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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삼거리 Dec 08. 2022

병원에서

알게 된 것들


  시내 내과 원장님은 병원 대기실 가운데 대형 TV를 설치했고, 매번 다른 도시를 여행하는 드론 조감 영상을 틀어놓는다. 작게 깔리는 잔잔한 음악과 느릿한 사람들의 움직임 그리고 맑은 날 하늘과 바다가 함께 있는 도시의 모습들이 흘러간다. 모두들 조용히 화면에 빠져들어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이건 분명히 의도된 것이다. 환자와 보호자인 우리들을 홀려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빠져든다, 빠져든다... 저기는 어딘가? 옆자리 어르신이 물으신다. 오늘은 떡하니 몽고가 나왔지 뭔가. 초록이 가득하고 하늘이 비친 파란 물웅덩이와 낙타, 야크 무리가 가득한 곳. 우리가 소라 뿔피리 소리를 들으며 걸었던, 에르데네 사원의 모습을 멀리서 볼 수 있었다. 원장님의 큰 그림은 성공적이다.


 j가 며칠 대학병원에 입원해있었기 때문에, 병원에서 보호자로 관찰한 얘기도 해보려고 한다.


 입원병동의 복도와 기기

 (집중치료 병동에 한하여)


 병원의 복도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침대로 혹은 휠체어로 환자들이 이동하는 동선이다. 그리고 데스크에서 전달된 병실 환자들의 치료 물품이 이동하는 통로이자 간호사 선생님들의 작업 공간이다. 그리고 회복하고 있는 환자들이 걷는 물리 활동 공간이고, 병실 침대에서 나와 외부와 연결될 수 있는 휴식공간이다. 그리고 또한 화장실, 샤워실 사용, 병실 안에서 오물처리 이동 등등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보호자들이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고, 때때로 회진 시 상담 공간이 될 수 있고, 회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청소 시간 - 청소도구 이동, 식사시간 - 식사 트레이 이동도. 종종 간단한 시술은 입원층의 치료실에서 이뤄지기도 한다, 그 끝에 간호사 데스크가 있고 거기서 하루에 세 번 교대 업무가 일어나고 그 시간은 짧은 시간 환자들의 상태에 대한 주요 정보를 서로 교환하는 선생님들의 집중되고 열띤 소통의 시간으로 그 시간에는 환자 보호자 모두들 시각을 다투는 일이 아니면, 자발적인 방해금지 모드에 돌입한다. 그 시간이 끝나면 어김없이 매우 분주하게 환자의 상태를 살피는 간호사 선생님들이 등장한다.

 여기에 코비드-19로 환자가 발생한 병실을 위한 방어복 보관함이 문 앞에 설치되어 있고, 모든 출입 시 방어 복장을 갖춘다.


  그러니 이 복도에 서서 움직이는 것들을 보고 있자면, 거대한 삶과 치료의 복합 시스템 속에 속한 것 같은 느낌이다. 모든 것은 바코드로 관리된다, 띠릭. 오늘 먹은 약과 식사, 환자의 상태와 처방이 모두 기록된다. 여러 가지가 세분되어 전문화되어 있다. 회진(+상담) 2번, 식사(+약) 3번, 인수인계(+상태 확인) 3번, 여기에 각종 검사가 입원 병실의 하루 중요 일정이다,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

 

 입원 후에 환자의 상태가 안정되면 간호사 선생님은 한가한 시간에 맞춰 간호 데스크에서 거동 가능한 환자나 혹은 보호자에게 건강에 관련된 질문들을 하고 기록한다. 이 순간 보호자인 나는 다른 이에게 얘기한 것 없는 시시콜콜한 환자의 건강 생태를 거의 일러 받히듯이 말하기 시작한다. 이 정보가 유용한지 아닌지 나는 판단할 수 없지만, 선생님께서 판단해 주실 테니 일단 다 얘기하겠습니다, 혹시 필요할 수 있으니까요. 뭔가 남의 사정에 대해 긴밀한 얘기를 공유한 동지를 만난 듯. 이건 내 사정이고 프로인 간호사 선생님은 감정 없이 정보를 다루고 보호자인 나를 배려한다.


 병원이나 요양원 복도 설계로 벽에 손잡이가 설치된 경우가 있다. 노약자가 이동시 몸을 기댈 수 있는 장치이다. 헌데 막상 필드에 나가보니 벽의 손잡이는 흘러간 유행의 흔적처럼 의미 없이 벽을 장식하고 있을 뿐이다. 환자들은 각자의 이동 기기에 기대어 이동하고, 움직임이 필요한 환자들은 이동식 스탠드에 기대고 수액걸이를 이용하여 수액이나 진통제 봉투를 높이 걸어 다니기도 하고, 배출용기 등을 낮게 걸어 다니기도 한다. 중간 높이에 튼튼한 손잡이가 달려있고, 손잡이에 간단한 물품을 올릴 수 있는 트레이가 같이 있는 것도 있다.


 회복을 하며 환자들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면 병원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거닐게 된다. x-ray나 ct 촬영을 다녀오기도 하고, 코비드로 면회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로비나 카페에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가끔은 햇빛을 쬐고 바람을 맞으러 현관으로 가기도 한다. 이때 이 이동식 스탠드의 움직임을 옆에서 같이 따라가 보면, 튼튼하고 다소 육중하게 만들어진 바퀴가 미세한 바닥 재료의 분리와 울퉁불퉁함에도 덜컥 거리며 움직임을 방해하고 호스가 연결된 부위에 불편함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엘리베이터 문 틈, 바닥재료 분리 구간, 1층 점자블록들. 침대나 휠체어도 마찬가지이다.


 대학 병원에 처음 갔을 때 이거 동선이 너무 복잡한 거 아닌가 생각이 들었는데, 며칠 지내다 보면 금방 지리가 훤해진다. 구역과 용도에 따른 동선 파악이 된다. 밤낮으로 돌아다니는 공간이 되어서 속속들이 알게 되는 것이다. 엘리베이터들이 환자, 침대용, 일반 승객용 용도가 구분되어 있으므로 위치를 확인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동선의 중요성도 있지만 안내가 조금 더 친절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절대 혼잡구간은 존재한다. 환자용 엘리베이터 앞 통로가 부대시설 복도와 연결되면 침대, 환자, 방문객 등이 좁은 공간에 몰리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므로 넓은 꺾이는 복도는 시선을 확보하기 어렵고 사람들이 단축된 경로로, 사선으로 다니기 때문에 잘 살피며 다녀야 한다.


  입원 환자들, 관계자들 만의 편안하게 접근해서 (단차 없이) 햇빛을 쬐고 바람을 맞을 수 있는 질 좋은 공간이 작더라도 여기저기 있으면 좋겠다.

 x-ray, ct 촬영실 등은 근무시간에 일반 환자, 입원환자 등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휠체어, 스탠드, 침대, 보호자와 함께 등등의 방식으로 집중되는 시간이 생기기 때문에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생각보다 빠르게, 퇴원해도 된다는 담당 교수님의 얘기를 듣고는 신이 나서 짐을 챙기고 룰루랄라 모든 절차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담당 간호사 선생님이 환한 얼굴로 앞으로의 일정과 약을 챙겨주셨다. 짐을 챙겨 병실을 나오며 마주치는 환자, 보호자 분들께 인사를 건넸다. 많은 얘기와 인사를 나누지 않았는데도, 말없이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힘듦을 공유한 어르신들의 따뜻함이 전해지는 짧은 인사였다.


 내가 이렇게 관찰의 여유를 부릴 수 있었던 건, 처음 퇴원하는 날 재발이 되었기 때문에 같은 과정을 한번 더 반복하며 아픔과 치료과정에 대한 요령? 이 생겼다는 웃기고 슬픈 j 때문이었다. 퇴원했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돌보아야 하는 긴 치료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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