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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랑 Nov 15. 2018

"행복했으면 좋겠어"

딱 그 정도만 아무 의미 없을 그런 인사 정도만. 

내가 처음 넬을 접하게 된 건 2013년 가을이었다. 

유튜브 랜덤 재생에서 우연찮게 걸린 동영상으로 딱 한번.  

그 당시에는 딱히 가사도,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들도 느끼지 못했을 때라 더더욱 와 닿지 않았었다. 

그러고 나선 몇 년간은 넬이라는 밴드 자체를 까먹은 채로 앞으로 나아갔다. 

애초에 나는 노래를 많이 듣지도 않았었던 그런 학생이었기에, 그냥 그렇게 흘려보냈었다. 


그 이후 다시 넬을 듣게 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500명도 채 안 되는 학교에서, 그것도 아무것도 없는 산골짜기에 있던 학교의 학생에게 

노래를 듣는다는 건 참으로 큰 부분이었다. 생각보다 그날 어떤 노래를 듣느냐에 따라 기분이 많이 달라졌던 것 같다. 그리고 넬의 노래는 나에게 많은 영감들과 감정을 주는 매개체이자 동시에 내가 표현할 수 없는 말들과 감정을 대신해 나타내는 수단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좋아하던 친구가 반복해서 듣는 노래가 뭔지 궁금해서 물어보다가, 딱 한번 들어봤던 밴드임을 기억해내곤 "아 들어보기는 했지"라는 말로 대충 넘기려다 한번 들어보라며 영상을 보내준 것으로 시작된 넬에 대한 관심은 대학교 1학년 때 다시 사그라들었다. 


생각보다 아프게 끝났던 3년간의 삶이 가사 하나하나에 대입이 되는 것을 깨닫던 그 날, 그 노래들은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나의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과 함께 묻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앨범은 끝까지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다 담아내버렸다. 


사실 사람마다 노래를 듣고서 연관 짓는 기억이나 감정, 해석은 다양하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이번 앨범은 과거에 대한 작별이다. 


희망고문으로 시작해서, _(underbar)로 끝나는 거대한 여정은 이제야 드디어 과거에게 담담히 작별인사를 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어"라는 그 말을 내뱉을 수 있다는 사실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모든 수록곡이 어쿠스틱으로 진행되는 이 앨범은, 생각보다 담담한 이별, 아니 작별의 색을 지닌다.


뭔가 좀 답답해 숨을 쉬고 있어도 숨이 막혀 호흡이 가뻐
하루가 멀다 하고 넘어지기에 바뻐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러 분명 휴식이 필요해
-희망고문 NELL


요즘 다시 가장 많이 든 고민은, 과연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였다. 

내가 고3 내내 지니고 있었던 생각이자, 나를 가장 우울하게 만들었던 생각은 어느 순간인가부터 나를 조여오기 시작했다. 사실 이 세상에 내가 설 자리는 없다고, 내가 감히 꿈꿀 수 있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뿐이라고. 

숨 쉴 공간, 좋은 대화를 갈구했고,  차라리 아무도 나를 모르는 그런 낯선 곳에서 사람들을 지켜보는 게 더욱 마음이 편했던 그 순간들. 모든 것을 잊고 아무런 생각을 안 하는 게 훨씬 나을 거라는 판단하에 계속해서 비워지던 술잔, 뭔가 말을 하려고 해도 어떻게 표현을 할지도 모르겠었던 그 어두운 시간들 속에서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그저 멀어지기에 바빴고, 우울과 불안함 그리고 두려움이 나를 잠식해 나갔었다. 모든 걸 다 잊을 수 있는 공간이라면 어디든 좋다고 빌었던 순간들. 참으로 지독했던 시간들이었다. 실제로 모든 것들에게 도망을 쳤던 시간이기도 하고. 


말하지 않아도 다 알겠으니까 그 어떤 설명도 아무 말도 하지 마
붙잡고 싶어도 그러지 않을 테니까 웃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할 테니까
- 헤어지기로 해 NELL 


결국 도망치듯 나와 상담을 받으러 간 그곳은 딱히 별 다른 도움도 되지 않은 채, 불신과 불안감만을 더욱 조성했었다. 수 없이 많은 자해와 생각들이 한데 뒤엉켜 더욱 설명할 수 없는, 그저 매일 밤 계단에서 주저앉아 덜덜 떨면서 울던 나와 다시 아침이 되면 모든 것이 괜찮다는 듯 아무런 생각도 표정도 없는 내가 있었을 뿐.  다들 정신없고 가장 예민할 그 시간 속에서도 끝까지 나를 잡아준 사람들이 있었다. 갑자기 연락 두절이 되어도 언제든 반겨준 사람들. 내가 조금 더 나 자신을 찾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던 사람들. 참 무모한 행동도, 생각도 많았던 시간들. 그렇기에 지금의 내가 아직 있을 수 있는 시간들.  


모두에게서 멀어진 마음 쉴 새 없이 부서지는 수 천 개의 마음
부탁해 부탁해 부디 부서진 내 맘을 치유해 주길 바래
-치유 NELL


내가 가장 두려웠던 건 그 사람들이 지쳐서 나를 떠나가는 것이었다. 더 이상 진전이 없는 대화, 반복되는 상황, 나아질 기미 따위는 보이지 않았던 나를 보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렇기에 더욱 스스로 끌어안으려 하다 실패하곤 부탁이라며 치유해 주길 바랬다고 감히 그렇게 변명하는 나 자신을 나는 절대로 사랑할 수 없었다. 참으로도 아이러니한 실패였다.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해결되는 문제에 스스로를 더 혐오하고 있었으니 뭐 어쩔 수 있나. 쳇바퀴 돌듯 매번 같은 곳만 뱅뱅, 아니 더 심한 경우에는 그마저도 못해 튕겨져 나갔으니. 

 

아직도 너의 소리를 듣고 아직도 너의 손길을 느껴
오늘도 난 너의 흔적 안에 살았죠
아직도 너의 모습이 보여 아직도 너의 온기를 느껴
오늘도 난 너의 시간 안에 살았죠
-기억을 걷는 시간 NELL


사실 시간이 지나고, 새내기 생활을 하면서 정신없이 날들을 보내면서 점차 그런 생각들이 줄자 스스로 매우 뿌듯해 했었다. 이제는 다시는 그런 검은 빛 따위는 보지 않으리라 다짐하기도 했었고,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장소, 새로운 기억들이 나를 차차 덮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가장 강렬했던 기억들은 항상 다시 돌아왔고 나는 그 과거의 흔적에 매여 잔상만이 남은 그곳을 계속해서 곱씹었다. 


실망스럽게도 불 꺼진 내 방안에 웅크려 있었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무뎌져 갔고 마침내 모든 건
끝나버렸지 난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난 적 없다는 듯
모든 걸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어
-Dear Genovese NELL


스스로를 더욱 바쁘게 만들다가 결국 지쳐 모든 것을 다 놓고 일주일 내내 방에만 누워있었던 적이 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를 쯤에 눈을 뜨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정말로 죽을 만큼 배가 고플 때 간신히 일어나 라면을 끓여먹고는 다시 술과 함께 강제로 스스로를 재웠던 날들. 그 멍한 시간들 속에서 나는 계속해서 미련만 곱씹고 있었다. 나중에 만났던 친구 중 D는 내게 "너는 1년 전 고민을 그대로 지닌 것 같아. 그리고 나는 그게 걱정이 돼." 라며 다시 내게 그 경각심을 주었다. 사실 술에 취하면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과거는 이제는 잡을 수 없는 시간인데, 나는 무엇을 바랐던 걸까. 그저 취했다는 말로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며 마치 놓치기 싫다는 듯이 그곳을 떠나지 못했던 이유를 알아낸 것은 겨울쯤이었다.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단 생각해
현실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너무 완벽해
그래서 제발 내일 따윈 없었으면 좋겠단 생각하고
-섬 NELL


한 때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C는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울을 곱씹는 건 좋지만, 빠지지는 말기를" 

참으로 멋있는 말이라 생각했다. 사실 그 친구는 항상 내가 생각했을 때 멋진 말들을 간간히 내게 하곤 했다. 

첫겨울방학 때 나는 아프리카로 잠시 인턴을 다녀왔다. 약 36시간의 비행시간 끝에 도착한 그곳은 참으로 아름다운 경치와 밤하늘을 지니고 있었다. 쨌든, 가장 중요한 일들은 저 36시간의 비행시간 안에서 일어났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타고 간 비행기의 좌석에는 화면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자도 자도 하늘 말고는 보이지 않았던 그 공간에서 나는 다시 한번 내 생각들을 쭉 써 내려갔다. 내가 그 우울했던 시절을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사실 나는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하며. 그 우울한 시간들은 나의 가장 깊은 이야기들을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는 정당방위였고, 인정의 시간들이었고, 사랑과 행복의 시간이었고, 어찌 보면 닥쳐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혼자 잘 서있다 갑자기 느낀 온기에 취해 다시 홀로 서기엔 너무 겁쟁이였던 나는, 사실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차라리 스스로에 대한 기대를 낮춰버리면, 추락할 때 그만큼 아프지는 않을 테니 라고 합리화시키면서 말이다. 피식하고 웃으며 이젠 다시는 생각하지 말자며 공책을 덮어버렸다.  


달콤하게 날 간지럽히던 말. 내가 있어 행복하다던 말.
잊혀질 수 있을런지. 차갑게 내게 와서 꽂히던 말.
이제 그만 놓아달라던 말. 잊혀질 수 있을런지.

머물러도, 떠나가도 
마지막은 항상 그래 결국 모두 너를 향해.
Holding onto Gravity


사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을 꼽으라 하면 그 검은 빛의 기억들도 들어갈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흔히들 과거의 기억은 미화돼서 추억이 된다고 하니. 실제로 좀 그런 것 같기도 한데, 흉터가 아물어 이제는 그 얕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어서 그런가. 사실 여전히 가끔씩 그 흉터들이 다시 생겨나곤 한다. 경각심인지 괜한 분풀이인지 모를 줄들. 딱히 죽기 위해 보다는 다시금 그 생각들에 시달리는 내가 싫어서겠지만. 고등학교 때만큼 감정적이고 감성적이었던 순간은 없었다. 그만큼 글을 쓰는 게 서툴렀고, 솔직하게 쓰고 싶었고, 조금은 개인적인 이유들이 점철되어있던 글들이었으니. 결국 모두 다시 그 시간들을 향해 흘러갔다. 대학 와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상담은 수업을 가던 순간 충동적으로 차도에 뛰어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때였다. 사실 이젠 그마저도 오랜 시간이라 가물가물하지만, 그때의 나는 꽤나 다급했던 모양이다. 지금은 멍하니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인데. 아니 조금은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평생을 안고 가도 모자랄 기억을 나는 또 지워갈 테고
눈 녹듯 사라져 갈 그날의 모습들 바라보며
나 역시 조금씩 잃어갈 테지
Home
You were my home
-Home NELL


봄이 왔고, 여름이 지났고, 가을이 벌써 반쯤 지나갔다. 다시 겨울이 오고 눈이 쌓이겠지만, 동시에 내 기억 위 쌓이는 흰 눈은 얼룩진 날들을 하나둘씩 지우고, 새로운 색으로 다시금 채워 나갈 것이다. 어쨌든 나 역시 끊임없이 어디론가 향하곤 있고, 그 과거에 매여 남아있던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으니, 모든 것들이 변하겠지. 

지독하게 아픈 날들이었고, 눈부신 따뜻함에 취한 날들이었고, 시리도록 추운 날들이었고, 과분할 정도로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날들이었다. 한 때는 나의 집이자, 삶이었던 곳에게.  여전히 헤매고 있지만, 또 무작정 걷다 보면 뭐든 나오겠지. 새로운 나의 집이. 아니 사실은 있었다는 존재만으로도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지나고 나서 모든 아픔이 물밀듯 그렇게 밀려와 참 힘들더군요
함께 있으면 머물러지나요 머물러지면 행복해지나요
 떠나려 하면 어떻게 하나요 붙잡아봐도 떠나려 한다면
_(underbar) NELL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참으로 긴 글이고, 참으로 긴 감정의 연장일 것이다. 

어차피 영원히 매여있지는 못할 기억이니, 그동안 계속해서 흔들거렸던 기억들을 하나둘씩 놓아주며 

이제는 행복했으면 좋겠어. 너도. 나도. 

딱 그 정도만 아무 의미 없을 그런 인사 정도만 남긴 채로 우리 헤어지기로 해


딱 그 정도만.


다시 그리워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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