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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R Sep 11. 2024

글쓰기의 거의 모든 것, 퇴고(2)

내가 퇴고하면서 배운 것들

(앞의 글에서 이어집니다.)



세 번째 방법은 퇴고 목록 만들어, 한 번에 하나씩 수정하기다. 


<나는 말하듯이 쓴다>를 읽던 중, 퇴고 막바지에 내가 했던 작업과 비슷한 방법이 나와 반가웠다.

작가는 '퇴고 목록'과 '오답 노트'가 필요하다고 했고, 한 번에 하나씩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퇴고를 하면서 '오답노트'를 만들었고, 한 번에 하나씩만 수정하기를 해봤다. 헤매고 헤매다가 찾은 궁여지책이었다. (퇴고 전에 이 책을 읽었으면 덜 헤매지 않았을까 잠깐 생각해 봤지만, 아니었을 것이다. 닥쳐야 방법을 찾게 되니...)


글을 고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퇴고 목록’과 ‘오답 노트’다. 퇴고 목록은 말 그대로 무엇을 점검할지 정리한 것이다. 무턱대고 본다고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 볼지 생각하고 하나씩 봐야 한다. (중략) 오답 노트는 ‘이렇게 쓰지 않고, 저렇게 쓰겠다’라는 기준으로 정리한 항목들을 모은 것이다. 노래하려면 음을 알아야 하고 그림을 그리려면 색을 알아야 하듯, 글을 쓰려면 문법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오답 노트의 주요 항목이다. 물론 문법에 어긋나거나 틀린 것뿐 아니라 어떻게 쓰겠다고 마음먹은 나름의 규칙들도 항목이 될 수 있다.
- <나는 말하듯이 쓴다>, 강원국


한 번에 하나씩 고치는 것도 중요하다. 어휘는 단어 선택, 문장은 단어 배열, 문단은 문장 첨삭이 핵심이다. 단어 하나하나가 문맥에 맞는지 볼 때는 그것만, 문장 중에 비문이 있는지 찾을 때는 그것만, 문단의 완결성을 점검할 때는 그것만, 전체 문맥을 살펴볼 때는 그것만 한다. 또 뺄 게 없는지 보고, 빠진 게 없는지 보고, 바꿀 게 없는지 본다. 문장과 문단 순서를 바꾸거나 단어를 바꿨을 때 글이 확연하게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연도나 사람 이름, 수치 등 사실관계에 오류가 있는지 보고, 띄어쓰기가 틀리거나 오자와 탈자가 있는지 본다.
- <나는 말하듯이 쓴다>, 강원국


내가 이 방법을 사용하게 된 과정은 이렇다.

막상 원고를 수정하다 보니 한 단락 고치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리는 일이 빈번했다. 이렇게 저렇게 수정을 해봐도 이상했다. 어색한 부분을 수정할 적당한 단어를 찾아내야 하는데 나의 어휘력은 바닥을 드러냈고, 한 문장 수정하면 앞뒤 문장을 다 바꿔야 했다. 답이 틀렸다는 것은 알았는데, 고치는 방법을 몰라 머리 쥐어뜯는, 수학문제 앞에 앉은 수험생의 마음이 되었다. 어쩔 수 없다. 수험생의 마음으로 공부하며 수정하는 수밖에. 점수가 나오는 시험이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나도 모르게 반복해서 썼던 단어들은 나에게 익숙한 단어였을 것이다. 이를 다른 단어로 대체하려면 국어사전을 뒤져야 했다. 문제가 또 발생했다. 수동태로 쓴 문장들을 고쳐야 했는데, 내가 문장 어디가 수동태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헤매기 시작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를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교재로 삼아 공부하면서 퇴고를 하려 마음먹었는데, 책을 읽다 보니 수정할 것이 더 쌓였다. 으악! 

파워 J인 나는 생각했다. '리스트가 필요해!'


그래서 노트에 적었다. 이런 식으로.

1. 반복되는 단어 바꾸기 (국어사전 찾기)

2. 비문 (발견 못하면 할 수 없다. 이것이 내 수준이니.)  

3. 늘어진 문장, 짧게 바꾸기.

3. 빼기 - '적', '의', '것', '들' (여기까지만 하자. 그 외에 것은 못하겠다)

4. 맞춤법 (한글 파일 빨간 줄 없애기. 빨간 줄이 생기는 이유를 모르겠으면 국어사전 찾기)

5. 띄어쓰기 

등등등


위의 리스트를 지우기 위해 한 번에 하나씩 집중해서 수정했다.  3번 리스트를 지우기 위위해 처음에는 원고 중에 '적'만을 검색해서 표시해 두고 고친 후, 다음번에는 '의'를 검색해 표시한 후 '의' 부분만 고쳤다.

강원국 작가가 책에 담은 <직장에서 사용했던 퇴고 리스트>는 43개나 되니, 나의 짧은 리스트는 그와 비교할만한 것이 못된다. 그래도 리스트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원고를 고쳐 본 게 어디냐. 다음에는 이 리스트를 퇴고 처음부터 사용할 수 있겠지.     



사진: Unsplash의 Erik Mclean




퇴고, 해 놓고 나면 뿌듯하기는 하다.


위의 적은 것들보다 중요한 것은 독자들을 생각하며, 핵심메시지 놓치지 않고 퇴고하기일 것이다. 그래도 초보 작가에게는 기술적인 것도 중요하니 나의 경험을 섞은 몇 가지 방법을 적어 봤다.


퇴고는 고통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신기하게도 하고 나면 뿌듯한 작업이다. 이상한지도 몰랐던 나의 글에서 고쳐야 할 부분을 발견하고, 이를 고쳐가는 즐거움이 있다. 이리저리 궁리하여 단어들을 배치하고 문장들을 정리하며 헤매다 어느 순간 아귀가 딱 맞는 경험을 할 때도 있다. 아주 가끔이지만. 끙끙 대던 수학문제를 풀 방법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과도 같다. 내 글이 제대로 수정되었는지 여부를, 딱 떨어지는 수학의 답처럼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기자의 글쓰기>에는 저자가 3년 차 기자였던 시절 경험한, 퇴고에 대한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점심 먹으려 나가려는 기자를 붙잡고 한 선배가 말했다. "어이, 박종인 씨, 당신 글에서 '의'자와 '것'자를 좀 빼보지." 처음 기자는 생각했단다. '1,000자도 되지 않는 글이다, 글자 두 개 빼는데 5분이면 된다.'

기자는 여섯 시간 이십 분 뒤인 그날 오후 다섯 시 사십 분에 점심을 먹었다.(<기자의 글쓰기> 중에서)


박종인 기자는 이날의 기억에 대해 "역사적인 날"이라고 적었다.

오 선배가 요구한 그 두 글자를 삭제하려면 문장 구조는 물론 글 전체를 뒤집어야 했다. 단순하게 글자만 빼버리면 문장이 성립하지 않았다. 그러니 문장 속에 있는 단어 앞뒤를 바꿔야 했다. 겨우 문장을 맞춰놨더니 이번에는 글이 뒤죽박죽이 됐다. 결국 나는 분통을 터뜨리며 오줌도 누지 못하고 여섯 시간 동안 글을 고쳤다. 그 날짜와 그 기사를 기억해 뒀어야 했다. 역사적인 날이었다. 글쓰기라는 작업이 얼마나 어렵고 또 재미있는 일인지 알게 된 날이었다.

- <기자의 글쓰기>, 박종인


강원국 작가는 '쓰기는 어렵지만, 고치기는 쓰는 것보다는 어렵지 않다'라고 했다. 쓰는 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지만, 고치는 것에는 발견의 기쁨이 있기 때문이란다.  

  

글도 너무 잘 쓰려고 하지 말고, 아주 못 쓰지만 않으려고 하면 된다. 쓰기는 어렵다. 고치기는 쓰는 것만큼 어렵지 않다. 쓰는 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고, 맨땅에 머리 박는 일이다. 그러나 고치는 건 재미있다. ‘이걸 왜 이렇게 써놨지?’ 하며 틀린 걸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 또 자기 글이 점점 나아지는 걸 보면 기쁘다. 헤밍웨이는 “내 초고는 다 걸레다. 쓰레기다”라고 하며 수십, 수백 번 고쳤다. 원래 잘 쓴 글은 없다. 잘 고쳐 쓴 글만 있다. 좋은 글은 얼마나 잘 고치는지의 싸움이다.

- <나는 말하듯이 쓴다>, 강원국



이제 공저 원고는 맞춤법, 띄어쓰기 정도만 수정할 수 있다. 다음에 또 책을 쓰면 더 잘 고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인생 처음 제대로 퇴고를 하면서 배웠다. 퇴고를 하면 글은 좋아지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글을 쓰려면 고쳐야 한다는 것을.


솔직히 블로그 글을 쓰고, 브런치 글을 쓰면서는 공저 원고처럼 퇴고하지 못한다. 쓰고 발행하는 주기가 짧으니 말이다. 그래도 한 번 퇴고를 해보니 글을 쓸 때부터 조심한다. 같은 단어 반복하지 않기, 짧게 쓰기, '것' 좀 제발 덜 쓰기 등등. 이런 배움의 과정이 재미있어서 나는 계속 글을 쓰나 보다.




표지사진: UnsplashAaron Bu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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