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으로 찐 살은 108배로 뺀다!
성수기에 제주도 여행을 일주일이나 다녀와 놓고 여행은 그냥 소확행이다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행복의 크기가 중요한가 싶다. 작든 크든 행복은 행복이니까. 그 순간의 마음이 행복하면 좋은 것이지 그 크기가 의미가 있을까 싶다. 큰 행복이라고 오랜 기간 마음에 영향을 준다 해도 순간의 감정이지 시간이 지나면 점점 바래지는 것이니까.
여행은 기회가 되면 무조건 떠나려 하지만, 사실 요즘 같은 때는 쉽지 않다. 한동안 유럽 자동차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아무 곳이든 그림 같은 풍경이 마음에 드는 곳에서 일박하면서 천천히 여유 있게 한 달 정도 차로 이동하면 좋겠다고. 바르셀로나 언니가 스페인에서 스위스까지 다시 스위스에서 스페인까지 차로 한 바퀴 돌자고 했었다. 1종 면허가 없어 유럽에서 운전하기 힘든 내게는 정말 좋은 기회였지만... 가족들 때문에, 돌아와서 자가격리를 할 수 없어서 포기했다. 대신 제주를 갔다.
제주에서 마음대로 여행했다. 제주시에서 하루는 동쪽으로 하루는 서쪽으로 또 다른 날에는 서귀포에서 동으로, 마지막으로 산록도로를 따라 한라산 한 바퀴까지... 차로 이동을 많이 했다. 폭염, 비, 무지개, 안개까지 변화무쌍한 제주의 날씨를 만났다. 한라산을 한 바퀴 돌면서 해가 나는데 비가 오더니 보이지도 않는 한라산에 커다랗게 걸린 무지개는 진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제주에 정착한 지인들을 만나 그들이 추천하는 비경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었다. 생각도 못했는데, 제주시에 사는 형이 회사-집만 오간다며 안 가본 곳, 안 먹어 본 것을 해보고 싶다 하여 선택한 제주시청 근처 와인바 “빅 디어”를 시작으로 하루에 한두 병씩 와인을 마셨다. 남원읍에서는 친구가 “서중주막”이라는 와인집을 하고, 모슬포에는 신촌의 “숲으로 간 물고기”가 옮겨간 바다마르마레가 있었다. 캠핑을 한다니 서중주막 주인장이 셀러에서 꺼내 준 와인은 맛도 바디감도 딱 좋아서 한동안 애정 할 것이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매일 카페를 두어 군데씩 다니며 쉬었는데 커피도 맛있었다. 빛의 벙커를 갔다가 너무 추워서 들어간 커피박물관 “바움”의 아인슈페너는 박물관 이름 부끄럽지 않았다. 11년 단골(?)이 된 스테이 위드 커피는 이제 최남단 로스터리 카페로 자리를 잡았다. 사장님은 11년 전, 손이 이쁜 아이로, 여전히 케냐를 좋아하는 아이로 기억해 주어 고마웠다. 안개를 뚫고 찾아간 숲 속의 “커피맛이멜로”는 하루 종일 앉아있고 싶었다.
마지막 날 아침 일찍 갔다가 문을 열지 않아 2고 초려 하게 만들었던, 나비정원. 코로나 때문에 테이크아웃해 마당에서 커피를 마셔야 했지만 직접 로스팅해 핸드드립해 주는 커피는 적당히 묵직해 맛있고, 벨기에 솔트 캐러멜과 잘 어울렸다. 마당에 나비가 왔다고 빨리 가서 사진 찍으라는 말로 시작해, 커피를 마시는 중간중간 적당히 말참견하는 주인장 아저씨가 정겨웠다. 마당에 레몬나무, 올리브나무, 로즈메리까지... 나무들이 꽃보다 더 예뻤고, 호랑나비를 만나 사진 찍었다. 레몬 잎을 잘라 냄새를 맡게 해 주셨는데, 잎에서 정말 레몬 냄새가 났다. 너무 크고 무성해 로즈메리 맞나 싶었던, 직접 손으로 냄새를 맡아본 로즈메리가 바람결을 타고 커피 냄새를 넘어 퍼지니 에센셜 오일이 아니라 진짜 로즈메리도 하나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아침 커피를 마시는데, 스테이 위드 커피에서 사 온 커피잔을 보니 제주의 커피와 와인이 생각난다. 집 앞에 로스팅 카페가 그것도 로스팅 잘하는 카페가 있다는 것은 작지만 큰 행복이다 싶다.
여행은 추억 주머니를 만들어 놓는 거라고, 나중에 떠날 수 없을 때 그 추억 주머니를 꺼내 보기 위한 것이라고 우리 엄마는 말한다. 한동안 제주의 추억 주머니를 꺼내보며 행복하겠다. 여행 중 찐 살은 108배로 빼라고, 정유미와 최우식의 <여름방학>에서 템플스테이를 하며 108배하는 모습이 나왔다. 무릎이 아프다는 소리를 하면서, 염주를 한 알씩 꿰는 모습이 정겹다. 나도 숫자 세지 말고 염주를 한 알씩 꿰볼까 하다가 그냥 한다. 하나, 둘, 셋, 넷..... 숫자를 세며 마음을 고요하게! 108배와 아침 루틴만큼 나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108배 시즌1 35일 차 _ 2020년 2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