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름 Oct 31. 2024

상선약수(上善若水)

가장 긴 여행,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가.

 노자의 도덕경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등장한다.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으로 오늘의 주제와 관련이 깊다.


샘 천(泉)은 흰 백(白) 자에 물 수(水)를 더한 글자로
하얀 물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오염되지 않고 깨끗하다는 뜻인데 이 물은 샘에서 뽀글뽀글 조금씩 조금씩, 아주 높은 산 꼭대기에서부터 생겨난다. 생수 이름에도 자주 등장하는 바로 그 천. 그 깨끗한 물은 아래로 아래로 계속 흘러 바다에 이른다. 


물은 절대 본인의 모습을 고집하지 않는다. 동그란 곳에 담겨 있으면 동그란 모양으로 변하고 네모난 곳에 담겨 있으면 네모난 모양으로 변하여 자신을 낮춘다. 또한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계속해서 흘러들어 간다. 부족하면 기다렸다 가득 채워졌을 때 또다시 흐르며 높은 곳은 조금만 채우고 낮은 곳은 많은 물을 채워 수평을 유지시켜 준다. 


그 과정이 너무 우리네 인생과 닮았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물은 고집부리지 말라고 말한다. 내가 동그라니 너도 동그랗게 되라고 말하지 않고, 내가 네모나니 너도 네모나게 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상대에게 맞춰 스스로를 변화시킬 뿐이다. 사람은 항상 높은 곳, 더 높은 곳을 향해 내달리려고만 하는데, 물은 그저 낮은 곳으로 흐르며 본인이 낮아짐으로써 상대를 높이는 것이 자신을 더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게 물은 우리에게 앞만 보고 달리면 만족도 할 줄 모르며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알 길이 없으므로 잠시 쉬면서 만족도 경험하고 진정으로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고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상대방을 띄워준다. 


만족이라는 글자에 발이 있는 이유,
가다가 발을 멈춰 서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이
만족이기 때문이다.



 샘(泉)이 솟아 가득 차면 아래로 흐른다
이산과 저산 사이 골짜기(谷) 돌을 빗겨 흘러
냇물(川)이 되고
 그 물은 모여 강(河)이 된다
강과 강이 만나 큰 강(江)을 이루고
엄마의 품과도 같은 큰 바다(海)에 이르렀다가
그 큰 바다는 모여 마침내 대양(大洋)을 이룬다.



물은 이렇게 세상 어느 것보다 긴 길을 여행하는데
그래서 길 영(永) 자에 물이 있는 이유이다.
물(水) 위의 작은 점,
샘(泉)에서 시작해 대양(洋)에 이르는 길고 긴 여정.




또한 긴 것은 반드시 구부러지게 되어 있다. 물 수(水) 위에 점은 그 긴 여정이 곧지 않음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우리네 긴 인생 또한 순탄하지 않고 굴곡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항상 좋은 일만 계속되지도 않고 항상 안 좋은 일만 계속되지도 않는다. 속도가 빠를 때도 있고 정체가 될 때도 있다. 난관을 만나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고 바람의 도움으로 내 역량보다 더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한다.


인생은 이렇듯 물과 같다. 우리는 모두 큰 대양에서 만날 것이다. 누가 먼저 빨리 가느냐가 중요하지 않고 어떤 모습으로 가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고집부리지 않고 물과 같이 순리를 따르되 본인의 방향을 정해, 어디로 흘러가고 싶은지는 각자가 정해야 하는 몫이 아닐까. 물은 흐르며 본인의 길을 개척할 수 있다. 남들이 갔던 길을 답습한다고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고 꼭 늘 새로운 길로 가야만 좋은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만의 길이 있는 것이다. 가다가 흐르다가 이 길이 아닌가 싶으면 잠시 멈춰 가만히 가득 채워짐을 기다려보자. 가득 채워지면 또 흘러가고 싶은 길이 보이지 않겠는가. 빨리 보이지 않는다고 조급할 필요도 없이 때가 되면 다시 넘쳐흐를 것이다. 그 그릇의 깊이만큼 담을 수 있고 깊이만큼 채워져야 넘쳐흐를 것이다. 크기와 깊이도 모두 다 다르다. 옆에 물과도 비교하지 말자. 너는 너고 나는 나다. 어차피(於此彼) 우리는 모두 대양에서 만난다. 더 깨끗한 물, 덜 깨끗한 물도 없다. 바다에 모이면 피차일반(彼此一般), 피장파장이다.

 이 모든 뜻이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글자에 다 담겨 있는 것만 같다.



오늘 나는 얼마만큼의 깊이로 어떤 속도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잠시 멈추어 되돌아본다. 

흐르고 흐르다. 생각해 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