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내 아이 인터뷰'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

'나도 아이 속내 좀 들여다보고 싶다'는 엄마들에게

by 어나더씽킹

아이 생각이 자라는 것을 기록해두고 싶어서 '내 아이 인터뷰'를 시작했다. 키가 자라고 성적이 올라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는 아이가 하루하루 내면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기록해두는 것이 내게는 더 큰 의미가 있었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성장, 생각의 성장은 이런 식으로 남겨두지 않으면 평생토록 기억하지 못할 수 있으니까.


'내 아이 인터뷰 시리즈'가 세 번째까지 발행된 후, 지인들로부터 많은 피드백을 받았다.

"와, 아이가 나이보다 정말 성숙한 것 같네요."

"아이와 그런 대화가 가능하다니 부러워요."

"다음엔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요."

대체로는 이런 류의 칭찬과 격려의 내용들.

그런데 피드백을 주는 이가 아이를 둔 엄마인 경우에는 '칭찬' 다음에 질문이 따라왔다.

"저도 우리 애를 좀 인터뷰해보고 싶은데 '내 아이 인터뷰'는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가요?"


"우리 아이 인터뷰 좀 대신해줄 수 있을까요?"

대놓고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은 없었지만 나는 때로 행간에서 그 마음을 읽기도 했다. 아이의 친한 친구이자 서로의 집 사정을 훤히 알 정도로 가까이 지내는 지인이 아이 인터뷰 글을 본 후 이렇게 말했다.

"인터뷰 읽다 보니까 우리 애가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너무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런데 인터뷰라는 게 엄두가 안 나요. 아이가 내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해줄까, 그것도 걱정되고 또 말하다가 제가 맘에 안 들면 화낼 것 같아요. 언니는 직업상 인터뷰를 많이 해보셔서 잘하실 테지만요."

마지막 문장에서 생각했다. '으응? 혹시 인터뷰를 좀 해줄 수 있느냐는 표현을 에둘러하는 건가?' 잠깐 고민을 하긴 했다. 워낙 친하기도 하고 나 역시 우리 아이와 여러 면에서 공통점도 공감대도 많은 그 집 아이는 또 어떤 다른 내면의 생각들을 갖고 있을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 엄마 말대로 나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서 마주 앉아 대화하는 시추에이션에 익숙하기도 하고.


내 아이를 인터뷰한다는 건 전혀 다른 카테고리의 이야기

머릿속으로 가만히 어떤 질문을 하면 좋을까, 대화를 어떻게 끌어가면 좋을까 상황을 그려봤다. 그런데 한두 질문에서 진도가 나가지를 않았다.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한 그 집 아이는 내가 잘 아는 게 아니었던 거였다. 학교 생활, 친구 관계, 꿈,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요즘의 관심사, 고민과 걱정 등 피상적인 질문을 할 수는 있겠으나 그게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아이의 대답이 전혀 예상되지 않는 상황에서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깊은 질문들은 도저히 할 수가 없는 것을.

다시 생각해봤다. 과연 나는 직업상 인터뷰를 많이 해봤기 때문에 내 아이 인터뷰를 잘할 수 있는 것일까. 대답은 그렇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였다. 아이의 일상을 관찰하면서 평소의 말과 행동을 기억해두면서 궁금증이 차오르는 순간 '이 때다' 하고 아이를 인터뷰이 자리에 앉힐 생각을 한 건, 분명 인터뷰 자체가 너무나 익숙한 내 경험 덕분일 수는 있다. 그러나 아이에게 수많은 질문을 이어갈 수 있는 건 인터뷰를 잘하고 못하고 많이 해봤고 해보지 않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온전히 '내 아이와 나의 관계'에 답이 있었다. 나보다 더 많은 인터뷰 경험이 있는 어떤 훌륭한 인터뷰어도 정작 자신의 아이는 제대로 인터뷰하지 못할 수도 있고, 인터뷰의 '이응'도 모르는 엄마도 그 누구보다 훌륭한 인터뷰를 해낼 수도 있다는 얘기. 내 아이를 인터뷰한다는 건 직업적 문제를 떠나 전혀 다른 카테고리의 이야기인 것이다.

아이와 평소에 어떤 대화를 얼마나 했나요?

앞서 말한, 내 아이 인터뷰를 가능케 하는 '나와 아이의 관계'의 팔 할은 대화에 있다. 어떤 대화를 하느냐와 얼마나 대화를 하느냐, 둘 다를 포함한 문제다. '어떤' 대화인지는 사실 난이도가 달라지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먼저 대화 시간의 문제. 아들이지만 재잘재잘 말이 많은 우리 집 아이는 여건만 되면 이런저런 말들을 쏟아놓는다. 가장 밀도 있는 대화의 시간은 학교에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15분, 학교에서 아이를 픽업해 집까지 오는 차 안에서 15분, 그리고 잠자기 전이다. 물리적 시간으로만 보면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고 집에 돌아온 후에도 과제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친구들과 온라인으로 수다를 떨거나 하는 등 자기만의 시간이 많다. 심지어 밥을 먹을 때 책을 읽는 좋지 않은 습관을 갖고 있어서 남들처럼 밥상머리 대화도 잘 안 되는 편이다. 아마도 커갈수록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평소에 아이와 대화 시간이 적다고 느끼지 않는 이유는 학교를 오가는 차 안에서 뿐만 아니라 틈틈이 하고 싶은 말이 생길 때마다 주저 없이 내게 달려와서 '말'들을 풀어놓곤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책을 읽다가도 관련해서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책을 접고 '나를 따라다니며' 이야기하고, 목욕을 하다가도 뭔가 할 말이 생각나면 나를 욕실로 불러 재잘거리곤 한다.

그렇게 하고도 부족한 대화는 잠자리에서 이뤄진다. 잠들기 전 어떤 날은 10분, 어떤 날을 1시간이 넘도록 이어지는 대화를 하는 동안 우리는 대부분 깔깔거리다가 '이제 자야 한다'며 아쉽게 마무리될 때가 많다.

여기서 '어떤' 대화를 하는지를 이야기할 차례다. 사실 아이와 나의 대화 주제는 말도 안 되는 시답잖은 이야기부터 학교 이야기, 게임 이야기, 음악 이야기 심지어 요즘 핫한 글로벌 뉴스까지 그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 '아이를 하루에 세 번은 웃겨주자'는 신념을 가진 나는 이를 실천하기 위해 평소 재밌는 이야기를 생각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편인데, 이런 이야기들은 학교에 가는 차 안과 잠들기 전에 주로 이뤄진다. 하루를 즐겁게 시작하고 마무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랄까. 이런 식이다.


<오늘 아침 차 안에서의 대화>

"엄마, 내가 어젯밤에 엄마가 좋아하는 그 모자를 쓰고 갔다가 빌딩 위에서 떨어뜨리는 꿈을 꿨어."

"아 그래? 걱정 마! 엄마가 그 빌딩 아래를 지나가고 있었는데 그 모자가 바로 내 머리 위에 떨어졌거든!"

"에이, 말도 안 돼."


<언젠가 잠자리에서의 대화>

"엄마 읽고 있는 책 뭐야?"

"어 이거 그림에 대한 책인데 지금 내가 읽고 있는 부분이 프랑스혁명에 관한 부분이거든. 프랑스혁명이... 자크 루이 다비드란 화가는 당시 그림을 통해서... 나폴레옹이... 프랑스란 나라는 역사적으로... (여기서 화제 전환) 근데 너 파리 지하철에서 볼 일 보던 아저씨 기억나지? 파리는 사실 엄청 지저분한 도시야. 예전에는 오줌이랑 똥을 다 길에다 버렸대. 향수가 파리에서 발명됐는데 그게 똥 냄새 오줌 냄새 없애려고 그런 거라잖아."

"진짜야?"


그림 얘기, 역사 이야기도 재밌었지만 똥이며 오줌, 방귀 이야기 나오면 아직도 깔깔대는 아이를 위한 이야기의 마무리 서비스라고나 할까. 말똥말똥 신기하게 듣던 아이는 그날 밤 이야기 좀 더 하자고 졸라대다가 결국 행복하게 웃으며 잠이 들었다.


이렇게 아이와의 대화 주제가 극과 극을 오갈 수 있는 이유는 '너는 몰라도 돼'라는 말을 하지 않는 우리 집 분위기 덕이기도 하다. 아이가 중심에 있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엄마 아빠의 대화에 아이가 불쑥 끼어들어 그게 뭐냐고 질문할 때도 최대한 아이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주고 의견을 들어보기도 한다. 자연스레 아이는 정치, 시사, 경제 등 어른들의 이슈에도 관심이 많고 때로 자신의 의견을 보태기도 한다.


일상 관찰자로서 모든 것을 궁금해하는 부모의 호기심

그러나 평소에 이렇게 다양한 대화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장 아이 내면을 들여다보는 인터뷰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어쩌면 진짜 핵심은 내 아이의 일상을 관찰하고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을 궁금해하는 것에 달려있다. 사소하게 지나가는 한 마디, 책을 읽으면서 보이는 반응들, 친구들과 하는 대화, 요즘 빠져있는 음악이나 콘텐츠... 어느 것 하나 내 아이의 내면과 동 떨어져 있는 건 없다. 그 안에서 엄마는, 부모는 '아 왜 저런 말을 할까?' '그 친구와는 요즘 안 친한가 보네'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이 바뀌었군' '저 책을 세 번째 읽는데도 왜 깔깔대고 좋아할까?' 하는 질문이 마음속에 꽉 들어차야 한다.


아이들은 논리 정연하게 대답하지 않는다

아이 인터뷰 글을 본 남편은 몇 번이나 내게 물었다. "정말 저렇게 대답했단 말이야? 진짜로?"

내 아이 내면 성장을 기록으로 남긴다면서 답변을 만들어서 쓰면 그게 어디 기록인가. 아이의 대답은 100% 아이의 것이지만, 그러나 그렇게 대답을 '잘' 하게 만들어가는 것은 분명 인터뷰어에게 있다. 아무리 부모와의 대화가 익숙한 아이라고 해도 막상 인터뷰이로 앞에 앉혀두고 질문할 때 술술술 말하는 경우는 없다. 보통은 단답형으로 대답하기가 일쑤. 그럴 때 포기하지 말고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이어야 한다.

"오늘 학교에서 어땠어?"라고 물었을 때 "별일 없었어"라고 대답한다면 "아, 그렇구나"로 끝나지 말고 선생님으로 친구로, 수업으로, 쉬는 시간으로, 점심 메뉴로, 날씨로 이어가야 하는 것. "오늘 음악 있었잖아. 네가 제일 좋아하는 수업인데 오늘도 실로폰 연주한 거야?" "점심 메뉴는 오늘도 별로였어?" "쉬는 시간엔 누구랑 놀았어? 축구했어?"

때론 아이의 대답에서 힌트를 얻어 물고 늘어져야 하는 경우도 있다. "독일을 떠나는 게 왜 슬퍼?"라는 질문에 "친구들이 많잖아"라고 답하면 친구들 이야기로 넘어가서 어떤 친구와 어떤 관계를 쌓았고 어떤 아쉬움이 있고 어떤 기억들이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지까지를 대답 안에서 새로운 질문들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내 아이 인터뷰는 나만 가능하다는 결론

인터뷰어 중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하나는 상대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훌륭한 인터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류, 또 하나는 오히려 너무 많이 알면 질문할 게 없다고 적당히 몰라야 질문할 거리가 많아진다고 생각하는 부류가 그것. 나는 100퍼센트 전자 쪽이다.

상대를 몰라서 하는 질문들은 질문 수가 많을지는 몰라도 깊이를 갖추기란 어렵다. 내 아이를 인터뷰할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일상을 잘 알고 있어야만 그 안에서 호기심도 생기고 진짜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는 깊이 있는 질문들도 생겨난다. 아이의 답변마다 애정이 듬뿍 담긴 피드백을 해주는 것도 아이가 더 잘 대답할 수 있도록 하는 촉매제가 된다는 점에서도 내 아이 인터뷰이는 남이 대신해줄 수 없는 영역이다.


많은 부모들이 '내 아이 인터뷰'를 시도해볼 수 있기를, 그리하여 내 아이의 내면이 성장하고 있는 과정을 마주하는 기쁨을 누려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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