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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Apr 01. 2023

진정한 잔소리꾼은 누구인가?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첫째는 가끔 잔소리 배틀을 하자고 합니다.

"엄마, 엄마~ 나랑 잔소리 배틀할래?"

"왜? 엄마는 잔소리 싫은데, 하고 싶지 않아."

"에이~ 나랑 한 번만 잔소리 배틀하자. 내가 먼저 할게!"라고 말하며 엄청 긴 이야기를 쉬지도 않고 단숨에 쏟아냅니다. (들어보면 잔소리라기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잔소리와 섞어서 해요.)

저는 첫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귀가 먹먹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아... 나는 왜 지금 이 아이와 이런 말도 안 되는 배틀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머리를 질끈 감싸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기 시작한 4세 때부터 첫째는 말이 많았어요.

저는 원래 말수가 많은 편이 아니라 처음에 신기했어요.

우와~ 저 조그만 아이 입에서 어쩜 저렇게 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 궁금했죠.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말폭탄은 심해졌습니다.

책을 읽거나 자신이 집중하는 일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종알종알거립니다.

어이가 없는 것은 목감기에 걸려 목소리가 반쯤 나갔을 때조차 말을 끊임없이 한다는 겁니다.

제가 너무 신기해서 물어봤어요.

"그렇게 말을 많이 하면 목이 아프지 않아?"

"목이 왜 아파? 전혀 안 아픈데!"

"아, 그래? 엄마는 말을 조금만 많이 해도 목이 아프던데..."

"엄마가 이상한 거 아냐?" 이러면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죠.

저는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별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공부하라고 하지도 않고, 책 읽으라고 하지도 않고, 그나마 아이들에게 많이 하는 이야기가 "정리 좀 해."인데, 첫째는 이 말을 잔소리로 받아들이면서 제가 잔소리가 엄청 많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처음에 저 소리를 듣고는 정말 정말 억울했습니다.

"정리 좀 하라는 게 왜 잔소리야? 너네가 어질렀으면 너네가 치워야 하는 게 맞는데 계속 안 치우니까 엄마가 치우라고 얘기하는 거잖아. 똑같은 말 계속하기 싫은데 계속 안 치우니까 잔소리처럼 들리는 거지."

둘 다 남자애가 그런지 한번 이야기해서 듣는 법이 없어서 똑같은 말을 5번 이상 하다 보니 애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구나 생각은 하지만, 저는 절대 인정할 수 없었어요.


​어느 날 남편에게 첫째가 저한테 잔소리꾼이라고 이야기했다고 말했어요.

남편과 저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 집의 진정한 잔소리꾼은 첫째라고 결론지었어요.

첫째의 잔소리는 특히 남편에게 많이 향합니다.

"아빠, 아빠 술 마시는 거 몸에 안 좋은 거 알아 몰라? 내가 책에서 봤는데 술은 건강에 안 좋대. 그런데 아빠는 왜 술을 마셔? 저번에 엄마랑 영화 보러 갔는데 술은 답이 아닙니다라고 이야기했어. 답도 아닌 술을 왜 마시는 거야? 아빠, 술 좀 끊어!" 이런 식으로 다다다다다다 쏘아붙입니다.

어릴 적에 말이 정말 많았다던 남편(어머님께 듣고는 정말 놀랐어요. 남편도 하루 종일 말을 했대요. 하하하).

"아니, 그게 아니라, 아빠가 일을 하다 보면 조금 힘들 때 가끔 마시는 거잖아. 그 정도는 괜찮지 않아?"

"아니지, 아빠, 조금 마시든 많이 마시든 술은 답이 아니라니까. 답이 아닌 것을 왜 마시냐고. 이제부터 술 한번 끊어봐." 남편과 저 서로를 쳐다보며 어안이 벙벙해지죠.


저 이야기를 시작한 때부터 남편을 보면 어김없이 술 끊으라는 이야기를 하는 첫째.

남편도 못 견디겠던지 올해  1월 금주를 선언했어요.

"아빠 이제 술 끊을 거야. 아빠가 혹시 한 잔이라도 술을 마시면 벌금을 낼게." 하면서요.

오~ 저도 남편이 술을 끊기를 바랐기에 술을 끊고 벌금을 내겠다는 말을 얼른 동영상으로 찍어서 증거로 남겼어요. ㅎㅎ

저 선언을 한 이후 지금까지 남편은 금주 약속을 잘 지키고 있습니다.

첫째가 저렇게 많은 말을 쏟아내자 둘째도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어요.

가끔 둘이 싸우는 것처럼 서로 목소리를 조금 높여가며 이야기해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자기들끼리 잔소리 배틀하면서 노는 거래요.

우와, 정말 신박한 놀이도 다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랑 놀아달라고 할 때도 가끔 있지만 둘이 서로 종알종알거리면서 역할극도 하고 이런저런 놀이를 하더라고요. 말을 많이 하면서요. (집에서는 이렇게 말이 많은 두 아들인데 학교, 유치원에서는 과묵하다는 것이 좀 놀라울 따름입니다.)

엄마, 아빠가 뭐라고 한마디라도 하면 (보통은 정리하라는 말이 주를 이루긴 하네요.) 잔소리꾼이라고 말하는 아이들.


첫째는 올해 소원을 적는 종이에 "엄마가 잔소리하지 않게 해 주세요."와 "아빠 술 끊게 해 주세요."라고 적었더라고요. 저걸 소원으로까지 적는 것을 보면 내가 잔소리가 많은가 혼자 고민을 했었죠.



아빠가 술을 끊었으니 이제는 담배를 끊으라고 잔소리를 시작한 두 아들. 이제는 둘째까지 같이 합세했어요.

담배는 꽤 오랫동안 피우기도 했고, 스트레스 해소라고 피우던데 끊을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이네요.

저는 담배 냄새를 싫어해서 끊었으면 좋겠지만 남편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해서 아주 가끔 끊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이야기하는데, 두 아들은 아빠를 볼 때마다 이야기해요.

담배가 얼마나 안 좋은지 아냐면서, 내가 어디 책에서 봤는데 이런 이야기를 섞어가며, 아빠 그래서 담배는 언제부터 끊을 거야?라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긴 이야기를 매일 하는 셈이죠.

평소 논리적으로 말을 잘하는 남편의 입도 다물게 만들어버리는 아이들의 잔소리.


이쯤 되면 진정한 잔소리꾼은 우리 집 두 아들, 특히 첫째 아닐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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