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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외계인 Oct 22. 2023

걸어. 뛰어. 일단 움직여!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면 발을 움직여 생각이 날 따라오지 못하도록 하자.


불안하거나 우울할 때는 유산소



영상에서였나 방송에서였나, 어쨌든 의사들이 그냥 하는 말은 없다. 도움이 되라고 하는 소리다. 더 정확히는 도움이 될 것을 알고 하는 소리겠지. 누구나 유산소가 몸에 좋다는 사실은 익히 안다. 어떤 기제로 그렇게 되는 것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좋다는 사실만은 안다. 실천이 어려울 뿐. 그도 그럴게 바빠 죽겠는데 달리거나 걷고 있자니 그 시간에 일을 마치고 이불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클 테니까.


아무튼 나는 유산소가 뇌에 좋다니 당연히 뛰어야지,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나는 뇌에 미친 사람이니까 그럴 만하다. 실천하기 위해 '런데이'라는 애플리케이션도 깔고 일주일에 세 번은 뜀박질을 했었다. 피치 못해서 뛰지 못하는 날을 제외한다면 그건 꽤 오래 이어져온 나만의 건강 루틴이었지. 그걸 못한 지 삼주가 넘어가서일까? 머릿속에 괜스레 생각이 많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태블릿을 거치대에 고정시키고 멍하니 누워서 불안에 대해 설명하는 영상을 보고 있자니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졌다. 안개 낀 듯한 머릿속과 우왕좌왕하는 이 마음. 심호흡을 하고 명상을 해봤지만 달라지는 점은 딱히 없었다. 명상이 잘 들어먹는 기분이 있고 아닌 기분이 있나 보다. 하여간 까다롭기는. 나랑 같이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어쩌겠냐. 최고의 친구는 자기 자신인 것을. 나랑 잘 지내주는 수밖에 없다.


네... 뭐... 기운도 없고 썩 내키지는 않지만 당신이 그렇게 원하신다면 변화를 찾아 드리겠습니다.


종종 입 밖으로 말해보면 더 웃기니까 이렇게 한 번쯤 스스로의 뇌와 대화해주었으면 한다. 하지만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만이다. 아무튼, 까다로운 나 자신의 성미를 맞춰주기 위해 다음날 런데이를 다시 켰다. 내 실력이 얼마나 뒷걸음질 쳤을지는 3주가 넘어가는 공백으로 익히 알고 있다. 최근에는 지하철 계단 걸어 오르기도 벅찼다. 성실히 운동을 해두었지만 이를 멈췄을 때 돌아가긴 한순간인가 보다.


그래도 괜찮다! 다시 하면 되니까.


정적인 상태에서 심호흡을 하는 것은 물론 도움이 된다. 명상도 그렇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끝을 스스로의 힘으로는 내기가 어렵다면 몸을 움직이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 몸을 움직인다, 뛰지 않고 걷는 것만으로도 뇌에서는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 우리 몸을 움직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해져서 자동화가 되었지만, 중심을 잡고 이동 - 또 이동한다는 것은 어느 하나만 삐끗해도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집중을 요하는 작업이다. 아기가 처음 걸었을 때 괜히 기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린 그 과정을 거쳐 오랜 시간 살아왔으니 이제는 그게 당연해졌을 뿐이다.


뇌에서는 우리 몸이 두 발로 길바닥을 터벅터벅 내디뎌서 앞으로 이동하도록 하는 데에 신경을 집중해, 그만큼 생각할 수 있는 자원이 줄어들게 된다. 힘이 들고 땀이 나면 더 좋다. 생각은 그런 식으로 전환할 수 있다. 걷고 뛰는 지금의 나 자신에게 몰입한다. 발 밑의 땅이 거칠거나 평평함을 느낀다. 앞으로 나아가는 나 자신을 느낀다. 내 사고로는 지금 이 상황에서 옴짝달싹 못할 만큼 통제감을 잃었을지 몰라도, 우리 몸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도 나는 움직이고, 그래도 내 삶은 살아지고, 아무리 끔찍한 상황을 겪고 있어도 길바닥을 걸어 다닐 수 있다.


ⓒunsplash


SOLUTION: 걸어. 뛰어. 일단 움직여!


며칠 전까지는 더워 상상도 못 했을 테지만 긴팔을 입고 산책로에 들어섰다. 런데이를 켜서 1분 30초를 다섯 번 달리는 코스를 선택한다. 분명 5분대까지는 진입했던 것 같은데, 자신이 없으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으로 한다. 주기적으로 뛰다 보면 분명 다시 늘겠지. 이미 익숙한 안내음성이 흐르고 앞만 보기 시작했다.


5분 간 걸으며 바람을 느꼈다. 음악만 켜놓고 세상이 변하지 않았음을 느낀다. 격동의 시간을 최근 보냈던 것 같은데 그건 내 내면이 그랬을 뿐이지, 산책로는 이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항상 나와서 달리던 그 길처럼, 계절만이 변했을 뿐이었다. 축구하는 함성 소리가 그대로 들려온다. 같은 사람들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항상 있었던 일이다. 뭘 그렇게 어렵고 힘들어했던 거지? 내가 사는 세상은 그대로인데. 숨통이 트일 때쯤 달리라는 안내음이 재생된다. 달린다. 땅을 밟고 자세를 유지하며 호흡에만 집중한다. 나 살아있구나.


후.


하.


앞으로만 나아간다. 뒤로는 갈 수 없다. 산책로는 일방통행이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나도 그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앞으로. 또 앞으로.


오!!!


난 앞으로 잘만 가는 녀석이구나! 잘 달린다! 빠른데? 나 짱 빠른데? 어 진짜 빠르다. 이런 너무 흥분했다. 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 빠르게 달린 탓에 더럽게 힘이 들었다. 역시 오랜만에 뛰어서 감을 잃었군. 하지만 곧 익숙한 페이스를 되찾는다. 천천히, 그렇지만 확실히 달린다.




평가:

오래간만에 내달린 탓에 다음날 다리가 엄청 아팠다! 짜잔~

그렇지만 달렸다. 뇌 안이 고요하다. 또 이따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순간만큼은 나 유산소 했으니까 (= 대충 할 만큼 했으니) 내 뇌는 행복하겠지? 그럼 됐다. 오늘의 생각파업도 성공이다. 이쯤 되면 실천서라고 할 만하겠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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