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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랑 Aug 15. 2017

마무리, 그리고 새로운 출발

항상 고마웠고, 항상 그리워할 당신들에게. 

출국이 며칠 남지 않았다. 

물론 그런 사람 치고는 이제야 겨우 짐가방을 꺼내서 하나씩 짐을 싸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나는 여전히 남들보다 늦고, 그렇기에 시간이 넉넉하게 남은 것 같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시간은 빠르고 조용하게 지나가고 있다. 


하나둘씩, 마무리를 지어가는 하루들로 채워지고 있다. 


사실 오늘 네가 준 편지가 아니었더라면 내 출국 전 마지막 글은 그냥 이제 떠나는 모두들을 위해서 

"잘 살고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빛나고 있기를." 이라며 끝이 났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했던 나의 고등학교의 마무리이며 새로운 시작을 위한 다짐이었기에. 


그러나 네 마지막 편지를 읽는 순간 너무나도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니 사실 가장 처음 든 생각은 

' 아 읽지 말걸 그랬다.'였다. 그저 다른 편지들처럼 소중히 모아 두고, 네 말을 들은 채로 그저 읽지 말아야 했었다고 생각했었다. 그건 단순히 네 편지가 감동적이어서가 아니라, 네게 미안했기 때문이었고, 동시에 너 말고도 여럿에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 아직 많이 서투르고 어린 내게 감히 "좋은 사람"이라는 수식어를 달아준 당신 때문에.  그래서 늦었지만 그래도 모두들에게 마지막으로 고맙다고 말을 하고 마무리를 지으려 한다. 


나는 항상 남들보다 느렸다. 

적어도 내 고등학교 3년 동안은 그랬던 것 같다. 

단순하게 갈 수 있는 길을 굳이 빙 돌아가기도 했고, 남들이 봤다면 멍청하다고, 힘들지 않냐고 하는 길을 선택해서 걸어갔던 적도 있다. 


힘든 것을 좋아하느냐?라고 묻는다면 

굳이 찾아서 고생하는 성격은 아니라고 대답하지만 주위의 친구들은 이 자식은 항상 특이한 것만, 

일을 찾아서 벌린다고, 사서 고생을 한다고 장난치곤 했다. 


그건 내가 느렸고, 서툴렀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나름대로 변명을 해본다. 


나는 강원도 산골의 기숙사 학교에서 3년을 보냈다. 150명 남짓의 그 작은 학교는 너무나도 폐쇄적이면서도 

동시에 개방적이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가족"이라 칭할 수 있을 만큼 서로에 대해서 너무 잘 알았고, 

그렇기에 동시에 혼자만의 공간을, 그중에서도 자신과 마음 맞는 사람들을 찾아 헤매었었었다. 

그곳, 그 시간만이 제공해 줄 수 있는 그런 소중한 경험들에 나는 집착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 많은 것들을 해보려고 했고 결국 중간중간에 과부하가 걸린 상태로 어찌어찌 버티다가 3학년 2학기에 

입시와 그 외의 모든 것들을 감당하려다 약간은 멈춰 서서 쉬어가는 날들을 지냈었었다. 우리는 다들 어렸고, 가끔씩은 위태로웠고, 동시에 다들 열정이 넘쳤고 살아있었다. 각자 자신만의 색과 모향이 있었고, 동시에 너무나도 다르면서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있었다. 그렇기에 그 작은 학교 안에서의 복잡한 관계와 사건들은 서로에 대한 애정과 미움이 너무나도 절묘하게 뒤섞여버린 관계들을 만들어 냈었다. 특히, 스스로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것이 서툴렀던 나에게 있어서는, 깊은 인간관계를 많이 경험하지 않은 나는, 항상 남들보다 한 박자 늦게 나의 실수들과 감정을 비쳤기에 더욱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었었다. 


사람 때문에 울었고, 사람 때문에 웃었고, 사람 때문에 살아남았다.


반년 남짓 지난 시간은 그 당시에 너무나도 복잡하고 엉켜 보였던 관계들을 해결해 주기엔 어느 정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며칠 전 새벽에 친구와 통화를 하던 중, 문뜩 생각보다 다들 담담하게 예전의 이야기들을 꺼낼 수 있게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지금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조합의 사람들끼리 모여서 환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낯설게 느껴지면서 동시에 그립다는 생각을 했었다. 


새벽에 다 같이 모여서 대학에 제출할 에세이를 쓰던 것, 몰래 옥상에 올라가 밤하늘에 수 놓인 별들을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한 것, 아파서 끙끙대고 있을 때 약을 먹으라며 챙겨준 것, 계단에 모여 앉아서 이야기를 나눈 것, 눈이 미친 듯이 쏟아지던 날, 운동장 한가운데에 누워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던 것, 모닥불 앞에 앉아 불꽃놀이를 하던 것 등 이외에도 수많은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고, 과거의 아픔은 사라진채 그리움만이 진하게 그 자리를 지켰었다. 


이제는 누구를 만나도 술 한잔과 함께  "그땐 그랬었지"와 그 모든 복잡한 감정들을 삼켜버리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그리곤 서로에게 잘 가라는 말과 예전에는 감히 건드릴 엄두도 못 냈던 관계들을 해결하려는 그런 시간이 되었다. 


"넌 요즘 괜찮아? 이제는 손 안 떨려?"     

"그냥... 그렇지 뭐. 그래도 나름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넌? 넌 잘 살아?"

".... 나 걔하고 화해할까 봐... " 

" 난 이미 J 한테 연락했었는데. 아 물론 지금은 친구도 끊고 연락도 안 하지만,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가 된 것 같아서. 걔랑은 영원히 덮은 채로 지날 줄 알았거든. "

" 요즘 다들 하나둘씩 뭔가 마무리를 짓는 것 같아서. 마무리하고 새 출발을 준비하는 것 같은데, 
나도 새로운 시작을 하기 전에 그러고 싶어서.. 나도 해보려고. 근데 어렵네."

"어렵지... 그래도 난 지금 아니면 못할 것 같아서. 이제라도 마무리 지으려고.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네.
망가지는 건 한순간이었을 텐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당시에 망가져있었던 내가, 툭하면 덜덜 떨면서 도망치기에 급급했던 내가 마무리를 하려 연락을 하고 

인사를 건넬 수 있었던 것은. 다시 괜찮아지기까지에 나는 여전히 남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 채로, 빙 돌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잡아주었고, 인도해주었고, 격려를 해준 순간까지도 나는 항상 미안한 존재였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이제야 스스로에게 너도 잘했다고, 미안한 존재가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마지막까지 학교에 잔류를 했던 그 아이는 마지막까지, 남들은 이미 한, 마무리를 짓는 중이다. 


 이틀간 심하게 앓았던 열나는 날들은 그때의 시간들을 다시 되돌아보게 해 준 날들이자, 

너무나도 그리운 시간들에 대한 애도의 시간이었다. 


이제는 정말 서로 다른 위치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길 위에 막 한 발을 내딛는 중이다. 

누군가 한 명이 떠나갈 때마다 더욱 멀어지는 느낌과 너무 늦지 않았기를 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울 것이다. 항상 그랬듯이. 

하나의 가족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만큼의 가까운 존재들이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리고 당신들과 함께한 기억들이 다시 위태 위태 해질 때 나를 붙잡아 세워줄 테니. 

너무나도 많은 것을 공유했고, 너무나도 많은 것을 의지했던 사람들이기에. 

당신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존재하지 않음을 알기에 더욱. 

항상 고맙고 생각날 것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모두들 빛나길. 옥상에서 바라본 그날의 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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