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에 쉬운 글쓰기
명확하게 쓰면 독자가 모인다. 모호하게 쓰면 비평가들이 달라붙는다(Ceux qui écrivent obscurément ont bien de la chance : ils auront des commentateurs. Les autres n'auront que des lecteurs).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가 한 말이다. 카뮈는 20세기 사람이다. 독자는 쉬운 글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쉬운 글 쓰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18세기 영국 시인 알렉산더 포프는 이렇게 말했다.
글쓰기에 있어 진정한 쉬움은 우연이 아니라 기술에서 비롯한다. 춤을 배운 이들이 가장 쉽게 움직이듯이(True ease in writing comes from art, not chance. As those move easiest who have learned to dance).
《큰바위 얼굴》을 쓴 너새니얼 호손은 대놓고 “쉽게 읽히는 책은 몹시 쓰기 어렵다”고 자백한다. 상업적으로 글쓰기를 해온 이들 작가들은 ‘쉬운 글’을 쓰는 데 집착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그래야 독자들이 읽으니까.
- <기자의 글쓰기>, 박종인
대장부는 중후함에 처하지 얄팍한 곳에 거하지 않는다. 그 참된 모습에 처하지 그 꾸며진 곳에 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305쪽
최진석 교수의 책을 읽다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는 구절에서 멈췄다. 저것은 무엇이고, 이것은 무엇인가.
아침에 알람을 끄고 더 자는 것이 저것이고, 바로 벌떡 일어나는 것이 이것이다. 일어나자마다 핸드폰을 드는 것이 저것이고, 책을 펼쳐 드는 것이 이것이다. 샤워기의 뜨거운 물 아래서 물을 하염없이 지지고 서 있는 것이 저것이고, 마지막에 30초라도 찬물 샤워를 하는 것이 이것이다. 늦잠 자느라 아침 식사를 거르는 것이 저것이고, 귀찮아도 정성스럽게 밥을 지어 아침을 먹는 게 이것이다.
(중략)
굳이 다 알고 있는 얘기를 왜 계속 쓰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게 저것이고, 그래 나도 다 아는 말인데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했구나라고 깨닫는 것이 이것이다.
- <고전이 답했다>, 고명환, p128~131
내 안에는 항상 선과 악이, 성실함과 나태함이, 이기심과 이타심이 공존하며 싸우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런데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이유는 삶의 기준이 없어서다. (중략)
이제 삶의 기운을 세우자. 당신이 뭔가를 할 때 고통스럽지 않다면 의심하고 점검하라. 내가 하는 일이 노자가 말하는 '이것'인지, '저것'인지. '저것'이면 저쪽으로 던져버리고 '이것'이면 내 쪽으로 취하자. 일단 오늘 당장 핸드폰을 저 멀리 던져버리고 책을 가까이 취하자. 이것만 바꿔도 인생이 성공한다. 놀자를 버리고 노자를 취하라!
- <고전이 답했다>, 고명환, p131
글은 무조건 쉬워야 한다. 글은 필자가 주인이 아니다. 글은 독자가 주인이다. 독자는 쉬운 글을 원한다.
- <기자의 글쓰기>, 박종인
그건 아니야. 못 써도 괜찮은 게 아니라 ‘잘 못 쓰더라도 읽기 쉬운 글을 쓰자’고 생각하면 돼.
글을 갑자기 잘 쓰기는 어렵다.
일단은 읽기 쉬운 글을 쓰려고 노력하자.
-<문장교실>, 하야미네가오루, p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