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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보름 Jan 07. 2024

1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사람이 와도 멈추는 나라?

사람 먼저인 나라 vs 차 먼저인 나라

 뉴질랜드에 이민 와 살면서 들은 이야기 중 하나는 뉴질랜드는 횡단보도 1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아이가 걸어오면 차가 멈춰서 기다려 준다는 것이었다.

 ' 엥?' 진짜로?

 

한국에 삼십 년 넘게 살고 한국에서 운전 경력 또한 10년이 넘게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아무리 시민의식이 선진국인 나라라지만 횡단보도 1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아이가 온다고 차가 서서 기다린다는 것은 그 당시 이민초짜인 나였지만 거짓, 허풍의 이야기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게 말이 된다고?

 

 횡단보도에 신호등이 있는 곳은 어느 나라든 당연히 차는 멈춰 선다. 그러나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조그만 도로나 횡단보도에 신호등이 없는 곳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뉴질랜드에서는 이민 초기 지인이 이야기해 주었던 '100미터 내에서 사람이 와도 차가 멈춰 선다는 것'은 과장이 섞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백 프로 거짓은 아닌 반은 사실인 이야기였다. 실제 지내보니 100미터까지는 아니고 (실제 거리를 재보지는 않았으므로 체감상) 횡단보도 근방 30미터 정도에 사람이 걸어오고 있는 게 보이면 대부분의 차가 멈춰 서고 50미터 정도에서도 사람이 횡단보도 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여도 멈춰서 기다려주는 차들이 있었다. 아이들이 근방에 있으면 더 먼 거리에 있어도 차는 미리 멈춰 섰다. 몇 미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횡단보도에 아직 오지 않았음에도 걸어오는 것을 보고 먼저 서서 기다려 준다는 것이 놀랄 일이었다.



 

 뉴질랜드와 한국의 운전 문화 차이


 뉴질랜드에서 운전을 하면서 한국과 다르다고 느낀 것이 몇 가지 있다. 전체적으로 뉴질랜드 운전자들은 한국 운전자들에 비해 과속을 하지 않고 천천히 운전을 하며 교통법규를 잘 지킨다. 그중 몇 가지 큰 차이를 적어보자면 첫째, 뉴질랜드에서는 꼬리물기를 하지 않는다. 실제 뉴질랜드에 살면서 교차로에서 꼬리물기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아무리 파란불이 켜져 있어도 차가 밀려있어 앞차가 교차로 앞으로 넘어가지 않은 상황에서는 그 차가 빠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파란불이니 무조건 건너야겠다는 마음으로 마구잡이로 뒤차 앞에 붙어 서서 교차로가 막히는 꼬리물기는 일어나지 않다. 두 번째는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운전을 하면서 웬만하면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내가 이민생활을 하는 6년여동안 경적을 울리는 것을 들은 적이 거의 없다. 앞 차가 조금 답답하게 가거나 신호가 켜졌음에도 움직이지 않는다거나 하는 경우에도 그냥 그 차를 피해 갈 수 있으면 피해 가고 그저 기다려준다. 이 점은 한국에서 운전경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나도 몇 번이나 경적을 울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있으나 내가 피해 갈 수 있는 상황이면 최대한 피하려고 한다. 뉴질랜드에서 유일하게 차들이 경적을 울리는 경우는 크리스마스 때라든지 큰 축제를 하는 경우이다. 젊은 사람들이 축제 분위기에 취해 여러 명 삼삼오오 차에 올라 타 노래를 크게 틀고 경적을 울리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운전을 하면서 들은 적이 정말이지 거의 없다. 그리고 세 번째는 횡단보도에서는 사람이 멀리서 걸어오는 것이 보이면 미리 멈춰준다는 것이. 앞서 언급했듯이 사람이 횡단보도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이면 차는 무조건 멈춰 선다. 그리고 그 사람이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으면 그때 지나간다. 이것은 횡단보도에서는 우선 멈춤을 해야 한다는 교통법규의 기본 상식임에도 너무 잘 지켜지고 심지어 사람이 아직 횡단보도에 오지 않았음에도 기다려준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것만이 아닌 앞서 열거한 세 가지 특징 모두 교통법규상 지켜져야 하는 규칙이다. 막상 내가 느꼈던 뉴질랜드와 한국의 운전 문화차이를 글로 적고 보니 모두 지켜져야 하는 게 맞는 교통규칙들인데 그것들이 지켜져서 놀랐다는 것 적지 않은 충격이다.





 차 먼저인 나라


 한국에 와서 아이가 집 근처에 있는 어린이집을 다녔는데 그 어린이집을 가려면 4차선 도로 하나를 건너야 했다. 4차선 도로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이 아니다 보니 횡단보도에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아이가 잘 걷지 못하는 만 1살 무렵 유모차나 자전거에 태워 등하원을 시켰는데 그럴 때면 유모차나 유아자전거에 탄 아이를 보면 '차들이 서 주겠지.'라는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차들은 사람이 혼자 건너든 아이랑 같이 건너든 유모차를 끌고 건너든 아랑곳하지 않고 쌩쌩 지나갔다. 아이가 조금 커서 스스로 걸어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는 길 건너는 것에 대해 몇 번이고 강조를 해서 알려주었다. 아직 만 2살지만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되기에 몇 번이고 도로를 건널 때는 손을 들어야 하고 차들이 오는지 오지 않는지를 살펴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고, 건너기 전에도 항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 손을 잘 들고 건넌다. 이렇게 아이랑 같이 건너갈 때는 차들이 아이가 건너는 것을 보고 서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면 감사함에 나도 모르게 운전자에게 목례를 하게 된다. 고마운 인사를 서로 건네는 것이 좋은 것이긴 하지만 보행자로서 당연한 것에 인사를 한다는 것이 무언가 약간은 씁쓸함도 느껴졌는데 사실 이것은 내가 보행자로서 인사를 할 때가 아닌 운전자로서 보행자에게 인사를 받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었다.


 얼마 전 동네에서 장을 보고 운전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앞에 횡단보도가 있었고 그 횡단보도 역시 신호등이 없는 곳이었다.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 횡단보도에서 이미 반 이상 건너오셨다가 내 차가 오는 것을 보고 멈춰 서셨다. 나 또한 아주머니들이 건너시는 것을 보고 멈춰 섰다. 그런데 그분들이 횡단보도 한가운데서 나한테 손짓으로 먼저 가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서서 그분들이 먼저 건너길 기다렸고, 그분들은 내 차가 움직이지 않자 잠시 멈칫하시더니 그제야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시고는 길을 건너가셨다. 그분들은 나를 배려해주신다고 하신 행동이겠지만 횡단보도에선 사람이 우선이어야 하고 차는 우선 멈춤을 하고 보행자가 먼저 길을 건널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게 원칙인데 그 우선순위가 뒤바뀐 그분들의 행동 적잖이 놀라고 씁쓸하기까지 했다. 횡단보도에서는 사람이 없더라도 우선멈춤 해야 하는 것은 운전면허 시험 이론에도 나와있는 기본 중의 기본인 교통 규칙이다. 그런 규칙이 왜 주객이 바뀌어져 있고, 그것이 바뀌어 있음에도 사람들은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당연하게 차를 먼저 보내는 것일까?  


 며칠 전 방학을 맞이해서 뉴질랜드에 사는 사촌조카들이 놀러 왔다. 랜드에서 딸아이가 막 태어났을 때부터 백일까지의 모습만 보았던 조카들은 이제 2살이 돼서 말을 하는 아이를 보고 신기해했다. 우리는 같이 집 앞에 있는 빵집에 가기 위해 길을 건넜는데 2살 난 딸아이가 손을 들고 건너자 조카들이 신기해하며 왜 손을 드는지 물었고 옆에 있던 새언니가 설명해 줬다. "한국에서는 손을 들지 않으면 차가 쌩하고 먼저 가서, 손을 들어야 차가 서줘."라고 말이다. 뉴질랜드에서 살면서 손을 들고 횡단보도를 건넌 적이 없는 조카들을 보면서 새삼 생각이 들었다.


 '차가 우선인 나라 vs 사람이 우선인 나라' 어느 것이 맞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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