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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화일 Oct 20. 2023

아프리카에서 연예인 체험하기

06. 페즈 염색공장 처음 간 사연

40일 같은 4일 차,

다시 봐도 아름다운 로비.


귀한 아침을 챙겨먹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났다.



누가 밥 주는 곳이 최고라 했나. 지당하신 말씀이에요.

간만에 보는 잘 차려진 밥상에 한국인의 전통 의식 식전 사진 찍기를 몇 번이나 거쳤다.


모로코 전통 빵이라는 못생긴 반죽처럼 생긴 빵이 가장 맛있었다. 은저라와 비슷하게 생겨서 새콤하려나 했더니 오히려 전병에 가까운 담백하고 쫄깃한 맛. 생각하니 또 먹고 싶다. 빵 맛집 모로코.



전날 밤의 카오스를 기억하며 각오를 다지고 나온 바깥.

낮에 보니 색다른 느낌이다. 모랫빛 건물들 사이에서 혼자 새빨간 페즈의 택시들.



메디나로 들어서자마자 규모는 다양하지만 구성은 엇비슷한 가게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어제 휴게소에서 먹었던 맛동산 빵과 똑같은 모양의 작은 빵들이 가게마다 보였다.

어느 과자 가게를 가도 같은 종류의 과자를 판다면 경쟁력이 있을까 싶었는데 굳이 서로 경쟁하는 게 아니라면 상관이 없지 않나 싶기도 하고.



골목으로 들어서니 길 안내를 해 준답시고 호객꾼들이 사방에서 달라붙었다.

도시를 거쳐 갈수록 호객꾼들이 더 본격적으로 달려들고 있다. 피곤하긴 했지만 하나같이 다 웃는 얼굴에 친절해 기분이 나쁘지가 않았다.


다만 걸을 때마다 BGM처럼 깔리는 재팬과 니하오. 옆 나라 이웃들 모로코 열심히 다녔나 봐. 셰프샤우엔은 중국어의 비율이 높더니 여기서는 일본어가 좀더 우세하다. 오하요나 곤니찌와는 모로코인들이 발음하기가 조금 까다로운가? 중국어로는 인사하면서 일본어로는 인사말보다 아리가또가 더 많이 들렸다.


어디선가 숙소에서 준 박하 향이 나길래 멈칫하고 보니 할아버지 한 분이 리어카에서 박하를 다발로 팔고 있었다. 순간 우리가 지금까지 몇 번이나 마셨던 차, 박하를 한번은 씻고 우렸던 물일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정신 건강을 위해 어차피 끓인 물일 테니 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페즈의 명물 중 하나, 파란 벽의 blue gate.

페즈의 색깔을 나타내는 동시에 페즈 메디나로 들어가는 서쪽 입구이기도 하다. 숙소에서 샛길로 들어가 메디나 안에서 정문을 바라 본 우리는 얼결에 초록 빛깔의 문 뒷면부터 보게 되었다.


잠시 정문을 통과해 진짜 파란 벽을 보고 이제 또 다른 페즈의 명물인 가죽 공장을 보러 출발.


메디나의 중앙으로 향할수록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폰 케이스 가게의 벽에 달린 핸드폰들을 보면 지금이 바로 밀레니엄, 아니 1997년이다. 전날 버스에서 사람들이 들고 있는 걸 보고 신기해 했던 폴더폰이 그대로 걸려 있다. 그러고 보니 Orange에서는 갤럭시 A 시리즈만 볼 수 있더라니.

여기서는 아직 구식 핸드폰 기종들이 보편적이라 호객꾼들이 당연히 관광객들이 길을 모를 거라 생각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저에겐 구글맵이 있답니다.



아랍 국가답게 양탄자를 파는 가게도 많았다. 자스민이 나타나면 저 중 하나는 기지개를 쭉 펴고 일어나 먼지를 탈탈 털며 쫄래쫄래 여왕님 뒤를 따라갈 것 같다. 걸려 있는 각양각색의 양탄자들과 주전자를 보면 아라비안 나이트의 배경에 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모로코에서 사는 양탄자야말로 진짜 기념의 의미에 충실한 기념품이지 않을까. 하나쯤 사 가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았지만 한편으론 정말로 사 가는 사람들은 저걸 어떻게 들고 가나 싶었다.



열매를 늘어 놓은 탁자가 자주 보였는데 뭔가 했더니 오일이었다.

옛날 쪽자 할머니가 끌고 다녔던 것 같은 가판대에서 오일을 즉석에서 짜내고 있었다. 그제서야 모로칸 오일의 모로칸이 모로코라는 걸 깨달았다. 어쩐지 자꾸 아르간 오일이 눈에 보이더라니 내가 있는 이 곳이 원산지였다.



염색 공장을 보러 온 곳인데 구경할 거리가 너무 많다.


걸리버가 브롭딩나그에서 튈 때 두고 간 듯한 열쇠도 있고, 어릴 적 본 적 있는 듯한 타악기, 아프리카 느낌이 물씬 나는 가면들. 상인들이 한땀한땀 수제작하던 벨트는 금은방에서 만든 할머니댁 장롱 노리개 같았다.



그리고 역시나 고양이의 나라, 모로코.

페즈의 골목에도 역시 낮잠 자는 냥선생님들이 많으시다. 가게가 많은 이 도시엔 특별히 홀로 위풍당당하게 가게를 지키는 선생님도 계시고.


골목 안으로 내려갈수록 가죽 냄새가 진하게 풍기기 시작했다. MEDINA TANERY라며 친절하게 안내하는 화살표가 벽에 아무렇게나 그려져 있었다.



셰프샤우엔과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관광 도시인데도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훨씬 더 국제적이고 사람도 물건도 더 날 것의 느낌.


사진 찍는 데 한창 빠져 있는 일행을 잠시 내버려 두고 골목을 혼자 따라 걸으며 가게들을 기웃거리고 있자니 일행과 붙어다닐 땐 쳐다만 보던 상인들이 일행과 떨어지자마자 말을 걸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을 때조차 이해하기 힘든 말로 말을 걸며 달라붙길래 결국 구경을 포기하고 최대한 눈을 안 마주치며 다시 위로 무한 직진했다. 새삼 이 나라에 혼자 왔다면 어쩔 뻔 했는지.



드디어 박물관 도착.

이 웅장한 박물관이 가죽공장으로 가는 길의 지표였다. 박물관 옆 샛길로 빠지니 코앞에서부터 안내꾼 한 명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맞는 길로 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쩐지 안내꾼이 한 명밖에 없다 했지.


여기서는 골목과 계단과 테라스가 복잡하게 얽히고 섥혀 있어 구글맵이 큰 소용이 없다. 차라리 팁을 주고 안내꾼을 따라가기로 했다. 조금 찝찝하기는 했지만 가죽공장 풍경의 사진을 보여 주며 따라오라는 그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약 3층 계단을 올라 나간 테라스에서 본 염색 공장.

예상보다 규모가 작기는 했지만 안내꾼을 반신반의한 것치고 썩 괜찮은 모습이었다. 알고 싶지 않았던 가죽 염색 방법의 진실을 본의 아니게 미리 찾아버린 탓에 더러울 것도 진작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발밑을 내려다 보니 더더욱 저기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사진에 담기엔 애매한 풍경이라 주변 테라스 방향을 가늠해 저 테라스로 가 달라 하니 안내꾼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데려다 줬다. 처음보다 훨씬 괜찮은 시야에 만족해하며 사진을 실컷 찍고 팁을 준 후에 안내꾼이 준 민트를 킁킁거리며 테라스를 벗어났다.



“생각보다 가죽 냄새가 안 심해서 괜찮은데?”

“우리 역치가 높은가 봐.”


어깨를 으쓱하며 시내로 돌아가기.

골목에서 낮잠 자는 고양이를 보며 가끔 넋을 놓으면서 왔던 골목을 다시 되돌아 올라갔다. 목표를 완수하고 나니 어쩐지 돌아가는 길이 조금 지겨워졌다. 아침보다 더 많아진 사람들을 아침보다 빠른 걸음으로 헤치며 메디나를 빠져 나왔다. 물론 니하오 인사도 아침보다 더 심해졌다. 이젠 내가 중국인 같아.


복잡한 골목을 드디어 빠져 나오니 날 반겨주는 야ㄱ국.



모두 기가 탈탈 빨려 부리나케 근처 호텔 카페를 찾아 타진과 피자로 배부터 채웠다.

카페에서 우연히 여행 오신 한국인 여성 분도 만나고. 혼자 사색을 즐기는 여유가 멋있는 분이었다.


배도 부르겠다 이제 여기서 좀 재정비할 시간을 가질까 했는데 화장실에 다녀오니 일행이 사라지고 없었다.

뭔가 했더니 실내 흡연이 가능했던 그 카페 안이 그새 너구리 소굴이 되어 내 가방까지 챙겨 밖으로 도망 가 있던 것. 그렇지, 폐가 비명 지르기 전에 도망가야지.


하지만 지금 시간 오후 4시, 페즈는 한창 더울 시간.



그늘을 찾아 어디로든 가야 했기에 구글지도를 뒤져 공원 하나를 찾아냈다.


태양빛이 무척 강렬했긴 했어도 공원을 찾아가는 길은 재밌었다. 관광지가 아닌 진짜 페즈를 목격하는 느낌. 1997년에서 갑자기 2010년으로 올라온 것 같다. 도로 한복판의 분수대에서 아이들이 제법 흥돋게 물놀이를 (감전이 조금 걱정되기는 했지만) 하고 있었고 경찰차는 피자를 배달할 것 같은 색깔이었다.


아침에 흐렸던 하늘은 오후가 되니 해가 뜨거운만큼 파래졌다. 변화무쌍한 게 런던 같다. 빨간 택시, 노란 벽, 파란 하늘이 쿵짝이 잘 맞았다.



대사관처럼 보이는 건물을 지날 때였다.

간혹 가다 무장한 경비원들이 보여 조금 쫄아붙어 걷고 있었는데 하얀 담벼락을 따라 피어 있는 보랏빛 자카란다가 너무 예뻤다. 하늘이 너무 파래서인지 사진기를 이리 저리 바꿔 아무리 찍어도 그 보랏빛이 제대로 담기지 않았다. 드디어 좋아하는 꽃이 생겼다.


작열하는 아프리카의 태양을 맞으며 간 공원은 기대 이상으로 잘 관리된 정원이었다.


피서를 위해 온 현지인들이 많았는데 물론 동양인은 우리뿐.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아이들 몇이 조심스럽게 같이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 물었다.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인 게 시발점이 되어 어느 새 우리와 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이 하나 둘 몰리기 시작했다.

자기 아들이랑 사진 찍으라며 어깨를 툭툭 치는 무례한 사람도 있었고 귀여울만큼 수줍어 하며 고맙다고 인사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찌됐건 이러다간 이 공원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심지어 적당히 자리를 피해 서로의 기념 사진을 찍어주는 틈에도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줄을 서고 있었다.

(우리는 줄을 서라고 한 적도 없는데!)


“이 사진 찍고 바로 튀는 거야.”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몇 번 눈짓을 주고 받다 카메라를 내리자마자 어느 누구와도 눈이 안 마주치도록 정면만 바라보며 공원 밖으로 직진했다.

급조한 공원에서 얼결에 하게 된 연예인 체험은 힘들었다.


여기 저기서 (그 누구도 쫓아내지는 않았지만) 쫓겨나다시피 해서 돌아온 숙소가 어찌나 편안하던지. 화려한 타일 무늬와 벽에 붙은 가죽 공장 그림이 어서 와 하고 반겨주는 듯했다.

오늘의 일정도 무사히 끝냈겠다 더위에 지치고 사람에 지쳐 호텔 로비에 널부러져 있으니 매니저가 체크아웃을 한 상태인데도 박하 차를 내주었다. 너무 행복했다.


매니저가 가져다 준 차를 홀짝이며 멍을 때리던 참이었다.

옆에 앉아 있던 일행이 한 마디를 던졌다.


“그런데 저 그림, 왜 우리가 봤던 거랑 다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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