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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R Sep 27. 2024

'울프일기'와 함께 아침일기 쓰기

아침일기, 직접 써보니

아침에 일기를 쓴다고?


자기 하루를 정리하는 기록을 해왔다. 나만의 하루 정리 노트에 하루동안  일, 있었던 일, 마음, 생각 등을 기록한다. 하루가 어땠는지 돌아본 다음 계획을 확인한 잠이 들면 개운했다.


글쓰기 수업을 듣다가 에세이가주 님으로부터 '아침일기'를 쓰면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침 일기'라고? 일기는 하루를 정리하면서 밤에 쓰는 거 아닌가? 그럼 '모닝페이퍼'와 비슷한가? 설명을 들어보니 '아침 일기'는 <아티스트 웨이>에 나오는 '모닝페이퍼'와 비슷한 듯 다르다. '모닝페이퍼'는 떠오르는 생각을 마구 쓰는 방식이라면, '아침일기'는 전날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말 그대로 '일기'를 쓰는 것이다.

나는 이미 밤에 하루 정리를 하고 있으니 아침일기까지 쓸 필요는 없겠지 하고는 미뤄 두었다.


글쓰기 수업 중 에세이가주 님이 9월부터 '아침 일기 쓰기'숙제를 내주었다. 게다가 버지니아 울프의 <울프 일기>를 읽으면서 쓰란다. 국민학교 때 이후 처음 받은 일기 쓰기 숙제다.

'올 것이 왔구나. 그래, 기왕 할 거면 제대로 해보자' 마음먹었다. 일부러 교보문고 매장을 방문해 노트를 골랐다. 눈에 들어온 것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그림이 그려진 빨간색 양장 노트. 가름끈도 빨간색이다. 종이질도 반질반질하다. 펜으로 쓰다가 손으로 문지르면 잉크가 번질 것 같다. 그래도 이런 고급스러운 종이에 써보고 싶었다.

아침 일기를 쓴 지 1달이 되어가고 있다. 직접 써보니 밤의 일기와 아침의 일기는 많이 다르다.



@블루문R



아침일기, 이렇게 써봤다.


'아침일기'는 미라클 모닝에 도전하면서 쓰는 일기는 아니다. 그냥 아침에 쓰면 된다. 경험상 가장 좋은 것은 일어나자마자 쓰기지만, 늦어도 10시 전에는 쓰는 것이 좋다. 이 순간을 놓치면 안 된다. 머리가 맑고 팽팽 돌아가기 때문이다. 무의식이 깨어있는 순간이라는 게 마구 느껴진다. 쓸 거리가 쏟아진.

'아침일기'를 쓴 지 며칠이 지나니, 아침에 눈을 슬슬 잠에서 깨면서 비몽사몽 하는 와중에 쓰고 싶은 글들이 마음에, 머리에 맴돌기 시작했다. 빨리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눈을 뜨게 되었다. 신기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곧장 일기를 쓰기보다는 <울프 일기>를 10페이지 정도 읽으면서 뜸을 들인다. 숙제에 따라 <울프 일기>를 읽으면서 아침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게 또 희한하게 좋다.


처음에는 <울프 일기>를 읽고 일기를 쓰는 게 좋을지 반대가 좋을지 몰라, 이렇게 저렇게 실험을 해봤다. 해보니 <울프 일기>를 읽고 난 후 일기를 쓰는 것이 더 좋았다.

<울프 일기>에는 울프의 글쓰기에 대한 고민, 자기 소설에 대한 세상의 평가에 대한 기분, 읽은 책에 대한 평가, 앞으로 글쓰기에 대한 계획 등이 담겨 있다. 잠에서 깨자마자 울프의 글을 조금이라도 읽고 일기를 쓰면 더 편안해지고 고요해져, 내 마음에 가닿기 좋았다. <울프 일기>를 읽으면서 아침일기를 쓰라는 선생님의 숙제는 탁월한 것이었다. 하라는 데로 잘 따라 하는 나도 칭찬해 본다. ('울프일기를 다 읽으면 다음에는 무슨 책을 읽으면서 일기를 쓰지?'라는 고민을 하기도 했었으나, 울프 일기는 600페이지가 넘으니 2~3달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울프 일기>를 읽은 후 아침일기를 쓴다. 노트 상단에 날짜와 쓰기 시작한 시간을 기록한다.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쓴다. 어떤 날은 머릿속에 오가는 생각을 쏟아내기도 한다. 짧으면 10분, 길면 20분. 시간이면 충분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필사를 했었다. 이제 루틴이 바뀌었다. <울프 일기>를 읽고, 아침일기를 쓰고, 필사를 한다.     



아침 일기, 직접 써보니 밤과는 다르다.


밤의 내 마음과 머리는 아침과 다르다. 밤의 나는 하루 중 가장 피곤하고 지쳐있는 상태다. 쉬고 싶은 시간이다. 마음속을 헤집으면 가라앉기 쉬운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니 짧게 짧게 하루를 정리하곤 했다.

생각이 너무 많아, 머릿속에 생각이 둥둥 떠다니는 상태였던 날이 있었다.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일기에조차도 쓸 수 없을 만큼 뒤죽박죽이었다. 며칠 생각을 묵혔다가 아침 일기를 쓰면서 쏟아 놓았다. 후련했다. 밤이었으면 이렇게 쏟아놓을 에너지가 없었을 것이다. '아, 대충 해놓고 자자' 했을 것이다.


아침에 일기를 쓰니, 나의 밤시간의 하루 정리는 '기록' 수준이었다는 것을 알겠다. 아침에 맑고 밝은 정신으로 전날 있었던 일들을 돌아보고, 그때의 감정, 생각들을 떠올려 글을 쓰면 한결 산뜻한 일기가 된다. 잠자는 시간 동안 전날이 소화가 되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내 마음대로 생각해 본다.   


버지니아 울프는 차를 마시고 난 뒤 반 시간 동안 일기를 썼다고 한다. 울프는 <울프 일기>에 '내가 이 일기에 알맞은 문체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차를 마시고 난 다음의 편안하고 밝은 시간에 알맞은 문체 말이다'라고 썼다.

울프처럼 차를 마시고 쓰는 것도 좋겠다. 아무튼 시간보다는 편안하고 밝은 시간에 쓰는 일기가 좋다는 것이 요즘 나의 생각이다.  


조금 불안하기는 하지만 당분간 이 일기를 계속해야겠다. 나는 때때로 내가 이 일기에 알맞은 문체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차를 마시고 난 다음의 편안하고 밝은 시간에 알맞은 문체 말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유연성이 부족하다. 그러나 신경 쓰지 않기로 한다. 나이 먹은 버지니아가 안경을 끼고 1920년 3월 대목을 읽을 때, 틀림없이 나더러 읽기를 계속하라고 말할 것이다. 친애하는 내 망령이여, 안녕하셨습니까? 그리고 내가 50이라는 나이를 그리 많은 나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기 바란다. 그 나이에도 좋은 책을 몇 권 쓸 수 있을 것이다. 멋진 책을 위한 재료가 여기 있지 않은가.
 
- <울프 일기>, 버지니아 울프, p46, 1920년(38세) 3월 9일의 일기



하얀 표지의 <울프 일기>와 빨간 표지의 <나의 아침일기 노트>를 맞이하는 아침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울프는 일기 쓰는 시간 덕분에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데 더 편해졌다'라고 썼다. 아침일기가 나의 글쓰기에 도움이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밝고 맑은 아침시간, 검열하지 않고 써 내려가는 글들이 생각을 깊게 하고, 나를 정돈하는 도움이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의 아침일기가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가? 이것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울프의 말을 빌어, '넉넉한 가방 같은 것이어서 그 안에 허섭스레기 같은 것들을 살피지 않고도 던져 넣을 수 있는 그런 것이 되길' 바라볼 뿐이다.


지난 1년 동안 직업적인 글을 쓰는 일이 좀 편해진 것 같은데, 이것은 차 미시고 난 뒤에 스스럼없이 보낸 반 시간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일기라는 것이 도달할지도 모를 희미한 형태의 그림자 같은 것이 내 앞에 떠오른다. 그러다 보면 따로따로 떠다니는 인생의 부유물 같은 소재들을 가지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알게 될지 모르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처럼 이것을 의식적으로, 그리고 신중하게 소설 속에 사용하는 것 말고도 다른 용도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내 일기가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가? 짜임새는 좀 느슨하지만 지저분하지는 않고, 머릿속에 떠올라오는 어떤 장엄한 것이나, 사소한 것이나, 아름다운 것이라도 다 감쌀 만큼 탄력성이 있는 어떤 것. 고색창연한 깊숙한 책상이나 넉넉한 가방 같은 것이어서, 그 안에 허섭스레기 같은 것들을 자세히 살피지 않고도 던져 넣을 수 있는 그런 것이기를 바란다. 한두 해 지난 뒤 돌아와 보았을 때, 그 안에 들어 있던 것들이 저절로 정돈이 되고, 세련되고, 융합이 되어 주형으로 녹아 있는 것을 보고 싶다. 정말 신비스럽게도 이런 저장물들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곤 한다.
 
- <울프 일기>, 버지니아 울프, p30, 1919년(37세) 4월 20일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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