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일기, 직접 써보니
조금 불안하기는 하지만 당분간 이 일기를 계속해야겠다. 나는 때때로 내가 이 일기에 알맞은 문체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차를 마시고 난 다음의 편안하고 밝은 시간에 알맞은 문체 말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유연성이 부족하다. 그러나 신경 쓰지 않기로 한다. 나이 먹은 버지니아가 안경을 끼고 1920년 3월 대목을 읽을 때, 틀림없이 나더러 읽기를 계속하라고 말할 것이다. 친애하는 내 망령이여, 안녕하셨습니까? 그리고 내가 50이라는 나이를 그리 많은 나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기 바란다. 그 나이에도 좋은 책을 몇 권 쓸 수 있을 것이다. 멋진 책을 위한 재료가 여기 있지 않은가.
- <울프 일기>, 버지니아 울프, p46, 1920년(38세) 3월 9일의 일기
지난 1년 동안 직업적인 글을 쓰는 일이 좀 편해진 것 같은데, 이것은 차 미시고 난 뒤에 스스럼없이 보낸 반 시간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일기라는 것이 도달할지도 모를 희미한 형태의 그림자 같은 것이 내 앞에 떠오른다. 그러다 보면 따로따로 떠다니는 인생의 부유물 같은 소재들을 가지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알게 될지 모르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처럼 이것을 의식적으로, 그리고 신중하게 소설 속에 사용하는 것 말고도 다른 용도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내 일기가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가? 짜임새는 좀 느슨하지만 지저분하지는 않고, 머릿속에 떠올라오는 어떤 장엄한 것이나, 사소한 것이나, 아름다운 것이라도 다 감쌀 만큼 탄력성이 있는 어떤 것. 고색창연한 깊숙한 책상이나 넉넉한 가방 같은 것이어서, 그 안에 허섭스레기 같은 것들을 자세히 살피지 않고도 던져 넣을 수 있는 그런 것이기를 바란다. 한두 해 지난 뒤 돌아와 보았을 때, 그 안에 들어 있던 것들이 저절로 정돈이 되고, 세련되고, 융합이 되어 주형으로 녹아 있는 것을 보고 싶다. 정말 신비스럽게도 이런 저장물들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곤 한다.
- <울프 일기>, 버지니아 울프, p30, 1919년(37세) 4월 20일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