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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R Sep 13. 2024

글쓰기가 귀찮다. 처방전이 필요하다

귀찮지만 글은 쓰고 싶다

가끔 글쓰기가 귀찮다.


잘 쓰려하지 않고 그냥 쓰면 된다. 메모하는 습관을 길러 자주 쓰면 된다. 자주 쓰다 보면 괜찮은 글을 쓰게 되고 자신감도 생긴다. 글쓰기 근육이 붙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많이 쓰면 누군가가 읽는다. 그때까지 쓴다는 마음으로 밀어붙여 보라. 어쩌다 잘 썼다는 칭찬도 듣게 되는데, 이쯤 되면 글쓰기가 즐거워진다. 낯선 두려움에서 출발한 글쓰기가 익숙함과 자신감뿐 아니라 즐거움까지 주는 것이다.
- <나는 말하듯이 쓴다>, 강원국


처음부터 잘 쓰려는 사람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꾸준히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한 줄이라도 좋으니, 못 써도 좋으니 일단 매일 써야 한다. 그것이 글을 잘 쓰는 최고의 방법이다. 글쓰기에서 '너무 잘 쓰려는 마음'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걸 꼭 기억하기 바란다.
- <글쓰기가 만만해지는 하루 10분 메모 글쓰기> 이윤영


대부분의 글쓰기 책에서는 매일, 자주 글을 쓰라고 한다. 오늘도, 내일도 꾸준히 쓰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 나는 글쓰기 선배들의 조언을 따라 매일매일 글을 쓴다. 주말도, 공휴일도 쉬지 않는다. 블로그에는 짧은 글, 브런치에는 긴 글을 쓴다. 나만 보는 글인 아침일기도 쓴다.

처음에는 억지로 썼다. 써야 하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 썼다. 내 글이 어떤지 생각도 하지 않고 매일 썼다. 블로그 이웃이 늘고, 댓글도 달렸다.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으니 재미가 생겼다. 강원국 작가도, 이윤영 작가도 '잘 쓰려고 하지 말고 그냥 쓰라'라고 했으니 잘 따라온 샘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문득문득 글쓰기가 싫어진다. 정확히 말하면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는 것이 귀찮아지고 있다. 막상 쓰려고 앉으면 또 쓰게 되지만, 자꾸 딴짓이 하고 싶다. '글쓰기 귀찮음'이라는 병에 걸렸다는 것을 진작에 알았는데, 병원에 가서 진료받고 처방받기를 미뤄두고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귀찮음의 이유를 진단해 보고, 선배 작가들의 조언을 처방전 삼아 보려 한다. 글쓰기를 계속하고 싶은 나의 작은 몸부림이다.    



브런치 글쓰기를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브런치 글쓰기 시작한 후 얼마되지 않아 귀찮다는 감정이 생겼다. 브런치 글은 블로그 글과 다르다. 블로그 글은 아무리 오래 걸려도 1시간 내에 쓴다. 그런데 브런치 글쓰기에는 최소 3시간이 걸린다. 브런치 글을 쓸 때는 글감을 찾고, 자료도 찾는다. 내 수준에서 쓸만한 글감이 아니다 싶으글감을 다시 찾아야 한다. 블로그 글 쓸 때는 신경도 쓰지 않던 개요도 짠다. 퇴고할 때 배웠던 것들을 적용해서 문장 수정도 해본다. 브런치 글쓰기는 이렇게 공을 들여야 할 것 같다. 그러니 글 쓰는데 힘이 든다. 일주일에 세 번 쓰던 것을, 두 번으로 줄였는데도 브런치 글쓰기를 생각하면 갑갑하다.

브런치 글을 쓰면서 내 안에 욕심이 생겼나 보다. 다른 브런치 작가들처럼 잘 쓰고 싶다는. '잘 쓰려고 하지 말고 그냥 쓰라'는 선배 작가들의 조언을 까먹어 버렸다.


다시 선배작가들의 조언을 찾아본다.


뭐니 뭐니 해도 글쓰기가 두려운 것은 잘 쓰겠다는 욕심 때문이다.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욕심을 자제한다.
    1. 우선 한 문장만 쓰자.
   2. 내 역량을 보여줄 기회는 또 있다.
   3. 있는 실력 그대로 보여주자.
   4. 내 민낯을 드러내도 손해 볼 것 없다.
   5. 모두 만족하고 누구도 시비 걸지 않는 글을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리하면 솔직해지자는 것이다. 이번 글이 부족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다음 글이 좋아지도록 노력하면 된다. 억지로 꾸미지 않으니 거짓이 없다. 내가 성인군자도 아니고 좋은 모습만 보여줄 필요도 없다. 위악적 표현도 쓰고 부끄러운 일도 쓴다. 거침없으니 쉽게 쓸 수 있다. 주술관계만 맞춰 쓰고, 무슨 말인지 알아듣게만 쓰면 된다.
- <나는 말하듯이 쓴다>, 강원국


우리는 노벨문학상 받으려고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써야 남들한테 잘 썼다는 소리를 들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써야 내가 느끼는 것들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에 집중하면 된다.
- <나는 매일 블로그로 출근한다> 한혜진


선배 작가들의 조언이 있어도 나에게 브런치 글쓰기는 어려운 일일테다. 하지만 잘 쓰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연습하는 마음으로, 한 문장씩 자. 노벨문학상 받으려 글 쓰는 것도 아니지 않나?

초보 작가가 글 하나 쓰는데 3~4시간도 걸리지 않는다면, 노력이 담기지 않았음이다. 글은 그렇게 쉽게 써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처음 브런치 작가를 신청했던 것도 블로그 글보다는 진중한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써야 내가 느끼는 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에 집중하면서, 지금 나의 실력을 바탕으로 솔직하게 그냥 쓰자. 잘 쓰려 애써봤자, 어차피 내 실력이 그대로 드러날 테니.




사진: Unsplash의 Fons Heijnsbroek


매일 같은 것을 하면 질리게 되어 있다.    


매일 같은 반찬을 먹으면 질리고, 매일 같은 길을 오가면 질린다. 매일 같은 곳에 출근해 같은 사람을 만나면 질린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고, 새로운 곳에 가본다. 탈출, 일탈, 쉼을 원한다.

작년 이맘때에는 해보지도 않았던 글쓰기라는 것을 애써 매일 하고 있는데 질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나의 '글쓰기 귀찮음' 당연한 생기는 병이었다. 하지만 귀찮다고 글쓰기를 멈추기는 싫다.

질리지만, 글쓰기를 계속하고 싶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선배 작가들의 조언을 찾아본다.


'글은 엉덩이로 쓴다'라는 표현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어요. 마치 글이 이미 내 몸 안에 저장되어 있고 그걸 출력하는 게 글쓰기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데 무작정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앉아 있다고 한들 문장이 아니라 한숨만 나오겠죠. 잘 생각해 보세요. 글쓰기는 앉아 있는 일이라기보다는 앉아서 생각하는 일이에요.
(중략) 저는 '글은 엉덩이로 쓴다'는 말보다 '글쓰기는 산책에서 비롯된다'는 말을 믿어요.
(중략)  오늘의 질문, "글은 엉덩이로 쓰는 거라는데, 맞나요?"에 대해 저는 니체의 명언으로 답변해 보겠습니다.
모든 생각은 걷는 자의 발끝에서 나온다.
(중략)
글쓰기를 시작했다면 적어도 1년은 산책하며 사유하고 앉아서 쓰는 습관을 들이길 궈해드리고 싶습니다

- <은유의 글쓰기>, 은유. p72


글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 앞에 커다란 시멘트벽이 탁 가로막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그 벽을 노려보면서 ‘네가 무너지나 내가 넘어가나 해보자’ 하지 마시고 그 벽을 살짝 돌아 (노트북을 덮고) 밖으로 나가세요. 아니면 아무 책이나 펼쳐서 읽어보세요. 쓰기를 멈추고 읽기를 시작하세요. 그 어떤 책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지금 쓰는 글과 관련 없을수록 좋아요. 뭐든 지금 하던 것과 별개의 딴짓을 하는 거예요. 환기! 쓰기가 막막해질 때 상황이나 분위기 전환만큼 중요한 건 없어요.

-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이유미


며칠 전, 글쓰기가 너무 귀찮아 다 팽개치고 카페에 갔다. 최근의 나는 글을 쓰기 위해, 공부를 위해, 학습자의 마음으로 카페에 갔었다. 이날에는 이 마음을 버리고 나섰다. '에라 모르겠다, 밤에 쓰면 되지'하며 그날의 글쓰기를 미뤘다.

볕 좋고 전망 좋은 카페에 앉아 <기자의 글쓰기>를 읽었다. 졸음이 몰려왔다. 푹신한 의자에서 웅크리고 앉아 졸다 깨다 하며 책을 읽었다. 퍼뜩 깨고 보니 손에는 책이 들려 있었고, 커피는 식어 있었다. 정신 차리고 <무정형의 삶>을 읽는데, 눈물이 툭 터졌다. 김민철 작가가 있는 파리를 방문한 친구가 '뤽상부르 공원 잔디밭 한가운데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는 대목에서였다. 작가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선을 훌쩍 넘은 친구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아, 나는 이 친구 같은 사람이었는데'하면서 눈물이 나와버렸다. 읽고 있는 책들에 나오는 고전, 미술 작품들을 모르는 나, 예술적 소양 없는 나에 대해 한심해하며 우울하던 참이었다.

갑자기 용기가 났다. '나는 한가운데로 성큼성큼 들어가 보는 사람이었잖아. 좀 모르면 어때, 지금부터 알아가면 되지.' 그리고는 '지금 이 느낌을 글감으로 킵해둬야겠다' 마음먹었다. 글쓰기를 미룬 카페 나들이였는데, 결국 글쓰기로 이어졌다.   


선배 작가들은 글쓰기가 막혔을 때, 노트북을 덮고 밖으로 나가 걷고, 아무 책이나 펼쳐서 읽으라고 조언한다.

그렇다. 나에게는 그냥 책 읽기와 목적 없는 산책이 필요했다. 글쓰기로부터의 건강한 일탈 말이다. 졸다 깨 다했던 카페에서의 경험처럼.



나는 매일 글을 쓸 것이다. 처방전을 가지고.


오늘은 이만큼 썼으니 내일은 열심히 글을 쓰리라. 글쓰기는 나의 거의 모든 것을 치유해 주었고, 그것이야말로 내가 당시에도 믿었고 지금도 믿는 일이다.

- 헤밍웨이, <이젠 블로그로 책 쓰기다>에서 재인용, 신은영


이전에 아무리 많은 글을 썼더라도 지금 쓰는 글은 새로운 도전이다. 새로운 글을 쓴다는 것은 시작점에 다시 서는 것이다. 처음은 누구나 두렵다. 그렇지만 처음이어서 또한 두근거린다. 두려움과 두근거림은 한 끗 차이다. 두려움을 두근거림으로 바꾸는 건 도전정신이다.

- <나는 말하듯이 쓴다>, 강원국


글쓰기는 언제나 새롭고, 언제나 도전이다. 하지만 글쓰기는 나를 치유로 이끈다. 헤밍웨이의 말도 강원국 작가의 말도 모두 진리다. 도전하고 치유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글쓰기의 의미이자 재미다. 나 같은 초보작가에게도 그렇다.

감히 오늘도 쓰고 내일도 쓴다는 헤밍웨이를 따라, 나도 매일 쓰겠다. 욕심 내려놓기, 건강한 일탈이라는 처방전을 받아 들고. 쓰다가 아프면 처방전을 다시 꺼내보면 되겠다. 다행이다. 선배 작가들의 조언이 있어서.






표지사진: Unsplashfreesto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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