 가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는 무척 복잡하다. 하긴 멀쩡한 장기를 떼서 그걸 다른 사람에게 심는다는 게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여전히 실감은 안 난다.


1차 검사는 기본적인 혈액과 소변 검사를 비롯해 심전도, 엑스레이, 복부 CT 등을 찍었다. 첫 번째 검사로 일단 간 크기는 합격했다. 사실 여성이 남성에게 장기 제공 시 크기가 작은 경우 기증이 불가하다고 한다. 다행히 내 간은 크기가 작은 편이 아니라 1차 심사는 무사히 통과한 셈이다.


2차 검사는 1차보다 종류가 많다. 그래서 입원까지 하고 2박 3일에 걸쳐 진행됐다. 병원에서는 비싼 건강검진을 받는다고 생각하라 했지만 검사가 거듭될수록 중압감은 더해갔다. 간 MRI, 위, 대장내시경, 정밀 혈액검사, 유전자 검사, 교차반응검사에 부인과 검사 등 한마디로 내가 남에게 장기를 줘도 될 만큼 온몸 구석구석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검사 결과가 확인되면 간이식팀에서 적합성을 평가하여 최종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 그 결과는 기증자 본인에게 직접 알리는 것이 원칙이라는 데서 뭔가 뭉클했다. 보호받고 있는 기분이었다.


복잡하고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최종 이식 가능여부를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 피가 말랐다. 돼도 걱정, 안 되면 더 걱정인 상황. 마침내 최종 이식 가능이라는 통보를 받는 순간, 안도했지만 떨림도 더해갔다.




수술은 아이들 겨울 방학에 하기로 했다. 지난번 색전술 때 손도 못 댈 정도로 작았던 암세포는 그새 2센티미터로 자랐다. 한시가 급한 이식 수술이었지만 아이들을 내팽개칠 수는 없었다. 고작 여섯 살과 아홉 살, 반짝이는 숱한 날만이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이다. 털끝만큼의 티끌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엄마 아빠가 장기간 집을 비워야 하고 수술이 끝나고서도 한동안 제대로 된 생활이 어려울 거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학교 생활까지 챙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 아이들 겨울 방학에 맞춰서 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그날을 기다리던 와중 뜻밖의 연락이 왔다. 장기이식센터였다.


“좋지 않은 소식이 하나 있어요”

“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 아닌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복강경 수술로 하기로 하셨잖아요. 그런데 개복수술로 변경이 됐어요”

“네? 왜요?”

“간절제를 하고 담도를 혈관에 연결하게 되는데요. 보통 담도가 두 개인데, 공여자 님은 담도가 네 개예요”



하. 이제 하다 하다 담도가 네 개라니. 나에게 쉬운 길은 없구나. 뭔가 너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이 불안했었는데 결국 이렇게 됐다. 누구보다 담대한 모습을 지켜내고 싶었는데 그런 날 무너뜨리려 작정한 듯 복병이 튀어나왔다.




간기증자의 수술은 배를 크게 여는 개복과 일부만 절개 후 배 속으로 공기를 넣어 부풀린 뒤 수술을 하는 복강경 두 가지로 나뉜다. 아무래도 개복수술은 통증은 물론 수술 자국이 크다. 수혜자의 경우에는 개복이 불가피하지만 공여자의 경우는 절개 부위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능한 복강경을 많이 한다. 복강경 수술의 절개 부위가 제왕절개 부위와 비슷해 같은 곳을 다시 절개하는 것으로 얘기가 됐었고 그나마 다행이라 여겼다. 물론 절개 부위 외에 가슴 아래 두 군데와 배 부분, 총 세 군데 구멍을 뚫고 공기를 넣어 배를 터질 듯 부풀리는 수술 설명을 찾아보고 살짝 겁을 먹긴 했지만 개복보다는 후유증도 적고 여러모로 부담이 적은 건 사실이니 마취 중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외면하기로 마음먹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또다시 예상 밖의 일이 벌어진 거다. 아무래도 나의 드라마에는 반전이 너무 많다.


그런데, 또 담도 네 개는 무슨 말이냐. 검색 칸에 ‘간기증수술 담도’를 써넣고 엔터를 눌렀다. 간기증자는 간우엽, 그러니까 간의 오른쪽 부분을 절개하는데 그 간 오른쪽 아랫부분에 있는 담낭,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쓸개를 먼저 제거한다. 그리고 간 절제 후 담낭과 연결되어 있던 담도를 남은 간의 혈관과 다시 연결하게 되는데 담도가 워낙 얇아서 혈관에 이어 붙이는 일은 고난도의 과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와중에 난 망할 놈의 담도가 두 개가 아닌 세 개도 아닌 네 개나 되고 정밀한 수술을 복강경으로 하기에는 위험부담이 있어 개복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었다.


죽기 전까지 아니 내가 우주의 먼지가 될 때까지 알 필요도 없을 만한 내 신체의 신비로운 정보를 이 기회를 빌어 알게 됐다.


가만히 배를 만졌다. 나에게도 남편과 같은 커다란 수술 자국이 새겨지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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