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배 7일) 나 다시 돌아갈래(?)

고양이가 우울하지 않은 이유

“신피질의 재앙이네요. 스무 살, 서른 그런 시간 개념을 담당하는 부위가 두뇌 바깥 부분의 신피질입니다. 고양이는 인간과 다르게 신피질이 없죠. 그래서 매일 똑같은 사료를 먹고 매일 똑같은 집에서 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내도 우울해하거나 지루해 하지 않아요. 그 친구에게 시간이라는 건 현재밖에 없는 거니까. 스무 살이니까, 서른이라서, 곧 마흔인데. 시간이라는 걸 그렇게 분초로 나누어서 자신을 가두는 종족은 지구 상에 인간밖에 없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나이라는 약점을 공략해서 돈을 쓰고 감정을 소비하게 만들죠. 그게 인간이 진화의 대가로 얻은 신피질의 재앙이에요.”

- tvn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남세희


‘뉴 노말(New Normal)’, ‘포스트 코로나’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상하다. 코로나 이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아직 코로나가 끝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코로나 이후를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코로나 바이러스가 여름이면 가라앉지 않을까 하는 류의 예측들이 난무할 때,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알지 못하니 그에 대한 어떠한 예측도 성급하다고 생각했다.


여름이다. 낮 기온이 30도를 넘는다. 108배를 하는데 땀이 많이 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알 수 없는 경로를 통해 감염되기 시작했다. K-방역, K-메디컬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나라의 방역이 훌륭했다 해도 코로나의 위협에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교통사고가 난 지 2년이 넘었다. 당연히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운동의 생활화,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이제 나의 일상이다. 작은 접촉사고인 줄 알았다. 내부순환도로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차가 밀리는 상황이었으니 속도는 없었으나 뒤에서 트럭 운전사가 한눈을 팔아 브레이크 대신 액셀을 밟았다. 나는 갑자기 들이 받쳤고 브레이크를 밟고 있었으나 앞으로 튕겨나가 앞차를 들이받았다. 3중 추돌이었다. 외상이 없으니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러나 그로 인한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다. 소송도 끝나지 않았다. 계속 미뤄진다. 얼마 전 첫 공판이 있었다는데 아직 그 결과를 받지 못했다.


나는 교통사고로 인한 디스크, 이명, 불면 등에 시달리며 계속 고통받고 있는데 그에 대한 적절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제발 좀 끝내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코로나가 계속되는 동안은 코로나 이후를 말할 수 없듯이

나의 교통사고 후유증이 계속되는 한, 그 이후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나는 108배를 하고 명상을 하며 조용히 나에게 집중하는 일상을 선택했다. 신피질이 없는 고양이처럼 매일 똑같은 일상에 우울해하지 않을 수 없다.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는 과거 대신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힘겹다. 그래도 코로나 판데믹으로 모든 사람이 같은 이야기를 해주니, 집단 지성의 힘에 기대어 나의 새로운 일상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2014_0304_거제도_03 019_2.jpg 신피질이 없는 고양이, 그래서 언제나 도도할 수 있을까?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며 지금의 자신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 과거 사건을 쫓아가는 것은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그래 봤자 과거를 고칠 수는 없다. 대신 과거를 반성하고 앞으로 그렇게 하지 않을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은 되겠지. 하지만 항상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 모든 것이 이번 생에 처음이니 오늘을 생각하며 살자. 삶에는 연습도 리허설도 없다. 그래도 빨강머리 앤처럼 “내일은 아직 아무것도 실패하지 않은 하루라고 생각하면 기쁘지 않아요?”



108배 시즌 1 7일 차 _ 2020년 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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