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지난가을에 계절을 준비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겨울 옷을 꺼내놓고, 부엌 도구들을 살피고 내 책상 위 노트를 열고 끄적이면서 열린 어떤 ‘시작’의 기억들입니다. 처음 직장에 들어간 이야기부터 그 기억 속의 메뉴가 오늘의 저녁식사로 등장하는 순간.
언젠가 우왕좌왕하던 우리의 하루가 꾀 잘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이 들자, 그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사과 하나로 시작해서 각자의 텃밭을 가꾸고 저녁식사 식탁에 모이는 일로 하루에 머물렀던 시간들의 작은 글과 생각을 하나씩 올려놓았습니다. 어느 때인가 브런치북으로 묶는 작업을 하게 되었을 때 순서와 단락을 구성하면서 패턴이라고 부를 만한 것, 분류될 만한 것, 이건 나, 우리라고 할만한 것들이 구분되어 보이기 시작했고 100개 즈음이 채워졌을 때 그렇게 쓴 글들을 엮어서 책을 짓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요리는 우리의 생활을 닮았고, 내가 나의 일을 대하는 방식과 요리하는 방법이 이어져 있다는 생각에 '좋은 것을 구분하고 기억하며 살리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법칙을 지키려 애쓰며 요리 글쓰기를 이어가고 그것들이 나의 여기저기로 나아가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알쏭달쏭한 장면들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건 흘러가는 사실인지, 혹은 다짐 같은 것인지. 몇 번을 다시 읽어보면서, 그러면서 살펴본 내 글 속의 어딘가쯤의 생활과 기억들, 그곳을 지나고 반복하면서 깊어진 혹은 가벼워진 생각과 무언가를 다루는 방법들을, 그리고 흐름을 떠올리면서 다시 시작한 글들은 작년 여름에, 그러니까 오랜만에 만난 풍성한 텃밭을 한 껏 즐기면서 여유를 찾은 것 같습니다. 둘러보기의 여유입니다. 그리고 가을을 맞았습니다.
이 가을의 둘러보기 여유는 조금씩 시점을 당길 수 있는 미리 준비하기 같은 겁니다. 봄을 맞기 위해서 겨울을 나고, 여름의 풍성함을 기억하면서 차분한 준비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글을 쓰면서 시작된 생각은 하루의 시작 지점을 바꾸는 것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저녁을 먹고 차 한잔을 마시고, 모든 일이 끝나고 옷을 갈아입고 집안 정리를 하는, 샤워도 하고 향 좋은 크림도 바르고 하는 그 시간 있잖아요? 모든 것이 여유롭게 정리되는 시간이 하루의 시작이구나. 산뜻하다! 이 부분은 어쩌면 이 글을 위한 글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조금 들기도 하지만 그 사이 어딘가에서, 지금이 아니더라도 다음번, 어딘가로 이어질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예전 글의 같은 제목으로 다른 글을 쓰려는 것이었습니다. 다르게 다가오는 의미들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더 써보고 싶은 것들의 제목을 정리해서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개인적인 공간에서 시작된 이야기들에서 조금 폭넓어진 얘기들을 더해보고 싶은 생각과 함께 진행된 글들은, 단순한 시작들에서 출발한 선들 사이에서 새로움을 건져서 다른 방향으로 이어질 가지들을 틔우는 것이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배가 늘어난 것을 보면. 이제야 '당신의 기억이 오늘의 식탁에' 머무르는 점심시간을 마치려고 합니다. 남겨진 글들은 다시 우리의 생활 기준을 단단하게 기억하는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매일의 식사는 반복되지만 특별한 순간으로 이어집니다. 이건 개인적인 기록이면서 한 가정의 생활 서사가 그려지는 모습입니다. 10년 후에 우리가 이 이야기들을 다시 나누면 좋겠습니다. 그때에는 저의 단어들과 생선요리들이 풍성하고 다양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마지막 글은 다가올, 짧은 여름의 기억으로 마쳤습니다.
요리는 먹는 우리와 사용하는 재료에 대한 이해, 사용하는 도구, 그리고 펼쳐지는 장소와 공간에서 생기고, 그 매일의 식사는 우리의 집, 나의 식탁에서 벌어집니다. 그것들이 이곳의 글쓰기 재료인 '요리'와 '건축'으로 등장합니다. 조금 광범위한 제목으로 엮여서, 어렴풋하게 이어지는 부분들은 다시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늦어졌지만 처음 만든 목록을 많이 유지하면서 마감되었습니다. 욕심으로 웃긴 에피소드들을 더 채우고 싶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살랑거리는 날에 진득하지 못하게 조금 다른 것을 찾고 싶어서, 부족하지만 여기서 혼자 하던 연재를 마칩니다.
봄이 왔습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