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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화일 Oct 22. 2023

숙소에 왔는데 숙소가 또 없어요

09. 메르주가에서 마라케시까지 10시간


사막의 아침.


어젯밤 은하수를 구경하던 중에 어디선가 바스락대던 소리의 주인공, 사막 딱정벌레 자국이 군데군데 나 있다. 잠시 눈만 붙였다 나왔는데도 주변이 벌써 밝아 일출을 놓친 줄로만 알았는데 아직 해가 뜨기 전이었다. 일출 시간이 가까워져 가니 곳곳의 캠프에서 사람들이 해를 보기 위해 슬금슬금 나오고 있었다.



올해 놓쳤던 새해 일출을 대신 보는 것 같았다.

대자연 속에 서 있으니 자꾸 어딘가 기도를 올려야 할 것 같다. 인간보다 위대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고. 옛날 사람들이 그래서 종교를 만들었을까 싶다.


쉬움을 안고 트럭 짐칸에 다시 몸을 실었다.

다음에 다시 사막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그 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연박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메르주가를 떠나기 전 핫산네에서 마지막 아침 식사.

홀딱 반했던 모로코 전병 빵은 아쉽게도 없었지만 앞으로 10시간 거리를 가려면 든든히 배를 채워야 했다. 여기서 먹는 크림치즈는 희한하게 더 맛있다.


숙소에서 기념으로 가지라며 조그만 병에 사막 모래를 담아 주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건 다 해 주는구나 싶었다.


숙소 앞에 예약했던 마라케시행 봉고가 도착했다.

역방향 모로코 여행 경로 덕분인지 차를 타는 사람들이 우리밖에 없었다. 맨 뒷칸과 그 앞칸을 차지하고 그대로 사이좋게 뻗어버렸다.


얼마 후에 일어났을 때는 차에 외국인 몇 명이 더 타고 있었다. 서로 통성명을 하고 얘기를 나누느라 바빠 보였는데 나는 아랑곳 않고 다시 눈을 붙였다. 창밖의 풍경을 구경할 새도 없었다. 졸음이 참을 수 없이 몰려 왔다.



아무리 졸려도 휴게소에서는 일어날 수밖에 없다. 점심을 먹어야 하니까.

주섬주섬 일어나니 앞에 탔던 외국인이 좋은 아침이라며 잘 잤냐고 농담을 던졌다. 응, 너도 좋은 아침.


비몽사몽한 채로 일어나 눈앞에 보이는 식당으로 가니 이미 여행객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정신 없는 중에도 방금 자다 깼으니 체하면 안된다며 소화가 잘 되는 익힌 메뉴를 골랐다. 메뉴가 거의 정해져 있는 전형적인 휴게소 식당이라 음식 맛에 전혀 기대가 없었는데 생각보다 맛있어서 먹는 중에 저절로 정신이 들었다.



거금을 들인 토블론 아이스크림까지 후식으로 입에 물고 살피니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온다.

풀이라곤 메마른 선인장밖에 보이지 않던 메르주가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 새삼스럽게 건조한 기후가 피부로 느껴졌다. 토블론 아이스크림도 내 피부도 쫙쫙 갈라지고 있다.


정신이 멀쩡한 상태로 다시 봉고에 오르니 느낌이 사뭇 달랐다. 내가 지금 놀이기구를 타고 있는건지 자동차를 타고 있는건지. 이렇게 흔들리는 차 안에서 용케도 꿀잠을 잤네.


게다가 창문 바깥으로 내다 본 아래는 바로 깎아지르는 절벽이었다. 우리 차의 운전 기사는 절벽을 끼고 내달리며 과속을 하는 동시에 옆 사람과 떠드느라 앞도 제대로 보지 않고 있었다.

이걸 몰라서 잘 수가 있었구나.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라더니. 그러면서도 달리는 길 중간 중간에 피어 있는 유채꽃들은 왜 그렇게 예쁜지.

차라리 속 편하게 다시 잠들기로 마음먹었다.


안마 기능이 탑재된 것처럼 온몸을 두드리는 차에서 뻗어 있다 보면 10시간도 금방이다.

기사 빼고 우리만 아슬아슬했던 순간들을 지나 도착한 마라케시. 도시에 진입하니 분위기가 삽시간에 달라졌다. 페즈는 고작 아이들 장난이었다는 듯 도시에 사람들이 넘쳤고 오토바이와 자동차들은 도로 위를 멋대로 쏘다녔다.


같이 탔던 여행객들이 하나 둘씩 내리기 시작하고 우리도 시내 근처의 어느 한 골목길에서 운전의 대가 기사와 작별을 했다. 살려줘서 고마워.

마라케시에서는 Riad라는 전통 숙소에서 머물기로 했다.


캐리어를 질질 끌며 몇 분 걸었을까 숙소가 있어야 할 자리에 숙소가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람?


숙소 이름을 다시 검색하고 예약 사이트를 확인하고.


알고 보니 예약 사이트에 적혀 있는 숙소 주소와 실제 숙소 주소가 달랐다. 사이트에는 숙소의 사무실 주소가 적혀 있던 것. 원래 숙소의 위치는 안타깝게도 하필 아까 전 봉고에서 외국인들이 우르르 내린 바로 앞이었다. 이마를 빡빡 치며 다시 숙소를 찾아가야 하는 상황.

숙소가 걸어가기에는 조금 멀기도 했거니와 이미 모로코에서 택시를 몇 번이나 타 봤겠다, 안일한 마음으로 골목을 벗어나 눈에 보이는 택시를 무작정 잡았다.


페즈의 기억을 되새김질하며 숙소 위치를 보여주고 관광객 요금이니까 이 정도면 되겠지 하고 가격을 흥정하려는데 택시 기사가 무려 예상한 가격의 30배를 불렀다. 이건 또 무슨 일이람?

어처구니가 없어 그건 너무하지 않냐고 고개를 저었더니 택시 기사가 그럼 타지 말든가 하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하하. 선생님께도 호갱님이 우리뿐이 아닐테니 우리한테도 택시가 선생님뿐이겠어요. 협상이 결렬되었다.

골목으로 나가 다른 택시를 잡으려는데 근처에 있던 기사가 우리를 불러 원래 생각했던 가격에 태워다 주기로 했다. 여행객들이 주로 마라케시에서 모로코 여정을 처음 시작하다 보니 일단 가격을 지르고 보는 게 아닌가 싶다.



우여곡절 끝에 체크인 성공.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또 웰컴 티를 받았다. 이제는 당연해진 모로칸 민트. 이전에 맡아봤던 박하보다 향이 더 진하고 맵다. 내 입엔 잘 맞는 편이었지만 연하게 우린 게 더 맛있었다.


슬슬 체력에 한계가 오고 있었지만 잠깐 쉬었다 모로코에서의 마지막 밤을 즐기기 위해 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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