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자가 되는 낯선 일

또 다른 나를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

by Song 블루오리온

거울 앞에서 셀카 찍다가

거울 앞에서 셀카를 찍고 있었다.

전자책 프로필용이었다. 요즘 콘텐츠 만드는 사람들은 다들 이런 거 하지 않나. 각도 이리저리 바꿔보고, 표정도 여러 개 시도해보고.

그런데 찍다 보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 누구지?'


25년 회사 경영하고 성공적으로 엑시트한 사람. 웹 컨설턴트. 멘토. 4,300개 프로젝트 완수한 사람.

근데 지금은? 유튜브 썸네일 찍느라 표정 연습하는 중년 남자.

뭔가 안 맞는 그림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나를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셀카 100장쯤 찍었을 때 깨달았다.

(참고로 100장은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카메라롤에 똑같은 각도의 사진이 67장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부분에서 어떤 '역할'을 연기해왔다는 걸.

회사 대표라는 역할. 프로젝트 기획자라는 역할. 누군가의 멘토라는 역할. 이 역할들이 나를 정의하는 줄 알았는데, 그건 내가 하던 '일'이었을 뿐이다.


그럼 진짜 나는?


요즘 사람들한테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새로운 도전 하시는 거 멋지네요."

솔직히 말하면, 나는 '도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없다. 그냥... 뭔가 새로운 영역에서 헤매는 중이다.

브런치도 써보고, 유튜브도 해보고, AI 배우고, 노코드 앱도 만들어보고. 초보자가 된다는 게 이렇게 낯선 일인 줄 몰랐다. 어색하고 서툴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게 나쁘지 않다는 거다.

오히려 초보자로 돌아가니까 보이는 게 있었다.

예전에 채용했던 직원들이 생각났다.

처음엔 다들 자신이 뭘 잘하는지 몰랐다.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근데 작은 성공을 경험하고, 누군가 가능성을 믿어주면, 놀라운 성장을 보였다.

그때 나는 알았다.


사람은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는 순간 빛난다.


자라 광고판에서 사진을 구글 에이전트가 편집


그런데 웃긴 건, 직원들 강점 찾아주느라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정작 내 강점은 지금에야 찾고 있다는 거다.

나는 원래 상상력이 풍부했다. 20대 대학생때는 청년부 모임 후,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면서 즉흥적으로 작곡과 작사를 하기도 했다. 스스로 마음에 들면 신나서 공중전화로 달려가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들려주었다. 나는 사람들 성장시키는 게 좋았다. 배우고 정리하고 나누는 게 즐거웠다.


근데 '회사 대표'라는 프레임 안에 갇혀서 그걸 못 봤다.

나와 잘 맞는 역할이 나를 가리고 있었던 거다.

어제 아들이 물었다.

"아빠는 이제 뭐 하고 싶어요?"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음... 유튜버? 아니면 작가? 코치? 아니면 그냥... 나 자신?"

아들이 웃으며 말했다.


"그냥 아빠가 하고 싶은 거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맞다.

인생이란 끊임없이 자신을 재정의하는 여정이다.

회사 대표였던 나. 지금 콘텐츠 만드는 나. 또한 비즈니스 코치가 될 나. 전부 다 나다.



근데 그 어떤 것도 나의 전부가 아니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말에 공감하고, 과거 성공은 그저 한 챕터일 뿐이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완성'되는 게 아니라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셀카 67장은 어떻게 됐냐고?

다 지웠다.

대신 아들한테 부탁해서 자연스러운 사진 한 장 건졌다. 훨씬 낫더라.

역시 사람은 자기 객관화가 제일 어렵다.




P.S.

혹시 당신도 지금 어떤 '역할'을 연기하고 있진 않나요?

회사에서의 나. 집에서의 나. SNS에서의 나.

그 역할들 잠시 내려놓는다면, 내면의 당신은 어떤 모습인가요?

무섭지 않습니다. 낯설 뿐입니다.


그럴 때는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요

"나는 운이 좋다. 이런 낯선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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