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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고희 Aug 14. 2022

정말 조용한 ADHD인 걸까

무더위 + 갱년기 + 방학 = 지옥

아들이 방학하고 집에 오고 나서 갱년기 증세가 더 심해졌다. 전에는 잘 때만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는데, 이젠 하루 왠종일 열이 나고 불안증 환자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백수오'를 먹고 많이 좋아졌다고 블로그에 떡하니 후기까지 남겨놨는데, 말짱 도루묵이 돼버렸다.


1. 아들이 오고 캐리어를 정리했는데 옷 여덟 벌이 발견되지 않았다. 본인은 분명 온방을 싹싹 뒤져 싸왔다는데, 봄에 입던 긴팔 긴바지부터 최근에 입던 반팔 반바지에 교복까지 고루 사라졌다. 잘못 가져온 교복 바지는 아무래도 룸메이트 옷인 것 같아 아이 엄마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 확인하고 학원가는 길에 갖다 드렸다.

본인 말이 아무래도 옷들이 샤워실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벗어놓고 팬티만 입고 방으로 올라간 것 같다며.

그게 가능해?? 입었던 옷을 놔두고 그냥 몸만 올라간다고??!!

뿐만 아니다. 짊어지고 온 배낭은 더 난장판이었다. 각종 과자와 젤리 봉지에 구겨지고 찢어진 프린트물까지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2. 집에 온 다음날이던가 고3 때까지 쓰겠노라 맹세하며 중2 때 졸라서 산 아이폰을 바닥에 대차게 떨어뜨려 액정 완전히 나갔다. 이미 폰을 한두 번 떨어뜨린 게 아니라, 앞뒤 옆 완전히 아작이 나서 딱 봐도 a/s비용이 더 들 것 같았다. 그렇다고 약정 남은 폰을 또 새로 바꿔주는 것은 용납이 안되어 결국 중고폰을 사기로 하고 아이와 함께 다녀왔다. 번엔 진짜 고 3 때까지다!!


3. 러나 그로부터 약 열흘 뒤, 새로 산 중고폰마저 워터파크에 갔다가 흥건히 적셔와 또다시 폰을 바꿔야만 했다. 두 폰 합쳐서 모두 약 80여만 원이 들었다.


4. 그러고 보니 봄에 산 스마트 워치가 안보여 어딨냐 물으니 어딘가에 있다고 큰소리치더니, 며칠 뒤 잃어버렸다고 이실직고했다.


5. 방학 동안 다시 초등학생 마냥 방 치우는 법과 옷장 정리하는 법 등등을 알려줬다. 왠지 이 모든 일들이 하나의 연결고리처럼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욕실 나오면 뒷정리 하기, 벗은 옷 세탁기에 넣기, 나갈 때 에어컨 / 컴퓨터 등등 불 끄고 나가기, 책상 정리하기.

처음 며칠은 귀찮은 듯 억지로 하더니 마저어느 날은 에어컨만 끄고, 어느 날은 옷만 세탁기에 넣고, 어느 날은 욕실만 정리하고 나가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그거라도 하는 게 어디냐 굳이 잔소리를 보태지는 않았다.


6. 그런 일련의 일들이 있은 후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영어학원에 데려다줬는데 안들어가고 피씨방에 갔다가 픽업 갔을 때 태연히 차에 타고 다녀온 척을 했다. 다음날 원장님이 전날 아들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전화 주셔서 알게 되었다. 원비 결제하라고 준 카드는 3주째 잊고 그대로 들고 왔다.

빠진 이유가 뭐냐니 갑자기 졸려서라고. 중1도 아니고, 고1이 갑자기 졸려서 학원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고고라?


7. 국어 학원도 다녀야 할 것 같대서 온라인 수업 등록해줬건만, 매주 오는 피드백에는 과제 올 '미수행'이라는 세 글자만이... 

돈이 어디서 땅 파면 줄줄 나오는 줄 아나... 분명 후회 없이 해보겠다고 굳게 다짐해놓고 불안한 마음에 등록만 해놓고 몸은 친구들과 피씨방에 가 있는 널, 어떡하지? ?


그렇게 내 꼭지가 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바탕 난리가 났고, 다음날 아들에게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 너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그러니 병원에 가서 혹시 '주의력 결핍' 같은 것이 있는지 검사 좀 해보자고 했다.

약이 필요한 수준인지 아닌지 우리끼린 알 수 없으니 한번 가보자, 확실히 먹으면 좋아진다더라.... 

주의력 결핍이 있으면 학업에도 지장이 있고, 나중에 군대 같은 단체생활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고, 특히 운전을 하게 되면 문제가 더 커지지 않겠냐...  

그 말을 꺼내기까지는 나도 쉽지 않았다.

혹시라도 마음 내키면 언제든 알려달라고 하고 다렸...으나, 개학이 코앞인데 아직까지 아무 대답이 없다. 잃어버리고, 잊고, 정리 안되고, 충동적이어서 불편한 건 정작 아들이 아니라 나뿐인 걸까.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는 항상 내 탓을 먼저 했었다. 어릴 때 사랑이 부족해서 그런가,  내가 너무 아이 마음을 몰라주나, 내가 너무 엄격한가... 육아 프로에서도 다들 아이 잘못은 다 부모탓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하지만 나도 이제 그만 지친다. 내 탓만이 아니라는 걸 나도 이제 그만 확인받고 싶다....


내일 기숙사 복귀를 앞두고 오늘 가슴 언저리가 꽉 막혀서 답답하다. 그동안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달라진 게 아니라 실은 감춰진 것이었다.

여름은 길고 갱년기 또한 그렇다. 그나마 방학이 끝나가서 얼마나 다행인지. 방학 동안 나의 속은 썩어 문드러질 대로 문드러 버렸다.



일년내내 감기를 달고 사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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