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프란체스카 두일이]
최근 몇 년 전부터 커피는 일상에서 우리와 땔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아침에 일어나 진한 향기 가득한 카페인을 찾게 되고 점심 먹고 또 한 잔 마셔야 피곤을 이겨 일을 할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까지 안겨준다.
커피는 이제 매일 마시는 물 같은 존재다.
10년도 더 지났지만, 커피 수업에 강사가 한 말은 새삼스레 기억 소환을 부른다. 지금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도 주택가에 한 집 건너 카페가 들어설 정도로 인기가 있어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그 현상이 일어난다고 했다. 정말이지, 지금은 그 말처럼 바로 옆에 카페가 또 들어 설 정도로 많은 카페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늘어졌다.
카페를 다니다 보면 커피 맛은 당연히 차이가 있다. '커피를 연하게 마신다, 아무 데나 가자' 하지만 커피 맛을 알면 맛있는 곳을 찾아다닌다. 처음엔 커피가 다 비슷하다 여겼지만 이제는 당연히 맛이 다르다는 걸 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는 어딜 가도 맛으로 평가하긴 어렵다. 커피가 쓰지 않으면 무맛이라 자리가 편리해서 가지 맛으로 선택하진 않는다. 커피 한 잔은 맛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편리성, 이동성도 중요하다.
나조차도 비슷한 커피라 생각하면 좀 더 넓고 깨끗한 카페를 가고 싶기 때문이다.
카페를 준비하다 보면 정말 해야 할 일이 많다. 커피 하나만 생각하고 사람들은 시작이 쉽다고 생각한다.
작은 카페 하는 것이 아직도 꿈이라고 말하면 그냥 웃는다.
일하는 게 만만치 않은데 겪어봐야 알 수 있기에 굳이 목소리를 높이고 싶진 않다. 꿈은 꿈이니까.
그중 커피는 ‘원두 로스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떤 원산지의 원두를 사용하는지, 브랜딩의 비율은 어떻게 할지, 로스팅의 강도에 따라 커피의 맛은 달라진다.
갓 볶아낸 원두는 숙성도를 어떻게 할지, 원두 분쇄도는 몇으로 세팅해 커피를 내릴지, 어떤 머신을 선택할지, 또는 바리스타의 템퍼 강약에 따라 천차만별의 커피 맛이 나온다.
날씨에 따라서도 원두의 분쇄도와 시간, 양을 조절해야 좀 더 좋은 맛을 낼 수 있다.
커피 한 잔이 나오기까지는 더 많은 과정들이 필요하기에 한 번 마신 맛으로 평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무심코 한 잔 마셨지만 그 커피가 나오기까지 준비과정이 많기 때문이다. 그날은 커피 맛이 별로라도 다음에 가면 커피 맛이 다르게 느껴져 맛있을 수 있다. 로스팅이 변했을 수도 있고 다른 기타 부수적인 게 있을 수도 있지만 커피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서도 맛은 달라진다. 커피는 알면 알수록 신비로운 오묘함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매일 내리는 커피도 팔색조처럼 다양한 매력을 품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지금 속초 영랑동에서 운영하고 있는 카페 '씨씨(seesea)'는 형부가 직접 로스팅한다.
카페 시작 전 집에서 직화로 프라이팬에 원두를 1년 넘게 볶았다. 직화는 불 조절이 필수로 볶을 때마다 맛이 달랐다. 그래도 갓 볶은 원두는 맛있다. 소량을 볶았지만 매번 다른 맛이 난다. 숙성도에 따라 커피는 또 다른 맛을 갖기에 많은 테스트를 했다.
카페 하는 일을 보면 형부는 딱 적성이다.
배우로서는 천상의 중저음인 목소리도 좋지만 품성 자체가 점잖다.
마음도 느긋하고 평소에도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라 프로파일을 만들며 원두를 볶기에는 장점인 성격이다. 뭐든 뚝딱 만들어 낼 만큼 손재주도 있어 간단한 소품도 만들어 내고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것, 커피를 좋아한다. 단지 형부가 내리는 커피는 좀 진하다. 형부는 남성다움이 있는 묵직한 커피를 내린다.
카페는 주인의 취향과 맛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 뚝심도 없다면 아마 커피맛을 처음부터 잡기는 어려웠을 텐데 노력한 만큼 누구보다 맛있는 커피를 뽑고 있다. 피곤함을 깨우고 싶을 때는 진한 커피를 마시지만 평소엔 연한 커피를 즐겨 마시는 나는, 그 차이가 있다. 물론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쓴맛이 아닌 바디감이 살아 있는 커피가 맛있다. 얼음이 녹으면 본연의 맛이 사라지기에 좀 더 에스프레소를 진하게 내린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 다가온다. 얼마나 더 많은 에스프레소를 내리게 될지 손목은 벌써부터 아파오지만 진한 커피 향을 맡다 보면 우울했던 기분도 좋아진다. 누군가에게는 한 잔의 커피가 넉넉함을 줄 수 있기에 아직까지는 멈추지 않고 속초에서 바다를 보며 매일 커피를 내리고 있다.
커피 얘기를 하다 보니, 지금 에티오피아 예가체프로 부드러운 커피 한 잔 따뜻하게 마시고 싶다.
내가 인정하는 커피 전문가 형부한테 부탁해야겠다.
맛있는 커피 한 잔 내려달라고.
한 우울만 파고 싶어도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이제는 어색해진 세상이다. 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까지는 많은 투자와 시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도 감당할 수 있는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배우인 형부도 여러 고민 끝에 카페를 시작했고 언니와 내가 함께 했다. 3년간 카페를 준비했지만 아직 1/4도 다 쏟아내질 못 했다. 경영이라는 게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다. 하지만 아직도 떠나질 못 하고 여기 속초에 있다. 하나를 버리면 또 얻는 게 있듯 파노라마처럼 매일 펼쳐지는 바다를 보며 오늘도 카페 문을 열고 커피를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