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죽은 자는 나의 편도 아니고 적도 아니었다. 모든 죽은 자는 모든 산 자의 적인 듯도 싶었다. 내 몸은 여진의 죽은 몸 앞에서 작게 움츠러들었다. 나는 죽은 여진에게 울음 같은 성욕을 느꼈다. 세상은 칼로써 막아낼 수 없고, 칼로써 헤쳐 나갈 수 없는 곳이었다. 칼이 닿지 않고 화살이 미치지 못하는 저쪽에서, 세상은 뒤채이며 무너져 갔고, 죽어서 돌아서는 자들 앞에서 칼은 속수무책이었다. 목숨을 벨 수는 있지만 죽음을 벨 수는 없었다.
- <칼의 노래1>, 김훈
살려주자, 살게 하자, 살아서 돌아가게 하자……. 내 속에서 나 아닌 내가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아베를 죽여서는 안된다는 울음과 아베를 살려두어서는 안된다는 울음이 내 몸속에서 양쪽 다 울어지지 않았다. 몸속 깊은 곳에서 징징징 칼이 울었다. 가장 괴롭고 가장 선명한 길을 칼은 가리키고 있었다. (중략) 강막수는 밭으로 돌아갔다. 섬 너머로 지는 해의 노을이 방안에까지 스몄다. 토담의 틈새에서 빈대들이 기어내려왔다. 칼이 아베의 목을 지날 때 내 오른팔에 와닿던 진동을 생각했다. 아베를 심문할 때 내 마음속에서 울어지지 않던 두 가지 울음이 동시에 울어졌다. 아베를 죽여서는 안된다는 울음과 아베를 살려두어서는 안된다는 울음이 서로 끌어안고 울었다. 눈물이 메말라서 겨우 눈을 적셨다. 산 쪽에서 목재를 나르는 수졸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 <칼의 노래 1>, 김훈
짤막짤막한 단문(短文)으로 문장을 쓰면 좋은 일이 두 가지 생긴다.
첫째, 문장이 복잡하지 않아서 문법적으로 틀릴 일이 별로 없다.
두 번째, 독자가 읽을 때 속도감이 생긴다. 리드미컬한 독서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글쓰기에 대한 두 번째 철칙이 나온다.
문장은 짧아야 한다.
- <기자의 글쓰기>, 박종인
특별한 내용은 아니고 계속 반으로 줄이라고만 한다. 줄이면 진국이 나온다.
- <나는 말하듯이 쓴다>, 강원국
단문은 쉽지 않다. 머리와 가슴속에 할 말이 많은데 어떻게 절제를 할 수 있을까. 훈련이 된 필자는 초고 단계부터 단문이 가능하다. 하지만 글쓰기가 낯선 사람들에게는 절제보다는 통제가 쉽다. 초고에는 쓰고 싶은 대로 쓰고 나중에 고칠 때 단문으로 바꾼다.
첫째, 수식어를 쓰지 않는다. 필요할 때에만 수식어를 쓴다. MSG는 조금씩 치면 맛이 있지만 많이 뿌리면 식재료가 가지는 고유한 맛은 사라지고 질소 성분 가득한 조미료 맛만 남는다. 수식어는 조금만 뿌린다. 안 뿌려도 글은 맛있다. ‘너무’ ‘아주’ ‘황홀하게’ ‘굉장히’ 이런 수식어가 글맛을 망치고 리듬을 깨뜨린다.
둘째, 관절 부분을 잘라낸다. ‘관절’이란 긴 문장에서 쉼표 혹은 접속어미(~고 / ~며 등)로 나뉘는 부분을 말한다. 의도적으로 여러 가지 사실을 나열한 문장이 아니라면 이들 접속어미와 쉼표 부분을 ‘~다’로 고치고 마침표를 찍어본다. 고치고서 다시 소리 내서 읽으면 뜻밖에도 늘어져 있던 문장에 리듬감이 살아난다.
- <기자의 글쓰기>, 박종인
글쓰기는 의미가 드러나는 마지막의 '요점'으로
독자를 운반하는 컨테이너벨트가 아닙니다.
잘 쓴 글은 한 문장 한 문장이 중요하고 즐겁습니다. p42
문장을 받아쓰는 것은 작가가 할 일이 아닙니다.
단어 하나하나로 문장을 만드는 것이 작가의 일입니다. p68
- <짧게 잘 쓰는 법>. 벌린 클링켄보그
의심이 갈 때는 익숙한 단어라도 찾아봐야 합니다.
의심 가지 않을 때는 더욱더 찾아봐야지요.
다시 말해서, 아주 주자.
다시 말하면, 글을 쓸 때마다. p82
단어의 쓰임새가 시적인지 판단하려면 많은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런 경험은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습니다.
시를 읽으면 됩니다.
시인이 되어보세요.
그들에게서 배우세요. p86
- <짧게 잘 쓰는 법>. 벌린 클링켄보그
김훈은 작가로서 문장력을 다지려고 법전으로 공부했다고 한다. 그는 “군더더기 없는 문체, 명석 명료한 문장을 구사하려고 법전을 많이 읽었다”고 밝혔다. 김훈은 형용사와 부사를 부리지 않고 주어와 동사로만 밀고 나가는 문체를 구사했다.
- 주간동아, 2011년 7월 11일 자, 김용길 동아일보 편집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