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첫째 아들이 시어머님께 얘기한다.
“우리 엄마는요. 얼굴이 두 개예요. 저희한테는 찡그리고 인상 쓰는데요. 친구 엄마들 만나거나 다른 사람들 만나면 금방 미소를 지으면서 웃어요. 어쩜 그렇게 얼굴 표정이 빨리 변하는지 신기해요.”
하하하. 얜 갑자기 왜 이상한 얘기를 하고 그러지?
이전까지 대화와는 전혀 상관도 없는 이야기를 뜬금없이, 당황스럽게 말이다.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며 “엄마가 언제 그랬어요?” 물어본다.
“엄마 요즘 계속 그러고 있잖아요.”
그제야 요즘 내가 어땠는지 생각해 본다.
아이들 방학이어서 힘들긴 했다.
똑같은 말을 반복해야 하는 것도 지치고, 방학 숙제 하라고 잔소리하는 것도 지치고, 둘이 좀 그만 싸우고, 나에게 그만 일러바치라고 얘기하는 것도 지치고, 하루 세끼 차리고 치우는 것도 지치고, 어질러놓은 방 정리하라고 얘기하는 것도 지치고...
이래저래 지쳐있는 나날들이었다.
그러니 얼굴에 웃음기라고는 없는, 건조한 무표정 상태였을 거다.
거기에 힘들면 찡그림과 짜증이 섞인 표정이 더해졌겠지.
음… 그런데 내가 항상 그랬나?
아니었던 것 같은데…
사람마다 기억은 다르니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런 표정을 할 수는 없지 않나.
아이들 친구 엄마를 만나면 다들 어떤 심정인지 아니까 얘기가 통하니까 더 그런 거지.
엄마들끼리 있을 때는 하하 호호 웃으면서 자기들한테는 그런 모습을 많이 안 보여줘서 그랬나?
서운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는 건가?
그런데 아들의 얼굴을 보니 그런 건 아닌 건 같다.
내겐 숙제 같은 질문을 안겨놓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맛있게 밥을 먹고 있으니 말이다.
왜 아이들에게 유독 웃는 모습을 잘 보이지 않을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가정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면서.
알지만 당시 감정이 앞서니 다른 것은 다 뒤로 한걸음 물러나 있게 된다.
이렇게 반성 모드로 접어들다 잠깐 다시 생각해 본다.
아닌데? 아이들과 함께 있어서 웃는 모습을 보일 때도 많은데?
아마 방학이라는 특수 상황이어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핑계를 대본다.
그러다 문득 내가 원래 많이 웃는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하다.
편하고 좋은 사람에게는 많은 웃음을 보여줬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무표정한 모습을 보여줬던 것 같다. 내 기분과 상황에 따라 다르기도 했을 테고...
그래도 어느 정도 미소를 머금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얼굴에 드러나는 감정을 피하려고 무표정을 유지하려고 했던 적도 있는 것 같다.
냉철해 보이는 모습이 내게 없는 카리스마를 조금이나마 있게 해주는 것 같아서.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렸다. 그런 것이 멋있는 줄 착각했던 거다.
지금은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내 감정을 숨기고 살면 어딘가에서 삐져나온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그때그때 감정에 충실하되, 타인에게 상처는 주지 말자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에게는 잔잔한 감정은 기억나지 않고 내가 보여줬던 큰 감정만 크게 와닿았나 보다.
아이들에게 미소 짓고 웃으면서 얘기한 적도 많은데, 화내고 짜증 냈던 기억만 크게 남는 것을 보니.
음, 어쩌면 나도 그럴지도 모른다.
타인이 내게 보여줬던 친절과 미소보다 불친절과 무례가 먼저 떠오르는 것을 보면.
어쩔 수 없는 본능 중의 하나인가?
그렇다면 조금은 씁쓸하다.
세상이 회색톤으로 보일 것 같아서.
그렇다면 본능을 거스르면 될 것이다.
내게 보여줬던 친절과 미소, 배려 등을 더 꼭꼭 담아두는 거다. 따스함이 느껴지게 말이다.
아이들에게 그런 것을 요구할 수는 없으니 내가 조금 더 노력하는 수밖에.
두 얼굴의 엄마보다는 그냥 다채로운 얼굴의 엄마가 더 나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조금 더 감정 표현을 잘해보자 다짐하게 된다!
아이들은 그러면 더 세분화해서 나를 부를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