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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랑 Jul 08. 2019

언젠가는 안녕

아직은 이겨내지 못한 과거인 거다.

네가 미워.


그냥 문뜩 떠오르는 네 그 따뜻함이.

마지막엔 결국 너를 울렸던 내 이기심이.


잊히지 않는 이 감정과 기억들이 미워.


모든 걸 적어 내려 갈 수 없다는 게, 그리고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했는지가 기억에서 사라진다는

아니지. 사실 기억 저 어딘가에 묻혀있을 거야. 그냥 꺼내보기도 싫고 묻어두고 조용히 먼지가 덮여서 내가 잊어버렸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거지  

 그게 언제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행복했어 그때. 나는 여전히 그 시절이 그리워. 아마 다시 돌아가서 선택하라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거야. 그 시절의 나는 좀 더 감정에 솔직하고 표현을 잘했던 사람 같은데. 사실 이것 말고도 참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많았는데.


역시 그냥 걸 적기 싫었나 봐.


아직 이겨내지 못한 과거야. 그래서 그런가 이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직접 마주하면 괜한 불편함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와. 그들은 이미 내 그런 모습들을 기억 못 하고 앞으로 잘 나갈 텐데.

나는 그저 그 시간 속에 아직 매여있어.

아니 매여있는 게 아니라 그냥 거기에 그 시절의 나를 두고 왔어.


그래서 더더욱 흔적을 지워나가고 연을 끊고 기억을 잃으려 노력했던 걸지도 몰라.


마치 끊겨버린 아치교처럼.

연결되지 않은 과거를 지니고 있는 나는 당연히 불완전하고 불안정하지.


그런데 누구에게나 있잖아. 잊어버리고 싶은 과거 따위. 그 시절의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을 피하고 그냥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그런 과거.


수십 번을 고민하고 수백 번을 떠올리고 수천번 떨쳐내려고 해도 아직 뭐가 하나도 달라진 게 없어. 시간은 엄청나게 지나가서 색이 바랜 줄 알았는데 나는 그저 그걸 덮어두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어.


마주하기 두려운 시간들이고 왜인지 이겨내지 못하면 다시 그 늪으로 끌려들어 갈 것만 같아서. 그냥 잊고 있는 거야.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겠지. 몇십 번 얘기하다 보니 이젠 그냥 습관처럼 아무렇지 않게 꺼내는 얘기들이 가끔은 나를 다시 울렁거리게 만들어.


영원히 묻어두고싶은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다시 그 시절로 들어갈 용기와 힘이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멀리서 영화가 상영되듯 그 시절을 그대로 남겨두는 것뿐. 그나마 다행인건 이제는 흑백영화로 너무 생생하게 재생되지는 않는 다는 거지. 그 당시의 감정들이 그렇게까지 강렬하지는 않아.


그러니까, 언젠가는 안녕이라며 그 시절의 나에게도 인사를 건넬 수 있겠지.


울고 있는 나를 그저 바라보면서 아무 말 없이 안아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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