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배 44일] 코로나 ing

'확찐자'와 '확뺀자'의 차이 누가 만드는가?

내가 108배를 시작한 것은 전염병의 대유행을 알기 전이었다. 겨울철 실내 운동으로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한 108배를 이렇게 오래 계속할지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 내 생애 거의 처음인 본격 다이어트에 도움이 될 줄도 몰랐다.


어제 촬영구성안을 쓴다고 새벽까지 일해서 아침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이틀 만에 또 1킬로그램이 줄어 기분이 좋았다. 식이요법을 시작하면 작심삼일이 아니라 거의 하루 이틀만에 포기였는데, 이번엔 열흘이 넘었다. 40대 들어서서 처음 보는 몸무게에 놀라 혹시나 하고 벽에 걸어두었던 원피스를 입어보니 허리가 여유 있게 맞는다.


그런데, 기분이 좋은 것도 잠시. 아빠가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계신다. 어제 샤워하다 넘어지셨는데 짝궁뎅이가 될 정도로 부었다. 동네 병원에 다녀오셨는데 안에서 출혈이 멈추지 않는단다. 십여 년 전 심근경색으로 스턴트 시술을 하신 아버지는 매일 혈전용해제를 드신다. 약국으로 병원으로 전화해 복용약을 조절했다. 바로 병원으로 뛰어야 하는 것 아닌가 걱정했는데 그러진 않아도 된다고 한다.


어제 어르신들은 “화장실에서 넘어지면 3일밖에 못 산다”는 말이 있다 해서 약을 올렸다. “3일밖에 못 사는데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다 말해. 맛있는 것 사줄게.” 하면서... 어렸을 때 난 울보였다. 하도 울어서 ‘수도꼭지’라고도 했는데 대부분 아빠가 약을 올려서다. 엄마랑 그때 약 오른 것 갚아준다 소리도 하며 웃었는데 아빠에게 죄송하다.


딸이 늦잠을 자는 동안 혼자 병원, 약국 오가시며 말이 안 통하니 얼마나 소리를 치셨는지 목이 잠기셨다. 레몬 진저 티를 해 드리니 향이 좋다고 좋아하신다.


나이 40이 넘어 결혼도 안 하고 독립도 안 해서(30대에 혼자 살다 돌아온 캥거루족) 게다가 집에서 작업하는 시간이 많은 나는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다. 어린 시절에도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다. 목욕도 아빠가 시켜주었고, 장기도 아빠한테 배웠다. 지금의 내 나이가 되기 전에 쓰러졌던 아빠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아빠와 무엇을 함께 하는 것이 참 어렵다. 엄마랑은 친구처럼 잘 지내는데 아빠와는 가끔 닭발에 소주 한 잔 하는 게 전부다. 요즘 다이어트를 위해 부모님과 함께 먹지 않고 혼자 요리를 만들어 먹었는데, 오늘은 아빠와 같이 점심을 먹고 싶어 전복죽을 먹었다.


코로나 19로 인한 재난지원금이 가장 많이 쓰인 곳이 소고기 다음으로 가구라고 한다. 사람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진 것이다. 요즘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집 구하기, 한 달 살아보기, 인테리어와 청소 관련된 것이 많다. 더불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아빠를 좀 더 세심하게 살펴보고 함께 할 무언가를 찾아야겠다.


영국의 자존심, 세계 최고의 작가 셰익스피어가 한창 활동하던 1592년 영국에 페스트가 창궐하고 극장이 폐쇄됐다. 런던 시민이 거의 1만 1천 명 이상 죽고 2년 정도 지나서 극장이 다시 열렸다. 이 시기에 셰익스피어는 시를 쓰며 작품의 전환기를 맞이했다고 한다. 죽음과 혼돈의 시대에 살아남은 자는 생각이 깊어져 더 좋은 작품을 쓰게 되는 것일까? 칩거의 시간, 혼자만의 시간이 길어져서일 수도 있겠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이 대부분 죽음과 상실로 인한 혼돈과 절망에 빠져 있는 것도 페스트의 영향 아닐까?


코로나 19가 당분간 계속되리란 것은 이제 기정사실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포스트 코로나를 이야기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코로나 이후는 코로나가 지배하는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한동안 코로나 블루에 빠져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린 요즘, 열심히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한편, 가장 가깝지만 그동안 일과 회사 동료보다 후순위로 밀려 있었던 가족, 좋아하는 친구들과 좀 더 친밀하게 보내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셰익스피어가 페스트의 시간을 전환기로 훌륭한 작품을 써낸 것처럼, 코로나 ing의 지금도 내가 생각하기 나름, 행동하기 나름이겠지. 집에서 확찐자가 되느냐 확뺀자가 되느냐 하는 것도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으니 더 열심히 108배를 하고 더 맛있고 건강한 요리를 만들어 가족, 친구와 나누어야겠다.


108배 시즌1 44일 차 _ 2020년 3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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