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화일 Oct 22. 2023

사막에서 별 헤는 밤

08. 메르주가의 붉은 사막

이번 모로코 여행의 하이라이트, 사막으로 갈 시간이 왔다.


같이 가는 사람들 중 대부분이 한국인이라 반가웠다. 런던살이 약 일 년 차, 주위에서 한국어가 들리면 흠칫하게 된다. 숙소에서 베르베르인의 옷을 빌려줬는데 다들 맬 줄을 몰라 한 사람씩 차례대로 매니저의 도움을 받아 두건을 둘렀다. 얼굴과 머리까지 꽁꽁 싸매고 나니 아라비아 도적단이 된 기분. 하지만 사막의 태양으로부터 날 지켜줄 중요한 물건이다.



트럭의 짐칸에 몸을 싣고 돌돌거리는 진동을 느끼며 사막으로 출발.


조각난 치즈같은 건물들이 점점 사라지고 주변엔 모래 말고 아무것도 안 남기 시작했다. 어느 덧 차가 멈춰 서니 가이드 한 명이 낙타들을 데리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줄로 나란히 앉아 있는 낙타들에게 조금 미안해졌는데 잠시 후 가이드가 낙타 타는 시범을 보이는 순간 심장이 쿵쾅거렸다. 낙타 다리가 내 어깨 높이에 있었다. 이 친구들 사실 기린이랑 친척 아닐까.



낙타 고삐를 생명줄처럼 붙잡고 위에 앉으니 몸이 앞으로 크게 기우뚱하며 낙타가 예고 없이 일어났다. 다른 사람 타는 걸 구경할 때는 느릿하게 일어나는 것 같더니 왜 내가 올라타 있으니 청룡열차 출발할 때 같은 걸까. 딱딱한 엉덩이의 불편함이 신경도 안 쓰일 정도로 높았다.


이렇게 불안해서 사막을 제대로 볼 수는 있을까 싶었는데.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나중엔 한 손으로 고삐를 잡고 다른 손으론 사진까지 찍으며 자세까지 바꾸는 여유가 생겼다. 그래도 여전히 높은 곳은 무섭다.



베르베르인 가이드 두 명이 낙타를 한 줄씩 끌고 길잡이해 주었다. 처음 우릴 기다리고 있던 분은 극 내향형, 출발할 때 어디선가 새로 나타난 가이드는 극 외향형이었다.

사막을 걷는 내내 I 가이드가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동안 E 가이드는 쉴새없이 말을 걸었다. 딱히 우리에게 대답을 바라고 하는 말들은 아닌 것 같긴 했지만 꼬박꼬박 대답하다보니 흥미로운 얘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반갑이 때처럼 한국말을 가르쳐 주기도 하고 폰과 낙타를 바꾸자는 농담도 던지기도 했다. 마침 같이 가는 일행 중에 스페인어를 쓰는 외국인 둘이 있었는데 가이드가 영어뿐 아니라 스페인 어도 잘했다.

이 일을 하면서 여러 나라 말을 배웠다니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이 나라에서 돈을 벌기 힘든 현실이 확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가 베르베르인은 사막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며 자부심을 드러내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중간에는 여행객 폰을 모두 쓸어가더니 너희 폰이랑 이제 작별인사를 하라고 엄포를 놨다. 그러더니 이리 저리 혼자 돌아다니며 맨발로 모래 언덕을 타는 묘기까지 보여주고 장난을 쳤다.

움직일 때마다 낙타의 등뼈가 꼬리뼈를 찔러대 아팠는데 가이드 때문에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낙타가 방향을 바꾸거나 내리막을 갈 때마다 수그리~ 꽉 잡아~ 며 한국말로 주의를 주는데 긴장해서 힘이 들어간 상태에서도 자꾸 픽픽 터지는 웃음. 나중에 무사히(?) 돌려받은 폰에는 우리의 사진이 가득했다.


그러는 중에도 눈앞에는 믿기지 않은 풍경이 계속되고 있었다. 가는 길에 사륜 자동차를 몰고 사막을 건너는 다른 여행객들도 만났다. 멀리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데 매드맥스가 절로 생각났다. 사막에서 단 하루만 머무른다는 사실이 벌써부터 아쉬워졌다.



문득 가이드가 뾰로롱 앞으로 달려가나 했더니 어느 새 모래 위에 교태롭게 누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쉬며 사막을 만끽하는 지점이었다.


가이드가 시키는대로 신발과 양말을 모두 벗고 맨발로 모래 위에 서니 새삼 이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다. 푹푹 파묻히는 이 모래 위를 어떻게 날듯이 뛰어 다녔지?


곱고 따뜻한 모래를 밟고 힘겹게 언덕을 올라서니 붉은 사막이 한눈에 들어왔다. 자연의 경이로움이 온몸을 휩쓸고 간다. 할말을 잃고 사방으로 뻗은 모래 언덕을 보고 있자니 나 어쩌다 여기로 온 건가 웃음이 나왔다. 이곳에서 꿈을 말하면 누군가 들어줄 것만 같다.


가이드를 따라 썰매를 타고 모래 장난을 치고 놀다 보니 흐릿하게 보이던 달이 선명해져 갔다. 하늘이 어두워질수록 사막의 모래가 점점 더 붉어졌다. 붉은 사막이라는 메르주가의 사하라의 별명이 와 닿는다. 이런 사막에서 어린 왕자와 만났으니 '나'는 그 기억을 어떻게 안고 사나.

썰매를 타고 내려갔다가 가이드가 완만한 쪽 말고 가파른 언덕을 타고 올라오라고 했다. 나는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는 사람. 기다시피하며 언덕을 타고 올라오는데 가이드가 위에서 계속 응원해줘서 힘든데 너무 웃겼다. 마침내 정상까지 올라오자 넌 이제 뭐든 할 수 있다며 엄지를 치켜 들어줬다.


더 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베이스캠프로 돌아가야 할 시간. 장시간 낙타를 타느라 알이 배긴 허벅지를 부여잡고 낙타에 다시 올랐다. 베이스캠프까지 다시 한참을 가야 했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자마자 미리 묵고 있던 한국인 여행객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일단 마시라며 주는 얼음물이 너무 고마웠다.

사막의 베이스캠프라 하니 캠핑할 때 쓰는 천막 텐트를 예상했는데 물론 텐트가 맞기는 했지만 시설이 너무 좋았다. 일렬로 늘어선 텐트 사이 사이에 전등이 불을 밝히고 있고 해리포터와 불의 잔처럼 텐트 속에서 침대와 샤워실이 나오는 마법.


짐을 풀고 나오니 숙소에서 준비해 준 간식이 야외 테이블에 준비되어 있었다. 메뉴는 역시 박하차와 웨하스.

곧 저녁을 먹어야 해서 조금만 먹자고 했는데 웨하스를 향해 가는 손을 멈출 수가 없다. 해가 완전히 지자 과자를 찾아 집어 먹기도 힘들 정도로 어두워졌다.


잠시 쉬고 난 후에 저녁을 먹으러 가장 큰 텐트로 여행객들이 모두 모였다.


사막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이제야 인사를 나누고 굶주림을 참고 있는데 흥 넘치는 핫산네들이 어깨를 들썩거리며 많이 먹으라며 음식을 내 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음식이 멈추질 않는다. 타진부터 시작해 처음 보는 요리가 계속해서 나왔다. 하나같이 맛있어서 이렇게 또 한국인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를 깨닫고.


밥을 먹고 나오니 잠시 사라졌나 했던 베르베르인들이 모닥불 앞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즐거울 정도로 흥 넘치는 장면.

같이 젬베를 치고 이 지역 사람들에 대해서 궁금한 걸 묻기도 하고. 피곤해서 쉬고 싶은 마음과 여기에 계속 있고 싶은 마음이 엎치락뒤치락했다. 사막에서 하루는 너무 짧다.



별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데 하필 달이 너무 밝은 날이라 새벽녘까지 기다려야 했다. 별이 뜰 때까지 텐트 안과 밖을 왔다갔다 하며 하늘 구경을 하느라 거의 잠들지 못했는데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리 위에 있던 북두칠성이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밑으로 내려오며 거대해졌다. 압도적인 크기의 별자리 앞에서 내가 너무 작은 존재 같았다. 고대인들에게 별자리가 왜 길잡이가 되었는지 왜 별자리가 신들의 모습이라고 하는지, 어릴 적부터 들은 이야기를 이제야 가슴으로 이해하는 순간이었다.



달이 지고 나니 사위가 칠흑같이 어두워지면서 별들이 정말로 쏟아져 내릴 것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새벽 네 시, 멀리서 도시의 불빛이 어렴풋이 빛나고 머리 위에는 은하수가 흘러가고 10분에 한번씩 별똥별이 깜빡이며 지나갔다. 소원 빌기를 놓치면 그냥 10분을 기다리면 되었다. 이 별들만 다시 볼 수 있으면 여기에 일주일을 머물러도 아깝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08화 다 같이 돌자 페즈 두 바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