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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R Sep 25. 2024

'고전이 답했다'처럼 쓰기

읽기에 쉬운 글쓰기

억지로 산 책에서 배운 것


고명환이라는 사람이 있다. 개그맨이었고 고통사고로 사흘 후면 죽는다는 선고를 받았다. 죽지 않고 살아난 후 책을 읽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강연자, 국숫집 사장이 되었다. 여기저기서 그의 책을 칭찬하는 글을 봤다. 하지만 나는 읽지 않았다. 비슷한 류의 자기 계발서에 질려가고 있었던 까닭이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필사모임에서는 독서 모임도 운영한다. 9월 독서모임에 부아C님이 참여해 <마흔, 이제는 글을 쓸 시간>에 대해 얘기한단다. 이 모임에 참여하려면 고명환의 새 책 <고전이 답했다 -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도 읽어야 한다. 부아 C님을 만날 욕심으로 일단 신청하고 봤다. 정작 부아 C님과 온라인 북토크를 하는 당일 아침에는 몸이 좋지 않아 일어나지도 못했다.

이제 <고전이 답했다>를 읽어야 할 때가 왔다. 새책이라 도서관에도 없을 테니, 사야 한다. 살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고 있는데, 독서모임 단톡방에 후기들이 올라온다. 밑줄 그을 곳이 너무 많단다. 그래? 사봐?

책이 도착하고 이틀 만에 다 읽었다.


읽고 난 소감은 딱 2줄이다.  

1.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 반드시! 고전을 읽어야겠다!

2.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 이 책처럼 쉽게 써야 하는 거구나....  


@블루문R



글은 '작품'인가 '상품'인가.


<기자의 글쓰기>에서 박종인은 '글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에서 쉬움, 짧음, 팩트에 대해 썼다. 첫번째가 '쉬움'이다. 쉬움을 첫 번째로 둔 이유는 글은 독자를 위한 상품이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글은 문학작품 아닌가.

'노인과 바다'와 '제인 에어', '죄와 벌'이 작품이 아니라 상품이란 말인가.

박종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몇 가지 예를 보자.

 

명확하게 쓰면 독자가 모인다. 모호하게 쓰면 비평가들이 달라붙는다(Ceux qui écrivent obscurément ont bien de la chance : ils auront des commentateurs. Les autres n'auront que des lecteurs).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가 한 말이다. 카뮈는 20세기 사람이다. 독자는 쉬운 글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쉬운 글 쓰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18세기 영국 시인 알렉산더 포프는 이렇게 말했다.

  글쓰기에 있어 진정한 쉬움은 우연이 아니라 기술에서 비롯한다. 춤을 배운 이들이 가장 쉽게 움직이듯이(True ease in writing comes from art, not chance. As those move easiest who have learned to dance).

  《큰바위 얼굴》을 쓴 너새니얼 호손은 대놓고 “쉽게 읽히는 책은 몹시 쓰기 어렵다”고 자백한다. 상업적으로 글쓰기를 해온 이들 작가들은 ‘쉬운 글’을 쓰는 데 집착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그래야 독자들이 읽으니까.

- <기자의 글쓰기>, 박종인


작가 입네 하면서 고상을 떨어도 독자가 읽는 글을 쓴다면, 나의 글은 독자를 위한 상품이라는 것이다. 기자인 박종인의 실날하며 정확한 이야기다.


작가는 생산자이며 1인 공장이라는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  

간혹 어려워서 읽다가 포기하게 되는 책이 있다. 연구논문으로 가득 찬 책들, 복잡하고 난해한 단어로 가득한 책들. 미처 다 읽지 못하고 나의 독해능력을 탓하게 만드는 책들.

하지만 최재천 교수님이나 정재승 교수님처럼 일반인들도 술술 읽게 만들고, 그 분야에 관심이 생기게 만드는 학자들의 책도 있다. 박종인 기자에 따르면 이 교수들은 일반인들이 읽을 상품으로써의 책의 가치를 이해하고 글을 쓴 샘이다.  

박종인은 말한다. ‘쓰기 쉬운 게 아니라 읽기에 쉬워야 한다. 쉬워야 독자가 찾아서 읽는다.'  


고명환의 <고전이 답했다>는 고전에 대한 책이다. 듣기만 해도 고리타분한 고전.

신기하게도 이 고전은 어렵지 않다. 작가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섞어 썼기 때문이며, 고전 속 문장을 가지고 사유하는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대장부는 중후함에 처하지 얄팍한 곳에 거하지 않는다. 그 참된 모습에 처하지 그 꾸며진 곳에 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305쪽

최진석 교수의 책을 읽다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는 구절에서 멈췄다. 저것은 무엇이고, 이것은 무엇인가.
아침에 알람을 끄고 더 자는 것이 저것이고, 바로 벌떡 일어나는 것이 이것이다. 일어나자마다 핸드폰을 드는 것이 저것이고, 책을 펼쳐 드는 것이 이것이다. 샤워기의 뜨거운 물 아래서 물을 하염없이 지지고 서 있는 것이 저것이고, 마지막에 30초라도 찬물 샤워를 하는 것이 이것이다. 늦잠 자느라 아침 식사를 거르는 것이 저것이고, 귀찮아도 정성스럽게 밥을 지어 아침을 먹는 게 이것이다.
(중략)
굳이 다 알고 있는 얘기를 왜 계속 쓰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게 저것이고, 그래 나도 다 아는 말인데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했구나라고 깨닫는 것이 이것이다.

- <고전이 답했다>, 고명환, p128~131

  

제목부터 고리타분한 '노자'와 '도덕경'이 들어간 책의 한 구절을 이렇게 실생활과 연결시켜 풀어놓았다. 2페이지에 걸쳐 담겨 있는 버려야 할 것과 취해야 할 것의 리스트들을 보면서 저절로 끄덕끄덕 하게 된다.

이 글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내 안에는 항상 선과 악이, 성실함과 나태함이, 이기심과 이타심이 공존하며 싸우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런데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이유는 삶의 기준이 없어서다. (중략)
이제 삶의 기운을 세우자. 당신이 뭔가를 할 때 고통스럽지 않다면 의심하고 점검하라. 내가 하는 일이 노자가 말하는 '이것'인지, '저것'인지. '저것'이면 저쪽으로 던져버리고 '이것'이면 내 쪽으로 취하자. 일단 오늘 당장 핸드폰을 저 멀리 던져버리고 책을 가까이 취하자. 이것만 바꿔도 인생이 성공한다. 놀자를 버리고 노자를 취하라!

- <고전이 답했다>, 고명환, p131


얼마나 쉬운가. 노자와 도덕경이 핸드폰과 책으로 마무리되었다.

한 권의 책이 이렇게 고전과 삶이 연결된 쉬운 내용으로 가득 차 있으니, 내 마음속에서 고전을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꿈틀거린다. 나도 고명환의 방식으로 고전을 읽으면 되겠구나 하게 된다. 고전 속 문장 하나를 붙잡고 깊게 사유하는 방법도 알겠다.


고명환은 이 책의 '들어가며'에서 말했다. '이 책은 고전을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이라고. '이 책을 읽고 나면 고전이 너무 읽고 싶어 진다. 바로 그때. 바로 그 책을 읽으면 된다'라고. 나에게는 고명환이 이 책을 쓴 목적이 훅 들어왔다.  

이렇게 쉬우니, 독자들이 찾아 읽고 감동받고 입소문 낸다. 계속 베스트셀러인 이유다.



@블루문R


무주건 쉽게 쓰자.


글은 무조건 쉬워야 한다. 글은 필자가 주인이 아니다. 글은 독자가 주인이다. 독자는 쉬운 글을 원한다.

- <기자의 글쓰기>, 박종인

    

이쯤 쓰고, 위에 써둔 나의 글이 어렵나 확인해 봤다. 아직 잘 모르겠다. 박종인의 책 위 예문에서 알렉산더 포프도, 너새니얼 호손도 말했다. 쉬운 글을 쓰는 것은 어렵다고.

한참을 깊어진 후 자유로워지는 단계가 온다는 것은 안다. 공부도, 음악도, 야구도, 요리도, 육아도. 우리 삶의 모든 분야가 그렇다. '싱어게인', '최강야구', '흑백요리사'등을 보며 실감한다. 그러니 나는 잘 못쓰더라도 쉬운 글을 쓰면서 깊이를 채워나가야겠다. 고전과 함께.


그건 아니야. 못 써도 괜찮은 게 아니라 ‘잘 못 쓰더라도 읽기 쉬운 글을 쓰자’고 생각하면 돼.
글을 갑자기 잘 쓰기는 어렵다.
일단은 읽기 쉬운 글을 쓰려고 노력하자.

-<문장교실>, 하야미네가오루, p39


아, 빅뉴스가 있다. 내가 참여하는 독서모임에 고명환 님이 함께 하게 되었단다. 우리 독서모임에는 참석이 어렵다고 서 다른 모임을 신청해 놓았는데... 고명환 님을 2번이나 연달아 만나게 되었다. 신기하다. 나를 고전으로 이끈 고명환 님에게 커다란 감사를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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