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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외계인 Oct 22. 2023

비가 왔다. 비 온 뒤 맑음!

오늘은 나 대신 울어주는 하늘의 타이밍이 매우 좋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나는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나는 왜 항상 이런 고민이 끊이지 않을까?

언젠간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아도 좋은 그런 날이 올까?


생각해 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사실 오버띵킹은 독이다. 알고 있다. 너무 장기적인 일은 생각하면 머리만 아플 뿐이다. 불안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전환이 필요한데, 너무 불안한 나머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에는 무슨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기 마련이다.



많은 것을 쌓아 왔다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나는 항상 부족하다.


생각파업에 빠르게 실패했다.


오늘도 내 머릿속은 그저 복잡하고, 오로지 새벽만이 고요했다. 하늘이 저렇게 고요한데, 간혹 들리는 고양이 소리나 풀벌레 소리, 새소리 외에는 매미소리조차 언젠가부터 들리지 않는데. 내가 뭘 그렇게 엄청난 존재라고 내 머릿속만 이렇게 가득이다.


어제 애정하는 친구가 물고기 사진을 보내주었다. 어디 갇혀있는 그런 물고기 말고, 나름 강에서 자유롭게 나다니는 큰 잉어였다. 주둥이 부분이 참 두꺼웠다. 표정은... 아무래도 내가 인간인지라, 인간 얼굴 위주로 인식해서인지 그저 멍해 보이고 귀여웠다.


쟨 아무 생각도 안 할까?
나처럼 굳이 파업하지 않아도, 그저 눈앞의 물을 노닐 뿐일까?


문득 궁금했다.


기를 쓰고 노력해서 겨우 비워낸 머리이지만 가슴속이 묵직한 게 무의식은 요동치고 있는 모양이다. 이런 나와는 다르게 잉어는 참 평화로워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면 그 시점이 언제든 간에 나는 턱없이 부족했다. 새로운 일을 만나면 난 도망치고 싶고, 아무리 기를 쓰고 도전해도 나가떨어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렇다고 도망치면 그것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우선 버티는 거다.


열심히 살았다고 산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할 줄 아는 것은 열심히 책 읽기 뿐이 없었나 보다. 아니. 정말 그랬나? 그런 객관적인 사실 같은 건 이제 와서 아무래도 좋다.



생각파업은 어쩌면 우스울 수 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면 어쩔 건데?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주어진 세상에 기를 쓰고 비집고 들어가야지.

너만 파업한다고 달라지는 점은 없어.


아니, 그런 세상이 아니었다면 파업을 선언할 필요가 없다.

문득 주어진 세상이 그렇게 차갑고 복잡하다면 적응해야겠지, 물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나와 평생을 함께 해야 한다.

문득 주어진 세상 안에서 내가 기능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내가 언제 괜찮은데? 무엇은 절대 싫은데? 왜 그러는 건데? 나 잘 지내고 있나?


항상 그렇다고 믿었다.


초긍정사고! 대충 그런 식이었다. 마음 챙김이라. 이론으로는 배웠지만 적응해 본 기억은 많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서 명상을 하려고 시도해 본 적 있다. 그러다 시간이 없어서 이동하는 시간에 하기로 미루고, 곧 사라졌다.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은 없이 과제가 끝나면 대충 잠에 빠졌다. 마감 기한이 가까워지는 일들을 보며 머리가 아팠지만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그런가 보다 싶었다. 취업을 준비하며 내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을 덜컥 깨닫고 괴로웠다.


그렇지만 사실 돌아보면 참 많은 일을 하고, 그때도 지금도 많은 생각을 하면서 아등바등 살았는데 인정해주지 못하다니 그게 우스운 일인 거다.


모두 다른 삶을 산다.

모두 제각기의 경험을 하며,

주어진 삶 안에서의 가혹한 일들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극복하고 적응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 결과가 현재라면 어떻게 잘 살아왔다고 스스로를 다독여줄 수 있어야 하는 건데. 나는 언제부턴가 그런 과정을 쏙 빠뜨리고도 잘만 살아왔다.


그런데 환경이 바뀌면 그 과정이 빠진 삶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인가 보다!






SOLUTION: 으악! 감당 안 되는 감정을 배출하자!


30년쯤 뒤에 돌아보면 웃길 일이겠지. 인생은 멀리서 봐야 가장 재밌는 것일 테니.


얼마 전, 별 이유도 없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날 마감 업무가 끝난 어두운 카페 안에서, 불빛이라고는 노트북의 화면뿐이 없는 그 적막 속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나는 엉엉 울었다.


일부러 소리 내서, 최선을 다해서 웃기게 울었다. 녹음도 했다. 나중에 들으면 웃길 테니까. 만능 파란색 고양이 로봇인 도라에몽을 찾는 진구처럼, 아기처럼 엉엉 울었다.


뿌엥! 도와주라!!!


그날 이후에도 슬프면 그냥 울었다. 감당이 안 되는 마음을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지금 당장은 해결이 안 되니 뇌리에 묵직하게 남았다. 그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무시하고 남겨놓자니 괴로웠다. 그러니까 그냥 울었다. 소리 내서, 엉엉, 그날도 버스가 오기 전까지 울다 보니까 놀랍게도 후련해졌다.


극단적인 감정은 영원히 유지되지 않는다. 슬픔이든 행복이든 마찬가지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원점으로 회귀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원점은 행복 쪽으로 조금 치우쳐져 있다. 적당히 괜찮고 좋은 상태가 평균인 것이다.


그 평균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엉엉 울고 깨달았다. 마음이 종종 불안해도 가끔 평온할 때마다 평균이었던 내 상태를 기억하게 된다. 좋은 거다.


파업을 선언했다. 오늘 나의 파업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고민과 불안에 토 달지 않고 울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우스운 내 모습이 뇌리에 남아 효과적이었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더라면 더 재밌었을 텐데 아쉬운 일이다.


내가 아무리 엉엉 울어도, 창 밖으로 우다다다 쏟아지는 빗소리가 지금 나의 이 나약한 순간이 문 밖으로는 절대 새나가지 않을 것임을 잘 알려주었다. 그래서 울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날 비가 오지 않았으면 울 용기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싫어하는 나의 약한 부분마저도 받아들인다는 선언과도 같다. 그리고 나 스스로 감싸주겠다는 포옹이기도 하다.


집으로 가는 길에도 내내 비가 쏟아졌다. 발이 젖든 가면서 눈물이 줄줄 새어 나오든 아무런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비가 어쩔 때는 참 괜찮은 녀석임을 새삼 깨달았다.



평가: 

비 온 뒤 맑음.

나름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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